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대제사장 관저에서(17)(막14:62)

새벽지기1 2024. 3. 8. 05: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막14:62)

 

예수님은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다는 것은 위대한 사건입니다.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궁극적인 것을 보려면 그것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궁극적인 것들, 또는 의미 충만한 것들은 대개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둑을 예로 들어봅시다. 가로 세로 19줄의 모눈 눈금으로 된 바둑판에 흑과 백의 돌들이 놓여 있습니다. 바둑의 경지에 따라서 그 안의 세계가 서로 다르게 보입니다. 낮은 단계의 사람에게는 몇 가지 수의 가능성만 보이지만, 높은 단계의 사람에게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가 보입니다. 왜 어떤 사람에게는 수가 잘 안 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잘 보일까요? 그리고 그 수의 깊이가 끝이 없을까요? 바둑의 수는 바로 도(道)이기 때문입니다. 도는 드러난 것이 아니라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도덕경 첫 머리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를 도라고 말하면(규정하면) 그 도는 원래의 도가 아니다.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은 궁극적인 것 중의 가장 궁극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보는 것과 똑같은 사건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종말이 이르러야 볼 수 있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 심판으로 생명과 생명 아닌 것이 완전히 구별됩니다. 생명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이지요. 그때서야 우리는 참된 생명을 볼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생명이 불완전하냐고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종말의 생명에 비해서는 불완전하지만 종말의 생명을 덧입을 것이기에 이것으로 완전한 생명입니다. 여기서 종말의 생명을 덧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죽을 몸이 죽지 않을 몸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