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3

숨겨진 악

새벽지기1 2020. 11. 2. 06:42

압살롬은 이복형인 암논이 자신의 누이인 다말을 욕보인 것을 알고 그를 죽입니다. 그리고 도망쳐 외갓집 그술 땅으로 피해있었습니다. 그리고 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슬픔과 분노가 가라앉은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그리워합니다.

그 사실을 안 다윗의 충복 요압은 일을 꾸밉니다. 한 여인으로 탄원하게 하여 다윗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그 여인의 탄원내용은 이렇습니다. 과부인 자신은 두 아들을 키우는데, 형제끼리 싸움이 나서 형이 동생을 죽였고 마을사람들은 그 형을 율법대로 처리하려고 하니, 왕께서는 선처해주셔서 하나 남은 아들마저 잃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들은 다윗은 그 여인을 불쌍히 여겨, 동생을 죽인 형을 살려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 가운데 뭔가가 느껴진 다윗은 그 여인을 추궁하였고, 그 모든 일을 요압이 꾸며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요압을 불러 말합니다.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압살롬을 데려 오라.” 요압은 엎드려 절하며 다윗 왕의 허락을 기뻐합니다.

요압은 다윗의 가장 충성스런 부하이고, 압살롬은 다윗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압살롬은 형을 죽인 패륜아입니다. 요압 장군이 도모한 이 일과 다윗의 결정을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이 사건에 대해서 많은 주석서들은, 요압과 이 여인의 지혜를 높게 평가하며 하나님의 사람은 지혜로워야 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과연 그럴까요? 어떤 사건에 대해 한줄 평가만 내리는 성경이 이 사건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는 것은 이 내용에 중요한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갑니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또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의도대로 상대를 움직이려고 합니다. 요압이 꾸민 일도 다윗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낮은 차원의 방법으로는 폭력이나 위협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짜증이나 잔소리로 상대를 귀찮게 함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둘 다 저급한 방법입니다.

세 번째 방법은 담담한 태도로 자신의 감정과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는 방법, 네 번째로는 열성적인 자세로 설득하는 방법, 다섯 번째는 칭찬과 격려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방법은 희생과 솔선수범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 바로 예수님께서 목숨도 아끼지 않는 희생으로 인류의 구원의 영향력을 끼치신 바로 그것입니다.

위의 방법들은 드러난 것이어서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가장 나쁘고 방법자체로 사악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를 은밀하게 조종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manipulate 라고 합니다.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회유, 아부, 뇌물, 모함, 다른 사람을 동원하기 등등, 은밀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 딸을 동원하여 아빠에게 말하게 합니다. “아빠, 술 먹으면 내가 미워 할 거야.” 아빠의 음주를 중단시키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어린 딸을 동원하여 조종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명분이라도 다른 사람을 조종하려는 자체는 사악한 일입니다. 심리학자들은 그런 일에 동원된 사람들은 관계가 왜곡되고 가치관 혼란에 빠지게 되는 심각한 폐해를 경고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아이들이 커서 문제를 만나면 같은 방법으로 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요압은 자신의 충성심과 신뢰를 이용하여 다윗을 조종하려 하였습니다. 그 이면에는 다윗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가있고, 압살롬은 가장 유력한 대를 이를 왕으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속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압은 한 여인을 통하여 아버지의 약한 마음을 이용하려했고, 그 과정에서 그 여인에게 회유와 선심등의 거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여인의 지혜를 배우라는 것은 한참 잘못된 가르침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됩니다.

다윗은 요압이 꾸민 이 일을 그냥 넘어가기로 하였습니다. 아들 압살롬을 벌하려면 그를 죽여야 했고, 못이기는 체 하고 넘어가면 그 부담감을 요압과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아를 죽일 때 이미 그들은 한 패가 되어 있었습니다. 훗날 예루살렘에 돌아온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에게 반역하고, 온 나라를 곤경에 빠뜨립니다.

별로 심각해 보이지 않는 이 일이 큰 해악을 불러온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요압과 여인, 다윗 모두 하나님의 뜻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탄원하는 여인의 하나님의 대한 언급도 다윗을 조종하기위한 아첨이었고,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 먹은 것입니다.

스캇 펙 박사의 소설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에서 하늘나라에 적응하기 위한 세 가지 조언이 나옵니다. 첫째, 서두르지 말라. 둘째, 사물을 통제하려고 하지 말라. 셋째, 순수한 마음을 가지라. 특히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닫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마음을 버려야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 10:16) 그리스도인들은 이리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양들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대로 뱀처럼 지혜로워야 하고 동시에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합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이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배우고 그렇게 사는. 곧 예수님처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 37:5-6)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예수님의 방법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이뤄주십니다. 그리고 내 사람은 정오의 빛같이 밝게 빛나며 그림자가 생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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