좋은 말씀/고경태목사

기독교강요(26) 칼빈의 삼위일체 제시(13-5)

새벽지기1 2016. 10. 19. 07:51


기독교강요 1, 13, 5(계속)


그리고 저 거룩한 교부들의 신중한 결정으로서, 우리가 제시한 용어(동일본체, 삼위격의 한 하나님)에 대해서 인정하기 원하지 않는 자들이 교회의 믿음 고백의 진술에 대해서 검열관과 같이 독필(毒笔)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며 혹독하게 비난하지 못하게 하는 경고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용어는 저들의 교만, 완고함, 악의에 찬 교활(狡猾)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그 필요성을 교회의 대적자들을 대항하기 위해서 신중히 사용하며, 점차로 그 용어의 유용함에 익숙해하게 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릇된 가르침과 싸울 때에는 교회의 교부들의 겸손한 행동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아리우스파에게 다른 한편으로는 사벨리우스파에게 대항할 때에 너무 격정적으로 대항하지 않도록 하였는데, 그것은 논쟁할 대상이 사라진 뒤에 다른 사람들에게 오히려 아리우스의 제자나 사벨리우스의 제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지 않도록 한 것이다.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도, 그가 창조되었으며 시작(始作)을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가 "성부와 하나"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가 어떤 특수한 특성에 의해서라고 규정하고, 다른 신자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성부에게 연합되었다고 은밀하게 자기 제자들의 귀에 속삭이기도 하였다.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본체가 동일하시다고(he is consubstantial) 주장해 보라, 그러면 이 변절자의 가면을 쉽게 벗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성경에 무엇을 더하는 것도 아니다.


사벨리우스는 성부, 성자, 성령이란 명칭으로 하나님을 구분하는 것이 별의미가 없다고 주장하여 마치 삼위를 인정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에게 삼위가 있다고 주장하면, 사벨리우스는 그것이 곧 세 신()을 말하는 것이라고 외칠 것이다. 우리는 단호하게 하나님의 한 본체 안에 삼위가 있다고 주장하자. 이것이 성경이 주장하는 바를 한마디로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주장은 공허한 말쟁이를 간단하게 억제하는 방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미신적 관습에 사로 잡혀 이 용어들을(삼위일체)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이 한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연합한 한 본체로 이해해야 하며, 그리고 성경에서 을 들을 때에도 한 본체에 세 위격으로 이해해야 한다.이 용어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정직하게 고백한다면, 우리는 구태여 용어에 대하여 더 이상 여타한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용어에 대하여 집요하게 논쟁하는 사람들이 어떤 숨은 독소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랜 동안 많은 경험을 통해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모호한 말을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일부러라도 그들에게 명료한 말로 도전하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

 

 모든 이단의 원천인 아리우스와 사벨리우스이고, 성경에서는 적그리스도이다. ‘적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성육신이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사벨리우스가 성부 시대, 성자 시대, 성령 시대로 구분하는 것은 이단의 전형이다(여호와의 증인, 이슬람,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통일교, 천부교...). 아리우스의 가르침은 교회 내부에 깊이 침투하여 분별하기 가장 어렵다.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분별하며 배격하였다. 그런데 당시 교회에서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영접하고 있었다. 그들은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수납하고 있었다.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격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도의 가르침을 믿고 따름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믿음(신학)을 탐구할 때에 사도적 가르침까지 이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직접 도달할 수 없다. 4 복음서의 목적은 (예수)”를 믿도록 주어진 것이고, 서신서들은 그의 몸된 교회를 이룸과 세움과 유지에 대한 복음이다. 계시록은 그의 영광과 오심에 대한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