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스테반황

십자가냐 할례냐?

새벽지기1 2019. 5. 1. 06:48

 

십자가냐 할례냐?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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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라디아서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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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갈라디아 교회의 분위기는 바울의 편지를 받기 전까지 “할례 운동”에 압도되어 있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왔다는 ‘신령한’ 자들의 “다른 복음”에 매료된 갈라디아 교회는 할례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 운동은 사실 갈라디아 교회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복음이 전파된 모든 교회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 운동이 얼마나 강한지 “십자가만을 전하면”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할례 운동에 휩쓸리면서

‘십자가만으로 받는 구원’을 믿지 않고 할례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거짓 사도의 역사, 나아가 영생을 가리려는 사탄의 음모가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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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할례 운동”은 인간이 보기에 거룩한 운동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교회를 더 부흥시킬 수 있고 사람들이 더욱 하나가 될 수 있다.

뭔가 자신들이 할 일이 있고 자신들을 드러낼 일이 있다.

할례 운동을 펼칠 때마다 사람들이 인정해 주고 공동체 내에서 인기가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러한 교회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은 사람이 바로 바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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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말한다.

너희들의 겉모습과 열심은 종교적이지만,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을 속이지 말고 들여다보라.

십자가를 위함이냐 아니면 인간을 위함이냐?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냄이냐 아니면 너희 자신의 영광을 추구함이냐?

“할례 운동”은 결국 그리스도를 깎아내리고 십자가의 의미를 상실시키며

인간의 노력과 인간의 열심을 십자가 자리에 가져다 놓은 무서운 범죄이다.

바로 아담이 지은 죄와 방불한 죄가 지금 이들의 “할례 운동”이다.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로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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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영광을 받도록 부추기는 운동이 지금 교회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가?

사람의 거룩과 종교성을 두둔하면서 사람의 열심을 칭찬해 주는 운동은 없는가?

그런 분위기로 교회가 휩쓸리고 있지는 않은가?

십자가의 도를 듣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감사로 눈물 흘리는 모습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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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말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곧, 사람들의 칭찬, 사람들이 인정, 명예, 자랑 등이 바울에게는 더 이상 관심이 아니라는 뜻이다.

바울의 관심은 오직 그리스도의 칭찬에 있다.

그리스도께 인정받는데 있다.

그리스도만을 드러내고 높이는데 있다.

그리스도를 드러내려면 “오직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