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칼빈의5대교리

기분 좋은 견인 교리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 조엘 비키

새벽지기1 2016. 6. 21. 11:26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들은 은혜로 말미암아 그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견인과 보증은 은혜의 두 부분과 같다. 우리는 확신 안에서 성장하지 않고서는 은혜 안에서 보존될 수 없으며, 견인 없이는 믿음의 보증 안에서 자랄 수도 없다.

 

이 성장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얻을 수 있다. <도르트 신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성장은, 이 세상에서 많은 육체적 의심에 시달려야 하고 심각한 시험 아래 있는 신자들이 항상 이러한 믿음과 견인의 확실성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라고 증언한다. 그렇지만 모든 위로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지 않으시며 시험을 당하되 피할 길을 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하시고, 또한 성령으로 감동하사 견인의 확신으로 위로를 얻게 하신다”(제5교리 제11항).

 

‘기분 좋은 견인의 확신’과 함께 우리는 존 뉴턴의 찬송시 ‘놀라우신 주 은혜’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할 수 있다.

“나 이미 수많은 위험과 수고와 유혹을 통과해 왔도다.

이 은혜가 여기까지 안전하게 인도했으니

이 은혜가 나를 고향으로 인도하리라.”

 

또한 우리는 시편 73편에서 길고도 어두운 고통의 밤을 통과해서 그를 향한 하나님의 보존하심과 믿음을 통한 견인이라는 완전한 확신의 장소에 도달한 시인과 함께 다음과 같이 노래할 수 있다.

“오 주님! 당신과의 달콤한 교통으로 나 끊임없이 살리니

당신의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사 당신 가까이 있게 하시는도다.

당신의 권고가 이 땅에서의 나의 순례길을 인도하고 다스리시니

이후 영광 가운데 나의 영혼을 받아 주시리.”

 

성도의 견인 교리는 단지 칼빈주의의 구원론을 포장하는 예쁜 리본이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강렬한 신중함과 제자도와 관계되어 있다. 지성을 분산시키며 마음을 찢는 이 세상의 삶은 우리에게 순례자로서의 전쟁을 요구한다. 견인 교리는 영광 안에서의 영원한 안전과 같이 삶과 죽음의 주요한 쟁점들을 붙잡는다. 프란세스 로버츠, “견인은 신자의 영혼을 천국의 문기둥으로 이끄는 밧줄과 같다.”

 

존 블랜차드, “그리스도인을 위한 영광은 그의 죽음보다 훨씬 더 확실하다.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출생증명서를 찢으신 적이 없다. 은혜 안에 잠기는 것은 가능하지만 은혜 밖으로 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 세상에 오신 것을 확신하는 것만큼이나 천국에 도달할 것 역시 확신하는 사람이다.”

 

신자의 견인이 철저하게 구원 사역을 수행하시는 하나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께 달려 있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의 보석이며, 절대로 잃어버린 바 될 수 없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말3:17).

 

토마스 브룩스, “세상의 보석들은 때때로 그 주인과 분리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석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 세상의 보석들은 종종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석들은 -- 절대로 그렇지 않다!”

 

브루스 디마레스트, “참된 신자들의 소망은 하나님을 붙잡는 그들의 연약한 힘에 있지 않고 그들을 붙잡으시는 하나님의 강력하심에 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의 안정성과 불변성은 우리의 인간적인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무한하신 방책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공급들, 하나님의 보호는 우리에게 얼마나 엄청난 위로와 위안을 주는가!

 

<도르트 신조>는 승리감에 가득찬 어조로 견인에 대한 교훈을 마무리한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성도의 견인 교리나, 하나님 이름의 영광과 경건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말씀 안에서 풍성하게 나타난 계시, 그리고 신실한 사람의 마음에 새겨 주신 견인의 확실성을 이해할 수가 없다. 사탄은 견인 교리를 미워한다. 세상 사람은 이것을 조롱하고 무지한 사람과 위선자는 이것을 남용하며 이단자는 이것을 반대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부는 항상 마치 헤아릴 수 없는 보배인 것처럼 이것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한결같이 변호해 왔다. 또 어떠한 계획이나 세력으로도 넘어뜨릴 수 없는 하나님께서 끝 날까지 계속해서 이렇게 행동하도록 해 주신다. 한 하나님이신 성부, 성자, 성령께 찬송과 영광이 영원히 있을지어다. 아멘”(제5교리 제15항).

 

- 조엘 비키, 『칼빈주의』, pp 23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