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국교회부흥

코로나 국난 극복을 위한 세 이레 기도회 '맥락을 묵상하는 믿음' (요한복음 11:23-27, 40) / 정갑신 목사 (예수향남교회 담임)

새벽지기1 2020. 12. 2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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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제의 일들을 기억하고 거기에 담겨있는 약속과 기대로 오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제의 기억과 간증이 내일의 약속과 기대와 함께, 오늘 주시는 말씀 안에서 만나도록 묵상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매우 익숙한 구절입니다. 마르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이 문자 그대로는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예수님의 말씀을 전면으로 부정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해야 했습니다. “그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제가 압니다”(24절). 예수님의 그 말씀(살아날거다)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오늘 당장 일어날 그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르다나 우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마르다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먼 미래적 약속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반드시 기억하면서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에 연결시켜야만 하는 맥락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기억 및 간증과 거기에 담긴 약속과 기대를 오늘 주시는 말씀에 연결시킬 수 있었더라면,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거라는 말씀은 먼
미래가 아니라 1분 후, 한 시간 후에 일어날 일을 포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마르다와 마찬가지로 현실 속 어둠의 무게가 너무 무거우면 맥락 속에서 묵상하는 법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셨기 때문에 인도하실 것이라는 이 흐름이 우리 속에 절단되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한마디로 최선의 무능함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대한 최선의 해석과 최선의 고백이 무능함이 아니라 실제적인 능력으로 경험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은 하나뿐입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죽은 자들을 살리셨다는 어제의 기억,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살아나리라고 지금 말씀하셨다는 사실, 예수님 자신을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 그 예수님이 지금 여기 함께계시다는 사실을 한 맥락 위에서 연결해서 묵상하면 바른 길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제의 사건과 오늘의 말씀과 말씀에 담긴 약속을 믿고, 그 맥락 위에서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을 소유하고 예수님으로부터 떠나지 않으면 됩니다. 부활과 생명을 현재형 사건으로 맛보는 조건은 믿음입니다. 예수님과 말씀을 믿을 만하다고 판단하는 나를 믿는 믿음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은 먼 미래 뿐 아니라 당장에도 이루어질 수 있는 말씀입니다.
어제 인도하신 하나님이 내일 인도하실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시고, 어제의 간증과 기억이 내일의 약속과 기대와 오늘 말씀 속에 만나게 하는 맥락 속에서 말씀을 묵상할 때 그 한 걸음이 보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은혜 안으로 초대받았습니다. 그 은혜의 물결을 타고 은혜의 바다로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