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척의 배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적군의 배는 무려 300척. 중과부적衆寡不敵입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왜적을 맞으러 바다로 나갑니다.
그것은 변경불가의 그의 태도입니다.
패하고 죽을 줄 알면서도 견지하는 그 태도로 인하여 이순신 장군에게는 거룩한 칭호가 붙여집니다.
성웅聖雄. 수많은 영웅들 중에서도 구별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의미 요법(Logo-therapy)창시자 빅터 프랭클 박사는 그 가치를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경험적 가치.
경험을 통하여 배운 가치입니다.
세상의 경험이 인간에게 가르쳐 준 가치입니다.
돈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이유는 경험을 통하여 그것이 좋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창조적 가치.
인간이 세상에게 부여한 가치입니다.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정신병원에 수감되면서도, 귀까지 스스로 자르면서도 고호는 그림을 계속 그립니다.
그에 의해 미술의 지평이 넓어졌습니다.
잃어가는 청력과 대중들의 몰이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베토벤은 하나님의 세계를 최고음으로 그려냈고,
음악의 새로운 문을 열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분야에서 창조적 가치가 더해져서 온 인류는 풍성한 유산과 신선한 자극을 누립니다.
그런데 정말 소중한 것은 태도적 가치입니다.
이것은 경험적 가치와 창조적 가치가 박탈당한 상황에서도 고귀한 삶을 살아가게 만듭니다.
300척 앞을 가로막는 13척. 여기서 많은 것이 좋다는 경험적 가치가 물러납니다.
창조적 가치를 논할 여지는 더더구나 없습니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 부하들을 격려하는 이순신 장군의 결연한 태도에 의해 존귀한 가치가 창출됩니다.
바로 태도적 가치입니다.
태도적 가치는 위대한 인간만이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목사로서 많은 죽음을 보았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죽음은, 평생 약사로 일한 남자 집사님의 임종입니다.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병원에 입원하자 모든 소생술이나 생명연장 치료를 거부하였습니다.
죽음을 하나님의 처사로 알고 감사히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을 심방할 때마다 제게 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한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유업을 잇는 흥사단을 위해서 평생동안 일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고, 흥사단도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서 세운 단체입니다.
그 분은 병원도 없는 가난한 동네에 약국을 차리고 주민들을 열심히 도왔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죽음을 감사히 맞이하였습니다.
태도적 가치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었습니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조용히 나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이 나이가 되도록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자탄하지 않습니까?
무명無名과 비천卑賤에 초조해하지 않으십니까?
그 이유가 돈과 명예가 최고라는 천박한 경험적 가치만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쉽게 유혹과 시험에 휘둘리고 자존심과 스타일마저 구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는 안됩니다.
이만하면 족하다고 자위하거나 허세를 부릴 필요도 없습니다.
높은 데서 보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이 자체가 복음입니다. 이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이순신 장군이 조국과 백성을 향한 사랑에 철저했듯이,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초지일관하면 됩니다.
[출처] 태도적 가치란 무엇인가?|작성자 다윗의 물맷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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