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시편 23편은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있는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 모두에게서 가장 사랑 받는 시편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이 시편을 좋아합니다. 이 시편의 내용이 그만큼 폭 넓고 깊은 공감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시편 22편에서 다윗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분께서 구원하시고 보호하실 것을 내다 보고 감사 드립니다. 시편 23편은 자신이 신뢰 하기로 선택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여기서 하나님을 ‘목자’에 비유합니다. 목자가 양을 돌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보신다는 고백입니다. 그렇기에 “부족함”(1절)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양을 푸른 풀밭에 누이듯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먹이시고, 목자가 양을 쉴 만한 물가로 인도 하듯 우리의 깊은 갈증을 채우십니다(2절).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새 힘을 얻어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십니다(3절).
여기서 두 가지를 주목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바른 길”을 걷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고 바른 길을 갈만한 힘을 얻도록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보다 먼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공급해 주십니다. 그런 다음 우리를 바른 길, 의의 길, 거룩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목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계속 공급 받아야 할 은혜가 있다는 것과 그 은혜는 우리의 거룩한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은혜가 고갈된 채 의롭게 살려 하면 율법주의가 되고, 의롭게 살려는 열망 없이 은혜만 구하면 신비주의가 되어 버립니다.
다른 하나는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3절)라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들은 그분의 이름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 자신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일들을 행하십니다. 그분이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시고 돌보시고 일을 행하시는 이유도 역시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모든 피조물에게 가장 좋은 일이 됩니다.
이어서 다윗은 고난 중에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목자의 비유를 이어갑니다(4절).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사람도 “죽음의 그늘 골짜기”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시편 22편은 그런 처지에서 드린 기도였습니다. 믿는 사람의 차이는 죽음의 그늘 골짜기에서 조차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목자에게는 “막대기”와 “지팡이”가 있습니다. 막대기는 야수를 쫓아 버리기 위한 것이고 지팡이는 양들을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목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의 상황에 있을 때 막대기로 악한 세력을 쫓으시고 지팡이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것을 알기에 죽음의 문전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5절에서 다윗은 목자의 비유를 내려 놓고 전쟁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전쟁터에서 원수들을 모두 결박시켜 놓고 그 앞에서 잔치상을 차려 놓고 병사들에게 먹게 하는 장군처럼, 하나님은 그렇게 원수들 앞에서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높여 주신다고 말합니다. 머리에 기름 붓는 행위는 그를 씻어주고 원기를 회복시키며 영광스럽게 해 주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면 “내 잔이 넘칩니다”라고 고백하게 되어 있습니다.
6절에서 다윗은 이 모든 고백과 찬양을 요약하고 결론 짓습니다. “진실로”는 자신의 고백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하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나를 따르리니”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추적하다”라는 뜻입니다. 형사가 범인을 끝까지 추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나를 추적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이 평생 경험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런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그는 하나님의 품에서 영원히 머물러 살기를 소망하는 것으로 이 기도를 맺습니다.
묵상:
“양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목자”는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비유로 자주 사용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언자 에스겔을 통해, 당신의 양떼를 맡겨 주었던 지도자들에 대해 비판하면서 당신이 직접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가 되겠다고 하셨습니다(겔 34장).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당신에게 맡기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 자신을 “선한 목자”(요 10:11)라고 부르셨습니다. 악한 목자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양들을 착취 하지만,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어찌보면 착한 목자가 아니라 어리석은 목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릴 목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지만 양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 하면 때로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양들을 위해 행동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듯 어리석은 목자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신의 모든 것을 비우시고 인간이 되셨고, 인간 중에서도 가장 낮은 종의 모습으로 섬기셨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 하셨기 때문입니다(빌 2:6-8). 목자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도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아드님이 나같은 하찮은 존재를 위해 죽으신 것은 더 더욱 어리석어 보입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단 하나, 우리를 향한 다함 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들에 대한 성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목숨을 희생하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눕게 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겔 34:15)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시편 23편은 누구나 좋아하는 시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고백으로 이 시편을 읽습니다. 다윗이 여기서 고백한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께서 실증해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시는 승리를 경험하셨습니다. 그분이 경험 하셨던 하나님의 사랑(그 변함없는 사랑)이 그분을 통해 우리에게 열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그 증거입니다.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살며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사랑에 눈 뜹니다.
'좋은 말씀 > -사귐의 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25편: 관계가 틀어질 때 (0) | 2021.12.30 |
---|---|
시편 24편: 지성소에 서서 (0) | 2021.12.29 |
시편 22편: 메시아의 고난 (0) | 2021.12.26 |
시편 21편: 왕을 위한 감사의 기도 (0) | 2021.12.25 |
시편 20편: 기름 부음을 받은 이 (0) | 2021.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