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무(無)는 없음을 의미하나?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9. 25. 02:46

     무(無)는 무엇이오? 단순히 없다는 뜻으로만은 이 무의 세계를 다 설명할 수 없소. 오히려 없음을 통해서 있음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무일 수도 있소. 여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이 있다고 합시다. 그것은 분명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오. 조금 바꿔서 생각해보시오. 저 피에타 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 바깥의 세계일지 모르오. 피에타 상이 아닌 세계, 그러니까 피에타 상을 중심으로 하면 피에타 상이 없는 세계가 곧 무라는 말이오. 여기 목사가 있다고 합시다. 그는 목사로 존재하는 자이오. 이걸 거꾸로 말하면 그의 바깥 세계는 목사가 아닌 세계이오. 모두가 목사라면 목사가 존재할 수 없소. 목사 아닌 세계가 곧 무라는 말이오. 결국 무가 유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인 셈이오.

 

     이런 설명이 어떻게 보면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소. 그렇지 않소. 말장난이 아니라 서양철학에서 오랫동안 논의된 주제에 속하오. “왜 존재하는 것들은 존재하고, 무는 없다는 말인가?” 세상의 삼라만상을 잘 보시오. 아니 지구의 생명만 보시오. 동물과 식물로 되어 있소. 그 중간은 없소. 토끼와 개나리 중간쯤 되는 생명체는 없소. 그 이유가 무엇이오? 그렇게 진화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진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도 모르오. 세상의 생명이 모두 진화 원리로만 일어난 것도 아니오. 오히려 돌연변이가 진화의 중심일지도 모르오. 생명이 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완벽하게 해명할 사람은 없소. 그것은 비밀이오. 영원한 비밀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소. 이것은 백 명의 악기 연주자들을 연주장에 모아놓고 자기 마음대로 악기 소리를 내라고 주문을 했더니 갑자기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울려 퍼진 것과 비슷한 현상이오.

 

     지금 우리의 경험과 판단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 지나칠 정도로 고정되어 있소. 그래서 하나님 나라도 이런 존재하는 것들로 이뤄졌을 거라고 생각하오. 심지어 멋진 집과 맛있는 먹을거리가 충분히 갖춰진 어떤 공간으로 여기오. 죽은 뒤에 그런 천당에 가서 영원무궁토록 행복하게 살 수 있으려니 기대하오. 생각을 완전히 바꿔야만 하오. 어떤 것일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소. 3차원에서 4차원으로 바뀐 세상에서는 3차원의 생각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과 같소. 우리가 허무와 일치시킨 그 무가 큰 역할을 하는 세계일지 모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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