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저자는 3장 11절에서 언급한 "안식"의 주제를 심화시킨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1절)은 구원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참된 안식이다. “그들”(2절)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조상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말씀을 들었으나 그 말씀을 통해 믿음에 이르지 못했고 그래서 안식(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우리”(3절)는 히브리서 독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참된 안식에 들어갈 희망이 있다. 그 안식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의 창조를 마치고 난 후에 시작되어 영원히 지속되는 하나님 나라를 가리킨다(4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면 안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5-6절). 하지만 그것은 참된 안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저자는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지 못했으며, 참된 안식에 들어갈 날은 아직 남아 있다고 말한다(7절). 만일 가나안 정착으로 안식이 완성되었다면 더 이상의 안식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뒤에 다른 날이 있으리라는 것"(8절)을 말씀하셨다. 그 날에 이르면 진정한 안식을 얻을 것이라는 뜻이다(9절).
다윗이 예언 했던 그 날이 "오늘"(7절)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해 구원을 베푸실 그 날이 왔다. 우리는 그 "오늘"에 살고 있다. 그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복음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랬으나 들어가지 못했던 그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9절). 그 안식에 이르면 "하나님이 자기 일을 마치고 쉬신 것과 같이"(10절) 우리도 참된 안식과 만족을 얻는다. 그 안식은 우리에게 허락된 "오늘"이 끝나는 날에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여정에서 낙오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11절). “힘쓰다”로 번역된 ‘스푸다조’는 운동 경기에 사용되는 단어로서, 전력투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거짓 교리에 솔깃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심 해서는 안 된다. 믿음의 길에서 이미 낙오한 사람들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서도 "그것을 믿음과 결합시키지"(2절) 않았다. 그러나 말씀을 믿음과 결합시킨 사람들은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3절).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게 믿는 사람에게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게"(12절) 역사하기 때문에 그 말씀의 능력으로 변화되지 않을 수 없다(13절).
묵상: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6일 후에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안식의 상태에서 온 우주와 인류의 역사를 다스려 오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안식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는 날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를 성별하여 일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즐기며 감사하며 축하하고 예배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온 우주의 주인이 누구이시며 역사의 주인이 누구이신지를 새롭게 기억하고 그분 안에서 쉴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일을 멈추고 안식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연습하고 미리 경험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십 년 동안의 광야 유랑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정착한 것도 영원한 안식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작은 안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을 지키지 못하여 그 ‘작은 안식’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려면 더욱 힘써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7)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고 그분의 자녀로 회복되는 것이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믿음 안에서 그 영원한 안식을 “앞당겨”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믿음 안에서 누리는 그 안식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때 완성될 것입니다. 그 때가 오기까지 즉 "오늘"이 계속 되는 동안 우리는 말씀을 믿음에 결합시켜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기도:
주님,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얻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지금 누리는 이 안식과 평안이 주님 다시 오실 때 완성될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이 평안의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믿음 생활에 더욱 힘쓰게 하시고, 불안과 염려가 전염병과 같이 퍼지는 이 사회에 저희에게 주신 평안의 능력을 흘러보내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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