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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3-12절: 거꾸로 보고 뒤집어 산다

새벽지기1 2023. 10. 14. 05:54

마태복음 5장 3-12절: 거꾸로 보고 뒤집어 산다

해설과 묵상:

앞에서 우리는 산상설교의 도입부라 할 수 있는 복 선언의 시편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산상설교 전체의 주제는 ‘제자의 조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사는 사람인지를 가르치는 말씀들이 여기에 묶여 있습니다. 마태는 제자라는 주제와 관계된 예수님의 말씀들을 편집하면서 복 선언의 시편을 맨 처음에 배치합니다. 

복 선언의 시편은 여덟 행의 시편(3-10절)과 산문의 결론(11-12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복 선언의 형식은 시편에 자주 나오는 문학 양식입니다. 제자가 되어 제자로 사는 것은 현실 세상에서 어려운 일입니다. 이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로 사는 것은 분명 불편하고 어려운 일인데, 그것이 실은 진실로 복 된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복 선언의 형식을 사용하십니다.  

 

제자의 존재와 삶에 대한 여덟 개의 행은 예시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 행을 늘리자면 얼마든지 늘릴 수 있습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과 말과 행동의 모든 영역에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덟 행의 복 선언을 읽으면서 제자됨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 보고 그것을 다른 영역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시 형식을 사용하셨는지 모릅니다. 시는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정서를 터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렇게 하여 세상과 인생을 보는 시각에 변화를 주려는 것입니다. 

 

복 선언의 시편은 가장 먼저 복의 개념을 뒤집어 엎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복을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차원으로 이해합니다. 손 대는 일마다 잘 되는 것, 물질적으로 넉넉해지고 육체적으로 건강해지는 것,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 받는 것–이런 것들을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복을 영적인 차원으로 규정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다스림 아래에 드는 것, 그분의 위로와 자비를 입는 것, 그분의 영광을 보고 그분의 인정을 받는 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복을 경험하면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차원에서 어려움을 겪어도 괘념치 않습니다. 그래서 제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데 따르는 온갖 모욕과 박해와 중상을 기쁘게 견디어 냅니다. 제자의 목적은 안락한 삶, 만사형통하는 삶을 얻자는 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복 선언의 시편은 종교의 개념을 뒤집어 엎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종교를 가집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하는 종교를 가르치십니다. 

 

여덟행의 복 선언 안에 어떤 내적 구조가 있는지를 두고 많은 학자들이 연구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영적 성장의 단계를 따라 구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특별한 구조를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무심코 말을 해도 내적 논리와 흐름을 가지는 법입니다. 이 복 선언의 시편이 예수님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생각하면, 분명히 내적 구조와 흐름이 있었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복 선언의 시편에서 예수님은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작하여 외적이고 관계적/사회적 차원에까지 아우르십니다.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차원과 외적이고 관계적/사회적 차원을 두부 모 자르듯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유기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덟행의 시편을 깔끔하게 둘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복 선언의 시편에 대한 구조 분석에 대해 학자들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면적/개인적 차원과 외적/관계적/사회적 차원이 서로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 시편을 읽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른 신앙에 대해 주신 예수님의 또 다른 중요한 가르침을 발견합니다. 신앙은 한 사람의 내면과 외면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사적인 일이 아니라 그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또한 제자로 사는 일은 자신이 속해 있는 세상에 하나님의 평화와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사적 영역에 가두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또한 기독교 신앙을 사회 활동으로 국한시키는 것도 심각한 왜곡입니다. 개인적인 성화는 사회적 성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