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공의로 다스릴 왕 (이사야서 32장)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11. 5. 06:50

해설:

1절부터 8절까지에서 이사야는 “공의로 통치하고” “공평으로 다스릴”(1절) 지도자를 염원한다. “공의”로 번역된 ‘쩨데크’는 “올바른 상태”(righteousness, 분배적 정의)를 의미하고, “공평”으로 번역된 ‘미쉬팟’은 “그릇된 것을 바로잡음”(justice, 교정적 정의)을 의미한다. 그 왕은 백성의 필요와 요구에 귀를 기우리고 사려 깊게 행동한다(3-4절). 그 왕은 백성들에게 “광풍을 피하는 곳과 같고, 폭우를 막는 곳과 같게 될” 것이며 “메마른 땅에서 흐르는 냇물과 같고 사막에 있는 큰 바위 그늘과 같을”(2절)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모든 백성이 정직하고 진실하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6-8절).  

 

9절부터 14절까지에서 이사야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여기서 “안일하게 사는 여인들”(9절)은 불의와 불공정을 일삼는 지도자들을 남편으로 둔 덕분에 지금 호의호식하며 걱정 거리 없이 사는 부인들을 가리킨다. 부정의와 불공정의 열매를 누리는 사람들이다. 이사야는 일 년도 되지 않아서 그들이 참혹한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9-10절). 따라서 지금은 웃고 즐길 때가 아니라 베옷을 입고 몸부림 쳐 회개해야 할 때라고 요청한다(11-14절). 

 

하지만 그 심판이 마지막은 아니다. 그 심판 후에 하나님은 다시 영을 보내 주실 것이고(15절), 그렇게 되면 “광야에 공평이 자리잡고, 기름진 땅에 의가 머물 것”(16절)이다. 공평(미쉬팟)과 의(쩨데크)가 자리를 잡으면 평화와 안전이 찾아온다(17절). 그 때가 되면 백성은 안전하게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다(18절). 우박과 폭우가 쏟아질 때 피해가 발생하지만 그 후에는 풍성한 물로 인해 초목이 살아나는 것처럼(19-20절), 심판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겠지만 하나님은 결국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묵상:

과거, 새로운 정부가 출발하면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며, 과정은 공정할 것이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우리 모두는 가슴 설레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세상이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마땅한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인 번영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17절)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쉽지만 정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역사 상 어느 통치자도, 어떤 정권도 만족할만큼 공정과 정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상과 목표를 높게 제시하는 정권일 수록 더 큰 실망감과 배반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현실 정치에서 이룰 수 있는 평등과 공정과 정의는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실 정치인에게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조금 더 나은 지도자를 택하는 것 뿐입니다. 

 

완전한 평등과 공정과 정의는 오직 하나님 나라에만 있습니다. 그것을 이루어 주실 분도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그래서 현실 정치에 실망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장차 한 왕이 나와서 공의로 통치하고, 통치자들이 공평으로 다스릴 것이다”(1절)라는 예언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와 공정에 대한 우리 믿는 이들의 기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의 현실이 좀 더 하나님 나라의 기준에 가까워지도록 기도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