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고경태목사

기독교강요(23) 칼빈의 삼위일체 제시(13-3)

새벽지기1 2016. 10. 14. 07:34


기독교강요 1, 13, 3. “교리 용어인 삼위일체 인격은 성경에 일치하는 절대적 권위를 갖는다” ‘(, person, 인격)’란 용어 사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칼빈은 성경의 신비를 설명하기 위해서 성경 밖에서 차용한 단어라고 하였다. “위격(인격)”이란 단어를 사용함으로 성경의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단의 무리들은 "위격, person"이란 용어에 대해서 악담(惡談)을 한다. 또 어떤 까다로운 사람들은 위격이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셋이 각각 완전한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여러 분이 아니고 한 분이시라는 우리의 확신을 결코 허물어뜨릴 수 없다.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며 성경이 보증하는 바를 설명하는 중요하고 피할 수 없는 용어들을 부인한다는 것은 얼마나 사악(邪惡)한 일인가?(19세기에 카알 발트는 칼빈과 다르게 한 본질에 세 양태(three modes)를 주장하였다)


그들은 분쟁과 논쟁의 근본이 되는 외래어 사용을 포기하고 차라리 성경의 한계 안에서 우리의 사상과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외래어가 유포되면 우리는 말의 논쟁이 극도로 나타날 수 있고, 그로 말미암아 진리가 상실하게 될 수 있고, 격렬한 논쟁으로 사랑이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주장한데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에서 말로만 세워져야 한다면, 그들은 실로 부당한 법칙을 주장하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어휘로 성경 해석을 해석하는 일은 전적으로 정죄해야만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만일 저들이 말하는 소위 "외래어"라는 것이, 신기하게 고안되어 미신(迷信)을 변호하고, 혼란보다는 바른 가르침을 발생시키며,비합리적이거나 무익한 주장을 변호하는데 반해 용어가 거칠어서 불경건한 자들의 귀를 공격하며 불경건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의 단순성으로부터 이탈하게 하는 그런 것이라고 한다면, (칼빈)는 전심으로 고대 교회의 어휘를 차용(借用)하여 사용한 것을 건전한 고견으로 포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에 관하여 말할 때에도(Deo nobis loquendum) 하나님에 관하여 생각할 때와 마찬가지로 겸손한 신앙(minori religione)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어리석고,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언제나 불합리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표준을 준수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의 확실한 규범을 성경에서 찾고, 마음의 생각과 입으로부터 나오는 일체의 말을 여기에 순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petenda certa ex scripturis et cogitandi et loquendi regula).


그런데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성경의 내용들을 보다 명백한 말로 설명하는 것을 누가 못하게 하는가? 그 설명은 성경 자체의 진리를 성실하고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며,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적당한 때에 사용하도록 한다. 이 일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실례(實例)가 충분히 있다.

더욱이 교회 교리의 총체(ecclesiam summa) "삼위일체, Trinity" "위격, Persons"로 결정되었는데,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용어가 생소하기 때문에 진리의 빛이 결핍되어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명확하고 명백하게 규명된 진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닌가?(19세기에 카알 발트는 복음의 총화(Summa Evangelii)를 선택론으로 변개하였다. KD, II/2, 1 : “Die Erwählungslehre ist die Summe des Evangeliums.” 발트는 쯔빙글리의 67개조”, 2조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지식의 근원이고 무죄함으로 죄를 속하고 화목을 이룬 구주이심이 복음의 총화umma Evangelii라는 것에서 변개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