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똥 예찬

새벽지기1 2016. 9. 2. 00:04


샬롬! 찬미예수

 

오늘은 똥에 대한 글(펌글)을 소개해 봅니다.

지저분하고 더럽고 냄새나는 글이 아니라 쓰레기에서 장미를 피우듯 오히려 신선하고 진솔하며 깔끔한 글이어서 좋습니다. 

 

똥 예찬

 

똥을 누다가 무심코 밑을 내려다봅니다.

내 깨끗이 씻은 몸에서 저것이 나왔으리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그 덩이덩이 똥 무더기들이 한 가득 채워져

내 욕심의 잔여물들이 한껏 똬리를 틀고

그득그득 채워져 나를 노려봅니다.

 

그토록 잘난 체 했던 위선으로 도배된 얼굴에서

눈에는 눈곱이, 코에는 콧물이, 귀에는 귀지가,

입에는 침들이 그리고 뱃속을 꽉 메우고 있는

세상을 함께 호흡하는 속물들

나는 그것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다시금 그런 나를 생각하면서

똥은 내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원성 승려의 풍경 중에서...." 

 

똥은 우리 몸이 자연과 순환하는 것을 완성시켜 주는 마지막 한 덩이 화룡점정이다.

먹어도, 먹어도 싸주고, 채우고 채워도 비워주는 그 현묘함은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현대의 첨단 기술과 과학은 아직도 이 원리를 어렴풋이만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그 색깔은 고호와 밀레 그리고 이중섭이 가장 즐겨 쓰던 그 유명한 똥색이 아니던가?

청자 빛처럼 부드러운 광택은 잘 익은 감이나 토마토라야 겨우 가까이 올 수 있고,

또 굽이굽이 굴곡진 창자를 굽이쳐 나올 수 있고 또 나와서는 다소곳이 앉아있을 수 있는

저 부드러움은 간난 아기의 피부나 생명의 보고인 바닷가의 갯벌 정도는 되어야 겨우 올려다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형태는 또한 어떤가?

한 덩어리 뚝 떨어져 나올 때의 그 고구마 같은 유선형과 부풀어 오름의 조화는 오묘한 생명 구조를 능가하고,

똬리 치며 굽이굽이 올라가는 모습은 다빈치가 그토록 밝히고 싶어 했던 자연의 신비 나선 구조의 결정이 아니던가?

또 마지막 꼭지의 빼꼼이 치켜든 모습은 집안 수호신 구렁이가 똬리 치며 머리를 들고 있는 신성함 그 자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거기에 덧붙여 마지막으로 가늘게 한 획으로 마무리 한 것은 여운과 여유를 동시에 보여주는 역설의 구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똥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아스피테 형으로 지구의 중력에 저항하는 안정된 구조는 아직까지 인간의 창조물 중에는 없다. 똥의 그 많은 기능 중 하나만 하더라도 영양의 극한이다.

박테리아 개똥벌레 강아지들이 가장 탐내는 아무리 먹어도 절대로 질리지 않는 주식이자 별식이고

지구의 온갖 식물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양덩어리다.

혹 그것이 조금 남아 씻겨 내려가 냇물이나 바다로 흘러들라치면 그곳에선 어김없이 모든 생명들의 푸짐한 향연이 벌어진다.

 

똥은 이처럼 자연을 살찌우면서도 자연을 맑게 하는 역설의 창조물이다.

인간이 발명한 어떠한 작품도 어떠한 창조물도 우리의 위대한 똥의 발끝만치 따라온 적이 없었다.

우리의 과학과 지성은 이제야 겨우 여기까지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부정적으로 보면 똥은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것 중에 하나다.

가장 멀리하고 싶어 하는 대상이다.

우리는 똥을 대하는 순간 그 구성 물질이 애초 자신을 태워 사람의 생명을 유지했다는 사실엔 무관심하다.

똥의 고마움을 새삼 깨달아야 한다.

 

유기농을 비롯한 친환경 농법의 근본 원리는 생태 순환적 삶의 연결고리를 되찾는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순환의 고리는 바로 너무도 일상적이 되어버린 수세식 화장실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흙으로 돌아가야 마땅한 '똥'이 엉뚱한 곳으로 모이면서 순환 고리가 끊어지고 환경문제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농약은 물론이고, 똥을 대신하는 화학비료들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퇴비를 사용하는 것이 모든 친환경 농업의 시작이다.

우리가 더럽다고만 여기는 배설물인 '똥'이야말로 홀로이 모두의 더러움을 다 뒤집어쓰고

가장 중요한 순환의 고리를 지킬 수 있는 고귀한 존재이다.

그리고 연결고리를 회복하는 해답이 전통의 푸세식 화장실 문화를 새롭게 회복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라. 밥과 똥은 본질에서 하나다.

"저 무지한 농민들을 계도하여 비위생적인 미개한 분뇨 농법을 지양하고 화학금비를 쓰도록 하라"

이 말은 이승만 대통령이 피난길에서 보리밭에 뿌린 분뇨냄새를 맡고 농림부 장관에게 내린 지시였다.

정말 미개한 역사의 대통령임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삶의 뿌리를 모르는 무지함을 드러내는 말이다.

 

똥 냄새를 싫어하는 농사꾼이 참 농사꾼일 수 없다.

유기 농업은 뒷간을 복원하고 똥 농사를 되살리는 것이다.

'건강한' 먹거리만을 고집하는 주부들에게도 똥 냄새는 유쾌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똥에 대한 이중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똥을 직접 활용하는 백성과 똥 농사 결과물만 취하던 선비처럼 말이다.

 

현대문명의 발명품 중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수세식 화장실은 바로 낭비와 오염의 주역이다.

음식과 똥의 생태순환 고리를 끊어, 똥이 자원이 아니라 폐기물로, 경제적 관점이나 생태적 관점에서 심각한 똥 문제를 야기 시킨 주범이다.

하루 한사람 분뇨처리에 하루 평균 108리터의 물이 낭비되고 있으니 수세식이 깨끗하고 위생적이란 생각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단지 내 집 안에서만 깨끗할 뿐, 바깥으로 나가면 복합오염의 원인 제공자일 뿐이다.

 

똥이 밥이며 땅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먹고, 자고, 싸는' 순환이다.

순환이 멈춰버리면 더 이상 '살아감'이 지속될 수 없다.

똥의 순환 고리가 끊어져 위협받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다.

건강한 삶의 뿌리는 바로 생태순환에 있다.

생태순환의 고리는 뒷간에서 시작된다.

'화장실'이 아닌 생태적 '뒷간'을 통해 흙을 살리고 생명을 살찌우는 똥은 더 이상 폐기물이 아닌 자원이 되어야 한다.

바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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