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고경태목사

기독교강요(25) 칼빈의 삼위일체 제시(13-5)

새벽지기1 2016. 10. 17. 07:45


기독교강요 1, 13, 5 “‘동일본체를 라틴 교부들도 사용하는데 이단들은 공격함” ‘동일본체라는 용어가 성급하게 발명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 용어를 배척하는 경솔함과 교만함이 비난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확실히 나는(칼빈) 모든 사람들의 믿음이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 하나님으로서, 성자는 성부가 아니며 성령 또한 성자가 아니며 그들 각자는 서로가 어떤 특성에 의하여 구별된다고 이해가 일치한다면, 이 용어는 사용하지 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용어에 집착하여 완강하게 싸울 정도로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과 전혀 다른 경건한 고대의 교부들도 이 용어에 대해서 말하지만, 서로가 일치하지 않았던 견해를 유지하지 못한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예로 힐라리(Hilary)는 여러 공회의에서 채택된 조항(條項)들을 무어라고 변호하였던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얼마나 자유롭게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었는가? 희랍 교부들과 라틴 교부들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던가? 그러나 이 여러 차이점들 중에서 다만 한 가지 실례만을 들어도 충분할 것이다. 라틴 교부들은 "호모우시오스"를 번역하려고 할 때 성부와 성자의 실체는 하나라는 것을 가리키는 "동일본체"(consubstantial)라는 용어를, "본질,essence"보다는 "실체,substance"를 사용하였다.


제롬(Jerome) 역시 다마스커스(Damasus)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 안에 세 실체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하나님 안에 세 실체가 있다는 말은 힐라리의 글에서 백 번 이상이나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제롬은 "위격"(hypostasis)이라는 용어에 대하여 얼마나 혼란을 일으켰던가!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 세 본체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데는 어떤 독()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사람은 이 용어가 경건한 의미에서 사용했다 해도, 부적당한 표현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았었을 것이다. 비록 그가 미워하였던 동방 교회의 감독들을 아무 근거도 없이 고의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비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것을 성실하게 주장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확실히 세속 학파에서 "우시아"(ousia)가 본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 데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그는 보았는데 이러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용법에 의해 끊임없이 반박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에 대하여 온건하고 정중하였다. 그는 "휘포스타시스"(hypostasis)라는 말이 이런 의미에서 라틴 교부들에게는 새로운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희랍 교부들이 사용한 어법을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용어를 모방하여 사용하기를 관대하게 허용하였다. 그리고 소크라테스(Socrates)가 삼부사(三部史, Tripartite History) 6권에서 "휘포스타시스"에 관하여 기록한 것은, 그것이 무지한 인간들에 의해 이 문제에 잘못 적용되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그러나 이미 위에서 말한 힐라리는, 경건한 마음속에 간직해 두어야 할 것들을 이단자들이 그들의 사악한 행위로 말미암아 인간 언어의 위험에까지 빠뜨렸다고 하여, 그들의 커다란 범죄를 비난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것은 분명히 불법을 행하는 것이고,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한 것이며, 용납해서는 안 될 것들을 가정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공언하였다. 조금 후에, 그는 자신이 대담하게 새 용어를 제시한 데 대하여 충분히 변명하고 있다. 


즉 그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하는 자연적 명칭들을 제시한 후에 즉시 첨가하여 말하기를, 이들 명칭 이외의 어떤 다른 것을 구한다는 것은 곧 언어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며 감각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고 이해력의 한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그는 고울(Gaul)의 감독들을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저들은 사도 시대로부터 모든 교회가 받아들인 그 고대의 아주 단순한 신앙고백 이외에는 어떠한 신앙고백도 만들지 않았고, 받아들이지도 않았으며 또한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의 변명도 이와 비슷한 데가 있다. 즉 그는 이와 같은 중대한 문제를 논하기에는 인간의 말이 빈곤하기 때문에 "휘포스타시스"라는 용어를 부득이 사용하게 되었으나 이러한 용어로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시라는 것을 설명할 수 없고 다만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묵과하지 않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