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시편 134편: 가장 우선되는 일

새벽지기1 2023. 6. 29. 05:05

 

해설:

마지막 순례자의 시편은 오랜 순례 여정을 마치고 성전에 도착한 사람의 심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집”(1절)은 성전을 의미하고 “주님의 모든 종들”은 성전 제사를 위해 섬기는 레위인들(제사장들과 다른 레위 지파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낮 동안에 제사를 위해 일할 뿐 아니라 밤중에도 순번을 짜서 성전을 지킵니다. 시인은 그들에게 “성소를 바라보면서, 너희의 손을 들고 주님을 송축하여라”(2절)고 노래합니다. 그들이 성전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제사는 ‘일’이 아니라 ‘예배’임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주님께서”(3절) 그들에게 복 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할 때 레위지파는 땅을 분배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성막(후에 성전)에서의 제사를 위해 섬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계는 다른 열한 지파가 책임 져야 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언제든 성전에 와서 제사 드릴 수 있는 것은 레위 지파 사람들의 헌신 덕분임을 기억하면서 그들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올립니다.

 

묵상:

시인은 성전이 영적으로 가장 위험한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매일 성전에서 일하다 보면 자신이 거룩한 장소에서 거룩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모든 것을 ‘일’로 대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곳에 서 있지만 거룩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레위인들에게 성소를 바라보면서 주님을 송축하라고 권합니다. 그들의 가장 우선적인 책임은 제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제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매너리즘에 빠져서 가장 거룩한 일을 밥벌이로 전락시켜 버릴 것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제사 행위는 하나님께는 역겨운 것이고 사람에게는 공허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험은 목회를 ‘일’로 대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해야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올리는 예배라는 사실을 잊으면 예배도, 기도도, 설교도, 심방도 ‘일’이 되어 버립니다. 더 심하게 타락하면 ‘밥벌이’가 되고 ‘지겨운 일’이 되며 ‘죽지 못해 하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의 자리가 영적으로 가장 위험한 자리입니다. 시인의 권면처럼, 목회자가 가장 먼저,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성소를 바라보며 손을 들고 예배하는 일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목회자는 성도들의 기도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믿는 이들은 모두 “왕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고 했고,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다”(히 10:19)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인 모두는 항상 성전에서 살아가는 레위인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편은 우리 모두에게 항상 불러 주어야 할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가장 먼저,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손을 들고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은 영원에 잇대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