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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견인은 하나님의 사역일 뿐 아니라 성도의 사역이다 / 조엘 비키

새벽지기1 2016. 6. 17. 06:52


성도의 견인은 하나님의 사역일 뿐 아니라 성도의 사역이다 

 

성경적 사상에 기초한 견인과 보증의 필요성은 오늘날 감정을 강조함에 따라 혼합되어 버렸다.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우리가 생각하고 알고 믿는 것을 앞서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은사주의 운동이 교회를 뒤덮었다. 은사주의 운동은 빈 공간에 감정과 흥분을 채워 넣음으로써 참된 이해의 결핍을 낳고 말았다. 그러하기에 오늘날 반드시 필요한 것은 역동적으로 진동하는 거룩한 삶과 결합된 견인과 보증에 대한 풍성한 칼빈주의적 사상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누가 과연 성도인지를 질문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나 전도 집회에서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성도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과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은 성도를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 자신의 아들과의 교통으로 부르시고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신 사람들’(도르트신조),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으로 받아들이시고 성령께서 효과적으로 부르시며 거룩하게 하신 사람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성도의 견인 교리는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의 구원적 연합의 능력에 참여한 자들이 계속해서 그 유익과 열매들을 누리는 연합에 머물러 있음을 교훈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참된 믿음과 그들이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 믿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역사 안에서 견인된다.

 

따라서 당신이 하나님의 영에 의해 거듭나고 의롭다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고 거룩해졌다면, 당신은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 당신의 견인은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열매이기에 하나님이 당신을 영원토록 지키실 것이다. 당신이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했다면, 죄가 당신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은혜의 상태에서 완전히 궁극적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웨스트신앙고백서).

 

이 교리는 신자들이 죄의 면역력을 가졌음을 의미하거나 그들의 구원적 믿음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발휘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활동하지 않을 때에도 신자의 영혼을 향한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도우심이 없다면 신자들은 결코 계속 존재할 수도 없고 성장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실패가 없기에 오직 하나님만이 성장의 원인이 되신다. 견인의 의미는, 택자들이 그리스도와 강력한 연합을 이루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속해서 그들에게 자신의 은혜를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오직 그분만이 그들의 삶이며, 능력이 되신다.

 

나아가 성령의 내주하시는 장소로서 택자들의 마음을 선택하신 이후에 결코 그들을 떠나지 않으신다. 성령께서 그들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때까지 계속해서 그들의 성화를 증진시켜 주신다.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사람들의 변덕스러움과 게으름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택자들의 마음속에 거룩하신 사랑의 불꽃을 일으키고 계속해서 그 불꽃을 유지시키신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 사탄의 먹이가 되는 일이 절대 없을 것임을 알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분의 택자의 견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크리스토퍼 러브, “만일 택자가 멸망을 당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부 하나님께 대단히 불충한 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부 하나님께서 이 사명을 그리스도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모든 자들을 안전하게 지키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지키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시작하신 은혜의 사역을 마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신자들을 값 주고 사시고 중보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성령의 내주하시는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속성과 택자를 향한 그분의 영원한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의 견인의 약속을 통하여, 그분의 언약에 나타난 사랑을 통하여, 그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보존을 통하여 그들이 보존된다. 찰스 스펄전, “하나님께서 촛불을 켜신다면 그 누구도 그것을 끌 수 없다.” 만일 택자의 구원이 상실될 수 있다면, 성부의 선택은 무능한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중보 역시 부적절한 것이 되며,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도 역시 무익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성도의 견인은 택자들에게 주어진 깨뜨릴 수 없는 황금사슬과 같다. 선택은 하나님의 효과적인 부르심을 요구하고, 따라서 하나님의 보존과 신자의 견인을 한다.

 

그러나 또한 견인은 하나님의 사역일 뿐 아니라 신자의 사역이기도 하다. 그들을 지키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를 확신함으로써 성도는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인내하며 분투할 수 있다.

 

견인은 전 생애적 활동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일과 은혜의 열매를 맺는 일, 그리고 끝까지 인내하고 견디는 일을 포함한다.

 

참된 신자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인내하며, ‘구원에 속한 것’(히6:9) 안에서 견딘다. 신자들은 성화와 거룩을 위하여 능동적으로 죄와 싸우는 과정을 통해 인내하고 견인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신자들을 ‘책임 없는 로봇이 아니라 도덕적 존재’로 다루신다.

 

견인은 기계적인, 또는 자동적인 순종이 아니다. 견인에서는 ‘경건의 거룩한 시행’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는 일, 연구와 묵상과 기도, 성경을 실천하는 일 등의 은혜의 방편을 사용하는 것은 죄를 떠나고 거룩을 증진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성례에 부지런히 참여하는 일도 본질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백성들로서, 한 몸을 이루어 함께 살아가고 예배하며, 성장하기 위해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그들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깨어 기도함으로 인내한다. 그들은 그들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기 위해 인내한다. 그들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면서 인내하며 자신들 앞에 놓인 경주를 한다. 존 머리는 성도의 견인이 오직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만이 참된 성도임을 우리에게 매우 강력하게 상기시켜 준다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보존과 인간의 인내는 상호적이다. 성도는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보존하심으로 말미암아 인내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의심과 두려움과 고통을 만져 주시고,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는’ 은혜와 힘을 공급해 주신다. 신자들에게 인내할 것을 명령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까지 공급해 주시는 것이다.

 

존 오웬, “은혜는 우리의 책임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우리의 의무를 면제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러므로 견인은 보존의 개념을 뛰어넘어 신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보존될 것이다. 성도의 견인 교리의 이러한 이중적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극단적 칼빈주의(내가 보존될 것이 확실하다면, 나는 무슨 이유로 인내해야 하는가?)와 알미니안주의(나의 인내가 그토록 중대한 것이라면, 내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보존을 믿어야 한다는 말인가?) 모두를 피하게 만들어 준다.

 

- 조엘 비키, 『칼빈주의』, pp 213-220

 

출처: 청교도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