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것은 사람이 어두움에서 벗어나 다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과 연합하게 한 것을 끊는 것은 성경적인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
신학자 글로버(T. F. Glover)가 1554년에 병들어 죽게 된 무레투스(Muretus)란 학자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담당 의사들이 그에게 수술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것은 분명 수술의 성격을 띠었으나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그들은 병을 고치려는 것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죽음이 오기 전에 어떠한 징후가 나타나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따라서 그 수술은 생체해부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적합할 것이다. 환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라틴어를 말하는지를 알지 못하여 한 의사는 다른 의사에게 말한다.
‘Fiat experiment in corpore vili,’ 곧 ‘이 무가치한 몸에 실험을 해보자.‘ 그 때 침대에서 한 음성이 들려왔다, ’Vilem animam appellas, pro qua Christus non dedignatus est mori?‘ 곧 ’그리스도가 그 영혼을 위해 기쁘게 죽으셨는데 당신은 그를 무가치하다고 말하는가?‘
사람의 본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기독교 초기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신학적 논쟁점이 되었다. 먼저 사람의 본성을 아주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초기교회의 역사에서 펠라기우스(Pelagius)는 어거스틴(Augustine)과 논쟁하면서 사람의 본성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사람은 본성에 어긋난 행위를 했다. 그 결과 사람은 죄인이 되었다. 이러한 사상은 19세기 유럽의 기독교계에 크게 영향을 끼쳤던 자유주의 신학으로 이어진다.
자유주의 신학은 합리주의(rationalism)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합리주의는 사람이 가진 이성이 모든 진리 판단의 기준으로 받아들인다. 사람이 가진 이성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성에 대한 전적인 믿음은 그것이 하나님의 계시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은 진리 판단의 대상일 수 없다. 인류가 이 이성에 따라 행동하면 역사는 발전하고 이 땅에 이상의 세계(Utopia)를 건설할 수 있다. 이 모든 주장은 사람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다음과 같은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 두말 할 것 없이 사람은 선한 행위를 할 능력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은 악한 행위를 할 능력도 갖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또한 과연 이성에 기초한 인류의 역사가 언제나 발전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이성에 기초한 현대 문명을 철저히 파괴시켰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 밝고 합리적인 면이 있지만, 동시에 어둡고 모순적인 면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신학적으로 볼 때, 인류가 만들어가는 역사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죄의 특성이 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것은 악이 선에 의해 점점 정복되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최후 심판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밀과 가라지 비유는 이점을 가르쳐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선’의 이름으로 죄를 지을 수 있다. 누가복음 18장 9절부터 14절까지는 기록하기를,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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