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막14:63)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대제사장은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자기 옷을 찢으며 더 이상의 증인이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에서 옷을 찢는다는 것은 극한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회개할 때나 참기 힘든 고통을 당했을 때 그들은 옷을 찢습니다. 때로는 재를 뒤집어쓰기도 합니다. 더 심한 경우에는 식음을 전폐하겠지요.
대제사장은 예수님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증인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증언이 일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증언은 법적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입장이 곤란했겠지요. 예수님을 기소해야 한다는 당위와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 사이에서 말입니다. 예수님의 고백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증인이 없어도 얼마든지 예수님을 기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이런 말은 속이 뻔히 들여야 보입니다. 그를 중심으로 한 산헤드린 공의회는 예수님에 대한 공소를 이미 결정해놓은 상태입니다. “하여튼 예수를 제거해야 돼!” 이것이 그들에게 이심전심으로 소통되던 원칙이었겠지요. 이런 악을 도모하는 일에는 사람의 머리가 빨리 돌아갑니다. 일일이 입을 맞출 필요도 없지요. 하나의 원칙이 세워지면 나머지는 자동입니다. 죽어야 할 사람은 죽을죄를 범한 것으로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들을 우리는 7,80년대 군사 독재시절에 한국에서도 자주 보았습니다. 무늬는 다르지만 지금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제 한숨을 돌렸을 겁니다. 증인이 없어도 공소할 수 있는 꼬투리를 잡았으니까요. 악의 준동은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방식으로 그 악을 제압합니다. 악은 그것도 모른 채 자신이 이겼다고 큰 소리를 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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