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마음과 입술과 손발 (이사야서 29장)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11. 1. 05:42

해설:

1절부터 8절까지는 예루살렘이 당할 재앙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예언이다. “아리엘”(1절)은 “하나님의 사자”라는 뜻인데 성전의 번제단을 가리킨다. 예루살렘이 유다 백성에게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유일한 장소인 성전의 제단 때문이다. 이사야는, 앗시리아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할 것을 예언한다(2절). “너의 사면을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삥 둘러서 탑들을 세우고, 흙더미를 쌓아 올려 너의 성을 치겠다”(3절)는 표현은 앗시리아와 바빌론 그리고 로마가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킬 때 사용했던 공성전을 묘사한다. 그 때가 되면 예루살렘은 완전히 무력화 될 것이다(4절). 

 

하지만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영영 버리지 않으신다. 때가 되면 그분은 예루살렘을 점령한 민족을 흩으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다(5-6절). 어느 나라든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점령하려는 모든 시도는 허무하게 끝날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지키실 것이기 때문이다(7-8절). 

 

9절부터 16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예루살렘과 유다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영적으로 둔감해진 것이다. “예언자”와 “선견자”(10절)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그들은 듣지 않으려 한다. 마음이 완악해져 있다는 점에서는 유식한 사람이든 무식한 사람이든 차이가 없다(11-12절).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나를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13절)고 탄식하신다. 그들은 스스로 눈을 질끈 감고 심판을 불러 들이고 있다(14-16절).

 

17절부터 24절까지는 심판 후에 하나님께서 베푸실 은혜에 대한 예언이다. 레바논의 밀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는 것(17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전능자 하나님께는 아무 일도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전능하신 분이기에 그분이 구원의 팔을 펴시는 날이 오면 유다 백성의 굳은 마음은 여려지고 멀었던 눈은 열릴 것이며 닫혔던 귀가 듣게 될 것이다.  

 

묵상:

유다 백성의 문제는 그들의 신앙 행위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앙 행위를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 같아 보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사에 쏟는 그들의 정성을 보아도 그렇고, 율법을 향한 그들의 열심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었습니다. 그들은 습관적으로 혹은 과시적으로 종교 행위에 열성을 다했고, 주워 들은 이야기로 자신의 경건성을 과시했습니다. 그들은 제사를 드리고 성전을 떠나자 마자 입에 거짓을 담고 손에 피를 묻힙니다. 그 영적 타락은 심판이 아니고는 고쳐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예루살렘을 심판에 붙이겠다고 예언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는 더 엄한 기준으로 판단하시고 징계하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예루살렘을 영영 버리지는 않으십니다. 7절과 8절의 예언에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배후에 계셔서 끝내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전해 줍니다.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 있는 예루살렘이 때로 징계도 받고 재앙도 겪겠지만 결국 회복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날이 오면 예루살렘은 다시금 마음과 행위가 일치된 온전한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23절) 할 것입니다.  

 

믿음은 마음에서 시작하여 입술로 고백되고 손과 발을 통해 표현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떠나 있는 종교 행위는 위선이요, 손과 발로 표현되지 않는 믿음은 가식입니다. 그런 종교 행위는 하나님에게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나의 반석이시요 구원자이신 주님,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언제나 주님 마음에 들기 바랍니다”(시 19:14)라고 기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