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을 바라보며 기도의 손을 들고 기도할 때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분명 영적인 싸움입니다. 함께 모여 드리는 공예배가 영상예배로 대체된 것은 안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조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한국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충격적인 공격을 받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이겨야 할 영적싸움 가운데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싸움의 중심에 성경을 거짓되게 해석하고 예수님과 성령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이용한 이단사이비가 있다는 것 또한 영적 싸움이라는 증거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정확한 길밖에 없습니다. 회개하며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의 성패, 모세의 기도하는 손에 달려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그 많은 너희 제물을 무엇하려고 내게로 가져오느냐?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도 지겹다. 나는 황소와 어린양과 염소의 피도 기쁘지 않다. 너희가 내 얼굴을 보려고 나올 때 누가 너희에게 이것을 달라고 요구하더냐? 내 뜰만 밟을 뿐이다.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 제물 타는 냄새도 역겹다. 초하루와 안식일과 집회의 선포를 견딜 수 없다. 악을 행하면서 성회를 여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너희 초하루와 정한 절기들, 나는 그것들이 싫다. 그것들이 내게는 짐만 될 뿐이다. 그것들 을 짊어지기에 내가 지쳐 버렸다”(사 1 :11~14).
우리의 예배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예배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삶은 놀이터가 아니라 전쟁터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영적전쟁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적전쟁의 본질은 하나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축복하시는 백성들을 향한 전쟁이기도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싸워야 했던 전쟁들이 바로 오늘 우리가 싸워야 하는 영적전쟁의 중요한 모델이 됩니다. 이스라엘을 종으로 삼았던 애굽은 죄와 흑암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바로는 구원의 역사를 거부하는 사탄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이끄는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이후에 가나안 땅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방황했던 광야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여전히 죄와 유혹과 악의 영들과 싸우는 시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이후 처음으로 공격을 받아 싸워야 하는 대상이 나타납니다. 아말렉 족속입니다. 바로가 하나님의 구원을 대적하고 방해한 세력을 의미한다면, 아말렉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입니다. 아말렉 족속이 나타나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시험은 내적인 것이었습니다. 환경에 대한 불평, 원망, 불신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로 외적인 공격, 물리적인 공격이 나타납니다. 아말렉 족속의 공격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바로로부터 구원받을 때는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구원을 의미합 니다. 애굽으로부터 건짐을 받을 때 백성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바라볼 뿐이었습니 다. 이것을 ‘우리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첫 번째로 만나 싸우는 아멜렉과의 싸움은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전쟁입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싸워주시는 전쟁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함께 참여하고 믿음을 사용하여 싸워야 하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을 ‘우리 안에서 싸우시는 성령님의 전쟁’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염병 사태를 지나면서 외적인 전염병과 싸우는 동시에 우리 안에서 싸우시는 성령님의 전쟁을 믿음으로 함께 싸워야 합니다. 아말렉 족속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을 때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사람들을 선발해서 나가 싸우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 있겠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대로 사람들을 뽑아서 나가서 싸웠고,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언덕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네 사람의 리더십 가운데 한 사람은 전쟁터로 가고, 세 사람은 산꼭대기로 갔습니다. 한 사람이 산으로 가고, 세 사람이 전쟁터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정반대 상황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모세가 언덕에 올라 손을 들고 있으면 여호수아가 이끄는 백성들이 계속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계속 손을 들고 있기 힘들어서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의 손을 들어 계속 손을 들고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여호수아가 이끄는 백성들이 아말렉 족속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매우 이상한 전쟁입 니다. 승패가 물리적인 싸움이 아니라 산에 올라가 손을 들고 있는 모세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은 보이는 싸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싸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싸움에 달려있 습니다.
우리의 깃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은 우리 안에 있는 육신과의 싸움, 우리 안에 있는 옛 자아의 영향력, 십자가에서 못 박혀야 하는 옛 성품과의 싸움 입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옛 성품을 통해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영향력은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전염력이 죄의 전염력입 니다. 죄의 전염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죄의 전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 니다. 그러나 죄의 영향력을 끊을 수 있는 능력이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죄와 우리를 분리시키는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주어졌습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시점이 언제입니까?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르비딤’이라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하십니다. 사막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구약에서 물이 터져 나오는 사건은 성령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사탄과 악의 영들이 우리를 공격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아말렉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네가 이집트를 나올 때 아말렉 사람들이 네게 어떻게 했는지 기억해 보아라. 네가 지쳐 피곤했을 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너희를 만나서 뒤쳐져 있는 자들을 치지 않았느냐?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신 25:17~18). 아멜렉이라는 이름은 전쟁을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소홀히 여기는 자들입니다. 아주 간교하고 교활한 자들입니다. 사탄의 속성을 잘 보여줍니다. 아말렉 족속으로 상징되는 죄는 모든 시대,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육신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말렉을 온전히 진멸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명령을 거역한 사람이 사울입니다. 하나님이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온 전히 진멸하지 않았고 불순종함으로 사울이 버림을 받았고 민족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시대, 우리가 전염병 바이러스와 싸워 이 길 수 있는 영적인 방법은 우리 안에 있는 아 말렉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언덕 위에서 손을 들고 기도했던 것처럼 기도가 이 전쟁의 승 패를 결정합니다. 아말렉을 이긴 모세의 비결은 기도의 손을 높이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드는 것은 항복의 표현입니다. 간절한 매달림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 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손을 높이 들 때 그 기도의 손은 하나님 보좌까지 닿습니다. 여호수아가 싸우는 전쟁터 백성들에게까지 닿는 하나님의 손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보이는 전쟁보다 보이지 않는 전쟁이 더욱 중요하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고 부르며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대대로 아말렉을 대적해 싸우시겠다고 맹세하셨다”(15~16절).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 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전쟁을 통해 배운 결론입니다. 고대 전쟁에서는 깃발이 중요했습니다. 군인들은 항상 깃발을 들고, 바라보고, 깃발을 향해 모이고, 깃발이 움직이면 함께 움직였습니다. 깃발은 용기를 주고 희망을 줍니다. 비전을 줍니다. 그 깃발이 계속 휘날리고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깃발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깃발은 무엇입니까? “그날에 이새의 뿌리가 나타나 민족들의 깃발이 될 것이다. 나라들이 그에게 찾아오고 그가 있는 곳은 영화롭게 될 것이다”(사 11:10). ‘이새의 뿌리’는 곧 다윗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이 예언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은 “ 예수님이 곧 깃발”이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고 승리를 얻습니다. 우리의 깃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주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깃발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깃발입니다. 그 깃발을 바라보며 우리가 손을 들고 기도할 때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손을 들고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싸워야 할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이길 때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누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의 손을 들고 회개하며 자신 안에 있는 아말렉을 싸워 이길 때 전염병과의 싸움이 속히 종식되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민족을 고쳐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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