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예레미야 애가 5장: 절망 속에서 기도하기

새벽지기1 2021. 12. 3. 05:40

 

해설:

앞의 네 장은 모두 히브리어 알파벳을 순서대로 첫 글자로 삼아 쓴 것인데, 마지막 장에서는 그 형식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앞 네 장에서 정형화 된 틀을 사용하여 고난을 노래하다가 마지막 장에 와서 그 틀을 버림으로써 시인은 유다 백성이 당한 혼돈의 상태를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시인은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여 유다 백성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그들은 바빌로니아에게 점령 당하여 자신의 땅에서 유배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여인들은 이방인들에게 능욕 당하고 젊은이들은 자기 땅에서 노예처럼 살아갑니다. 노인들은 성문에서 사라졌고, 지도자들은 살해 당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죄 때문에 받은 심판임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마음 아프고, 그래서 우울합니다(1-18절). 

 

유다 백성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묘사한 다음, 시인은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주 하나님은 영원 하시며 그분의 다스림은 온 세상에 미칩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희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시인은, 이제는 그만 당신의 백성을 생각해 주시고 회복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 하신다면 그들은 주님께 돌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다시금 예전의 평화와 안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19-21절). 

 

마지막으로 시인은 “주님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습니까? 우리에게서 진노를 풀지 않으시렵니까?”(22절)라고 호소합니다. <개역개정>은 이 구절을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이 난해하기 때문에 성서학자들 사이에도 번역과 해석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떻게 번역하든, 시인은 하나님께로부터 아주 버림 받은 것 같은 절망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애가 전체를 마무리 짓습니다.

 

묵상:

5장의 마지막 절은 예수님의 ‘가상칠언'(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가지 말씀) 중 하나를 생각나게 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그분은 하늘을 우러러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외치셨습니다. 얼른 보면,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버림 받은 절망감을 토로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시편 22편의 첫 구절입니다. 평소에 시편의 기도들을 암송 하며 묵상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면서 이 기도를 떠올리신 것입니다. 이 기도에서 기도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절규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신뢰를 통해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미래를 내다봅니다.

예레미야 애가 5장 22절도 역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회의하고 의심하는 것 같지만, 실은 여전히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놓고 싶을 정도로 지쳐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압니다. 그 복잡한 심경으로 인해 마지막 말이 모호한 표현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인은 이 표현을 통해 “하나님, 이대로 우리를 내버려 두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조차 버릴지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속히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묵상을 접하는 분들 중에 혹시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분이 계시다면, 시인의 기도를 통해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게 버려진 것 같고 잊혀진 것 같은 상황에서 믿음의 끈을 놓고 싶다 해도 끝까지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편 22편의 기도자처럼 믿음으로 희망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