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신앙생활에 대한 몇 가지 제언(1)

새벽지기1 2016. 9. 5. 07:40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몇 가지 보수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신앙과 이성 사이의 반목을 끝내야 한다. 알다시피 지금까지는 신앙과 이성 사이의 반목이 심했다. 신앙과 이성은 서로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어리석은 우리는 이성이 신앙의 걸림돌이라며 애써 몰아내려 했다. 하여, 신앙도 풍성해질 수 없었고, 이성도 깊어질 수 없었다. 이제는 반목을 끝내고 화해의 손을 잡아야 한다. 신앙은 이성을 억압하지 말아야 하고, 이성은 신앙을 앞지르지 말아야 한다. 신앙은 이성에 의해 검토되어야 하고, 이성은 신앙을 통해 반추되어야 한다. 이성은 겸허히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하고, 신앙 또한 끊임없이 이성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이성이 독단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신앙이 무지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신앙과 이성은 공히 인류에게 허락된 소중한 선물이다.

 

둘째, 신앙과 삶의 별거를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 지난 날 우리의 신앙은 지나치게 현세적이었고, 지나치게 내세적이었다. 생활에 대해서는 현세적이었고, 구원에 대해서는 내세적인 참으로 이상한 조합의 신앙생활을 했다. 신앙은 삶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창이어야 하고, 삶을 새롭게 조형하고 끌어가는 인도자이어야 하는데, 내세를 위한 보험이 되어버렸고, 세속의 영광을 쟁취하는 도깨비방망이가 되어버렸다. 신앙과 삶의 불일치가 얼마나 오랜 관행이 되었는지, 요즘엔 아예 삶의 불일치를 문제 삼는 것이 진부해졌을 정도다.

사실 내 존재와 삶 전체에 파문을 일으키지 못하는 신앙은 소위 죽은 후 영생을 얻고 싶다는 종교적 욕망의 표출에 불과할 가능성이 많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예수님은 천국행 티켓을 나눠주는 티켓 맨(Ticket Man)이 아니다. 예수님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이다. 예수에게 있는 것은 천국행 티켓이 아니라 천국이다.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 또한 천국행 티켓을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삶을 배우고 연습하며 경험하는 것이어야 한다. 천국의 삶을 연습하고 경험하는 신앙이 존재와 삶속에서 뒹굴지 않으면, 그 신앙은 겉치레요 교양이요 종교적 욕망의 너울을 뒤집어 쓴 것에 다름 아니다. 신앙과 삶은 신속히 통합되어야 한다.

 

셋째, 신앙의 힘으로 멈추어야 한다. 지난 날 우리의 신앙은 급박한 현실을 극복하는 에너지였다. 가난과 질병, 가슴속 상처와 한(恨)을 푸는 기적의 능력이었다. 채움과 극복을 향한 비상의 날갯짓이었다. 끝없이 도전하는 긍정의 힘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신앙의 힘으로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지난날에는 신앙의 힘으로 달렸지만, 이제는 신앙의 힘으로 멈춰야 한다. 멈추어서 텅 빈 삶과 존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현실의 문제를 넘어서는 안목으로 삶을 재조명해야 한다. 비상의 날갯짓이 아니라 비움과 낮음의 자리로 내려앉아야 한다. 성취보다 더 빛나는 인간됨을 위해, 자본의 영광보다 더 찬란한 예수님의 삶을 닮기 위해 생명의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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