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93)

새벽지기1 2016. 7. 21. 21:07


죄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는 사람의 교만에 대해 진노하신다.
하나님이 사람의 죄에 대해 진노하신다는 사실이 무시되면 복음의 중심 개념을 바로 알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의 죄에 진노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죄는 사람의 성품의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 인격에 영향을 끼친다. 흔히 사람은 육체와 영, 몸과 정신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은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없고 그 모든 것이 통합된 전인적 존재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사람의 죄스러움이 사람에게 있는 저등한 성품에만 그친다고 보는 것은 신약 성경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 예수 그리스도는 위선과 교만이 “육체의 죄”보다 더 가증스러운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영혼을 죽이는 가장 큰 죄는 몸에만 악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을 비뚤어지게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육”을 악하고 연약한 것으로 말한 것처럼 보인다(로마서 7:25절과 8장 3절). 그러나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은 그 ‘육’이란 말은 전인을 뜻한다. 이것은 인격이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전 인격적 태도로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리가 갖고 있는 성품의 어떤 부분에도 악 영향을 끼치지 않는 죄는 있을 수 없다. 죄 때문에 사람의 성품은 완전히 타락하였다. 죄가 가져온 모든 결과 가운데 최악은 하나님과 멀어진 삶이고 의식이다. 


아담이 하나님께 반역한 죄 때문에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23절에서 분명히 가르친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 칼 바르트는 이 구절이 갖는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다, 곧 오직 하나만이 모든 곳에 있는 사람을 연합하게 하는데 그것이 바로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주석하기를, “사람이 가진 것 가운데 사람 사이를 결속하는데 충분한 어떤 긍정적인 것도 없다. 진정한 사귐은 부정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것은 사람에게 부족한 것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바로 그 때에 우리가 형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인류의 죄는 우리가 역사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넘어 과거에까지 뻗쳐 있고, 현재와 미래에도 얽혀 있다.  우리를 올가미에 빠뜨리는 힘은 단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나 운명의 힘이 아니라 우리를 치명적인 상황에 이르게 하는 죄의 힘이고 인류와 하나님 사이에 우리 스스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을 쌓는 것이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언제나 인류가 죄인이라는 것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것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사람은 영적으로 무능하다. 이것은 사람의 성품이 죄 때문에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아무리 위대한 노력을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하나님이 그를 창조하신 목적을 성취할 수 없다. 인류는 하나님의 길에서 떠났다.


사람이 죄가 있다는 것은 그가 잘못된 선택이나 행동을 모두 모은 것 이상이다. 그것은 그러한 선택이나 행동을 하게 하는 우리의 의지를 사로잡고 있다. 우리가 죄가 있다는 것은 단지 악한 행위나 계명을 어겼기 때문이 아니라 죄의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복음 전도자가 할 일은 그의 복음을 듣는 사람이 지은 죄의 행위를 지적하고 그러한 죄를 뿌리 뽑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복음 전도의 기본 사명은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 어떤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지키면 그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 전도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