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찬미예수
형님!
명절 잘 보내셨어요? 건강은 한층 거뜬히 좋아지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제 떼창을 하던 개구리 소리는 아예 소리를 들을 수가 없고,
열창하던 매미소리도 산속으로 더 들어가야만 간간히 들을 수 있게 되었고
귀뚜라미 소리조차 열력히 템포가 느려지고 낮아지니 가을이 더욱 깊어지나 봅니다
고독, 사랑, 진실, 그리움 등, 모든 삶의 주제들이 절절해지는데 영혼의 청결도는 안개처럼 뿌연하여 먹구름처럼 무겁습니다.
형님의 고독의 무게와 영혼의 무게를 존중합니다.
이번에도 똥 얘기로 인문학 속에 깃든 소소한 신학적 졸가리를 한 번 더 올려봅니다.
어쩌다 똥 애기를 했다가 똥에 대한 예찬, 똥에 대한 철학, 이제는 똥에 대한 신학까지 섭렵하게 된다.
똥은 창조주의 뜻을 따라 모든 순리를 따른다면 모든 생명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그러나 똥을 역리로 사용한다면 그 또한 죽음이 될 것이다.
똥은 늘 우리의 몸속에서 형성이 되며 배출이 된다. 똥은 우리 인간에게 모든 것의 시작이기도하며 끝이 되기도 한다.
똥은 인간의 몸을 통해 만들어지는 가장 고결한 물건이다.
만약 똥이 제대로 몸 밖으로 배출이 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항우장사라도 며칠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똥은 우리 몸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나누어주고 몸 밖으로 배출 되는 고결한 존재인 것이다.
똥은 본시 밥이며, 똥은 삶이다. 똥은 인간의 삶의 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밥을 먹고 똥을 배출함으로서 삶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똥은 거룩하기까지 하다.
우리 몸속에선 모든 필요한 영양분을 나누어주고 몸 밖으로 배출되어 또 다시 모든 식물들에게 필요한 영양분이 되어 주니 말이다.
만약 인간이 똥과 같이 살아 갈수만 있다면 세상은 이미 천국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똥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풍요롭게 하지만 절대 자신을 자랑하거나 자신을 드러내려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똥은 무위의 도를 이룬다.
똥 때문에 겪었던 당혹스러운 일들은 기상천외한 경험담들이 많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급박하고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당혹감과 그 고통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손발이 덜덜 떨리고 허벅지가 후들거리며 쥐가 날 정도로 다리를 꼬고 힘을 주어도 그 자세의 각도가
조금만 흐트러지거나 힘을 푸는 순간 사단이 나고 만다.
황당한 일은 얼마든지 있다. 방귀 뀌려는데 그 이상이 튀어 나왔을 때, 만원 상태의 엘리베이터 내에서 자기도 모르게 방귀가 새어나왔을 때,
남자들이 용변을 보고 바지를 올리다가 지퍼에 고추 살이 끼었을 때 등등, 여간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다.
똥에 대한 속담과 민담들이 넘쳐난다.
성경에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먼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뺄 것이라"(마7:3-5)고 했다.
이 말씀에 꼭 맞는 우리나라 속담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다.
똥에 대한 유익한 이야기들을 풀어서 쓴 책들도 있다.
정혜영 작가의 권정생의 똥 이야기로 풀어가는 문학과 신학의 대화, '똥 속의 하늘'이란 책이 있다.
가장 낮은 똥 이야기를 통해 가장 높은 인간의 구원을 신학적으로 통찰한 책으로서 기독교의 구원론이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세계를 바꾸는 착한 똥 이야기'(저자, 박소명)도 있고, 서울대 의학자 차 한 박사의 똥 이야기라는 책도 나와 있다.
'똥의 역사로 본 인간론에 대한 고찰'이다.
똥에 대한 은혜로운 간증도 있다.
몽골에서 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다.
몽골교회에서 주일예배 때였다. 선교사님께서 말씀을 마치고 헌금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때 한 성도가 손을 높이 들더니 질문이 있다고 했다. "목사님, 아무거나 십일조해도 되는 겁니까?"
그럼요,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리면 되는 겁니다.
성도는 대단히 기뻤다. 헌금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그 성도가 큰 자루 하나를 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헌금 바구니를 옆에 두었는데 작은 헌금 바구니에 도저히 넣을 수 없었기 때문에 큰 자루에 무엇인가를 넣어 가지고 나왔던 것이다.
목사님은 그것이 무엇인가 궁금해 하며 자루를 풀어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내용물은 다름 아닌 소똥이었다.
몽골에서 소똥은 아주 소중한 것이다.
겨울이 되어 벽에 소똥을 바르면 아주 난방효과가 탁월하다고 한다.
게다가 소똥은 8월 중순부터 6월초까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나라인 몽골에서는 땔감으로도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겨울을 나려면 적어도 26만 원 가량의 난방비가 필요한데 몽골에서 신입 선생님의 월급이 4만 5천원이니 땔감 비는 보통문제가 아닌 것이다.
정말 그 나라에서 소똥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소똥냄새가 예배당을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때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다함께 기도 합시다"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 이 성도님의 가정에 만 배의 축복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그런데 놀라운 일은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그 마을에 있는 모든 소들이 그 성도님 집 앞에 몰려와 볼일을 보더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소똥이 쌓여갔다. 그 해 그 성도는 엄청난 소똥 덕분에 땔감비가 전혀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남은 소똥은 이웃에 팔아 생활비를 벌었다고 한다.
주님께서 성도의 순수한 십일조 헌신을 기쁘게 받으신 것이다.
그 성도는 그야말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비록 적고 보잘 것 없어도 소득의 십일조를 정직하게 드리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소똥 십일조도 받으신다는 간증이었다.
소똥에는 섬유질이 많다. 그래서 소똥으로 집을 지으면 몽골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강한 햇빛과 세찬 비바람에도 집이 무너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마사이족은 소를 많이 키우기 때문에 소똥을 구하기가 쉽다.
특히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 때는 불을 피워야 음식을 끓여 먹을 수 있는데 이때 소똥 집을 조금씩 떼어 땔감으로 쓰고
건기가 되면 마사이족 여자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똥으로, 떼어 낸 자리를 메워 넣는단다.
또 한 가지, 마사이족은 사자와 치타 같은 맹수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소똥으로 집을 지어
맹수들이 소똥 냄새 때문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인생을 80년으로 했을 때 똥을 싸는 날이 보통 400일에 해당한다고 한다.
1년 이상을 똥 눕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똥을 격하시키지 말아야 한다.
똥에 대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
똥 신학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똥통 같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똥 장군의 이야기이며, 일상의 밥과 같은 존재이며 삶 그 자체이다.
이제는 '식사하셨습니까? 라는 말보다 더 많이 묻고 살펴야 할 말이 오늘 아침 똥 잘 보셨습니까?' 라고 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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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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