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목사는 정말 모범적인 목회자였다오. 모든 것을 다 바쳐 목회일념으로 살았소. 다른 목사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격이 출중하고 목회 열정도 뜨거웠소. 그런 분 같으면 교회에 다닐 맛이 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소. 65세에 조기 은퇴하고, 목회자가 없는 오지 교회에 가서 여생을 보내다가 죽어 천당에 온 사람이오.
내가 그를 천당의 한 숲길에서 산책하다가 만났을 때 어딘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소. 정말 뜻밖이었소. 세상에서 목회할 때는 그렇게 생기가 넘치고 평화로웠던 표정이 거기서는 의기소침해 보였다는 게 말이오. 그에게 말을 걸었소.
“최 목사님, 어디 불편한 데가 있어요?”
“아니, 뭐, 특별히 불편한 건 없어요.”
“그런데 표정이 어두어보이네요. 고민이 있으면 말씀해보세요.”
“글쎄요. 고민이 있긴 있는데, 말하기도 좀 그렇네요.”
“신경 쓰지 말고 일단 말씀해보세요.”
우리는 나무그늘 아래 풀밭에 앉았소이다. 나는 그가 무슨 고민거리가 있을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소. 세상에 남은 아내나 자식들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소. 그들은 잘 살고 있었으니 말이오. 세상에서 남모르게 지은 죄가 자꾸 생각이 나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워낙 천성이 고운 분이라 남에게 잘못한 게 있을 까닭이 없소. 최 목사가 말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소. 한참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소.
“내 고민은요. 이거 남에게 털어놓기도 부끄러워서요. 먼저 내가 물어봐야겠어요. 정 목사님은 여기 와서 하나님을 만나 보았어요? 하나님이 보여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고 말하는데, 부끄럽게도 나는 못 봤어요. 아무리 살펴봐도 보이지 않는 거예요. 천당에 오면서 기대가 부풀었거든요.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기대요. 그런데 그게 무너진 거에요. 이거 어떻게 하면 좋아요. 정 목사님은 하나님을 만나봤는지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그대는 내가 최 목사에게 무슨 대답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시오? 대답할 길이 막막했소. 최 목사의 방식으로 말하면 나도 하나님을 본 게 아니니 말이오. 하나님을 어떻게 대상으로 경험할 수 있단 말이오? 그건 안 되오. 하나님은 천당 자체였소. 천당의 힘 자체였소. 우리를 포함한 전체 천당이 하나님인 것을 어떻게 친구를 보듯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단 말이오. 내가 이런 걸 최 목사에게 설명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소. 그가 실망할 게 뻔하기 때문이오. 설명한다고 해서 최 목사는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도 어려울 거요. 그걸 이해할 수 있다면 그렇게 천당 생활을 오래 했으면서도 하나님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로 고민하지는 않았을 거요. 순진하고 성실한 최 목사가 참으로 안 되었소. 천당생활이 조금 더 지나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나? 그때가 되면 다시 평화를 찾으려나? 모르겠소. 기다려 보는 수밖에... (2010년 5월30일, 주일, 햇살, 차가운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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