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이사야서 31장)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11. 3. 05:31

해설:

31장의 예언은 30장의 예언처럼 이집트의 도움에 집착하는 히스기야 왕의 태도에 대한 비판이다. 그들은 “군마를 의지하고, 많은 병거를 믿고 기마병의 막강한 힘을 믿으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바라보지도 않고, 주님께 구하지도 않는다”(1절). 하나님은 이미 정하신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2절). 하나님이 심판을 행하실 때면 군마도, 병거도, 기마병도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3절). 

 

주님께서는 당신을 “먹이를 잡고 으르렁 거리는”(4절) 사자에 비유하신다. 사자가 먹이감을 지키듯이 혹은 새가 둥지의 새끼를 보호하듯이 주님은 시온을 지켜 주실 것이다(5절). 6절의 “이스라엘 자손”은 유다 백성을 의미한다. 주님은 유다 백성에게 주님께로 돌아서라고 부르신다. 그 날이 오면 그들은 모든 우상들을 내던지게 될 것이다(7절). 

 

8절과 9절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 시키고 유다를 유린했던 앗시리아에 대한 심판 예언이다. 영원할 것 같던 앗시리아 제국은 주전 612년에 바빌론 제국에 의해 궤멸되었다. 그것은 마치 소련의 붕괴처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사야는 앗시리아의 갑작스러운 멸망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것이라고 예언한다. “시온에 불을 가지고 계시며 예루살렘 화덕을 가지고 계신 주님”(9절)이라는 말은 예루살렘에 대한 도발이 앗시리아의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는 뜻이다. 

 

묵상:

“시온에 불을 가지고 계시며 예루살렘에 화덕을 가지고 계신 주님”(9절)이라는 표현에서 잠시 멈추어 묵상합니다. 앗시리아는 물리적인 차원만을 보고 유다를 침략했습니다. 그 전쟁으로 인해 유다는 초토화 되다시피 크게 해를 입었지만, 그 전쟁으로 인해 치명상을 입은 것은 앗시리아였습니다. 그들은 물리적인 차원만 생각했지 영적 차원은 보지 못했습니다. 유다를 침범한 것은 곧 빨갛게 달아오른 화덕을 건드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어떻게 여기고 계신지, 앗시리아도 알지 못했고, 히스기야 왕과 유다 백성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히스기야 왕은 이집트에 사신을 보내어 도움을 청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것처럼 유다도 쉽게 공략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앗시리아가 칼에 쓰러지겠으나, 사람의 칼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고, 칼에 멸망하겠으나, 인간의 칼에 멸망하는 것이 아니다”(8절)라는 말씀은 그들의 패착이 물리적인 차원에 대한 오판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 대한 무지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유다 백성도, 앗시리아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예언은 오늘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차원에만 붙들리지 말고 영적 차원을 보라는 깨우침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부여하시고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결정하게 하셨습니다. 인류는 각자의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역사를 만들어 갑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까지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통제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각 사람과 인류 전체를 다스리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마 10:29).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살도록 자유 의지를 사용해야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고 그분의 주권에 맡겨야 합니다. 한 개인으로서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어찌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맡기고,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해야 합니다. 한 개인으로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