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을 따라 오신 예수님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여자의 후손’으로 예언되어 오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예언된 예수님을 살펴보았습니다.
레위기 말씀을 통해서는 ‘생명의 구속자’로 오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살펴보게 됩니다.
구약에 나타난 모든 예수님에 대한 예언은 책마다, 말씀마다, 예언마다 구체적으로 확장되어서 나타납니다. 특히 레위기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언은 유월절 어린 양 되신 그리스도를 제사, 절기, 제도들을 통해서 입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에 나타난 제사제도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속죄제물이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제물이 됨으로 하나님의 용서가 베풀어진다는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모든 예수님에 대한 예언은 책마다, 말씀마다, 예언마다 구체적으로 확장되어서 나타납니다. 특히 레위기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언은 유월절 어린 양 되신 그리스도를 제사, 절기, 제도들을 통해서 입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에 나타난 제사제도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속죄제물이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제물이 됨으로 하나님의 용서가 베풀어진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대속하는 ‘피’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를 위해 제단에서 속죄를 하는 용도로 주었던 것이 바로 피다. 이는 피가 생명을 대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레 17:11).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고, 제사는 피를 흘리는 제단에서 속죄를 이루는 용도로 제정되었습니다.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를 위해 제단에서 속죄를 하는 용도로 주었던 것이 바로 피다. 이는 피가 생명을 대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레 17:11).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고, 제사는 피를 흘리는 제단에서 속죄를 이루는 용도로 제정되었습니다.
피가 생명을 대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피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피에 생명이 있고, 피가 얼마나 건강한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피를 중요하게 말합니다.
성경은 피를 중요하게 말합니다.
레위기 17장 10절을 보면 “피를 먹지 말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실제 한국 교회에서도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교회가 여전히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율법적,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피가 생명을 대속한다는 말씀의 맥락에서 구약의 피에 관한 모든 율법을 해석해야 합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은 문자적으로 적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은 문자적으로 적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다섯 가지 제사제도는 어떻게 피가 생명을 대속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건으로 모든 제도가 폐지되었고 완결되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적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섯 가지 제사와 그 의미
레위기에 나타난 다섯 가지 제사제도의 핵심적인 의미를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생명의 구속자이신 그리스도가 어떻게 예표 되었는지를 보겠습니다.
첫 번째 제사는 번제(burnt offering)입니다.
첫 번째 제사는 번제(burnt offering)입니다.
이것은 온전한 헌신을 의미하는 제사입니다. 모든 것을 불태웁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올려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불로 모든 것을 태우는 제사입니다. 제사장에게도, 제물을 드리는 사람에게도 돌아가는 것이 없습니다. 피를 빼고 모든 것을 불태우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제사는 소제(cereal offering)입니다.
두 번째 제사는 소제(cereal offering)입니다.
번제처럼 불태우지만 일부는 제사장의 몫이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동물의 제사가 아니라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곡식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성을 가지신 분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대속하시는 그리스도가 되기 위해서는 흠 없는 인성을 가진 분이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사람이 되셔야만 했습니까? 진정한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도우시는 것과 사람으로서 섬기고 대속을 이루시는 제사를 완성하셔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제의 대표적 의미를 ‘섬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제사는 화목제(fellowship offering)입니다.
세 번째 제사는 화목제(fellowship offering)입니다.
화목제는 예물을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과 제사장과 더불어 음식을 나눠 먹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부분은 피와 기름, 제사장은 흔든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 나머지는 예물을 드리는 자가 함께 식사를 합니다. 먹는 제사입니다. 먹는 제사이기에 ‘기쁨의 제사(joy offering)’라고 하기도 합니다. 화목제의 대표적인 의미는 ‘교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탁에서 인간과 하나님이 만나서 음식을 먹음으로 교제하는 제사입니다.
네 번째 제사는 속죄제(the sin offering)입니다.
네 번째 제사는 속죄제(the sin offering)입니다.
속죄제는 인간 안에 있는 원죄를 위한 제사입니다. 그래서 속죄제를 설명할 때 반복되는 것이 ‘무의식중에라도’와 ‘하나라도 어겼을 때’입니다. 이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 삶 속에서 단 하나라도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원죄 가운데 태어났다는 것과 원죄를 용서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죄제는 다섯 가지 제사 중에서 피를 가지고 하는 의식을 강조합니다. 또한 기름과 피를 제외한 나머지 제물들을 불태울 때 진 밖에서 태우는 것이 특징입니다. 속죄제의 대표적 의미는 ‘원죄에 대한 용서’입니다.
다섯 번째 제사는 속건제(the guilt offering)입니다. 속죄제가 행위 이전에 근본적인 원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속건제는 행위로 인해 서로 주고받은 상처, 피해, 손해 등 관계와 갈등의 문제에 초점을 둡니다. 만일 이웃의 것을 취했다면 그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하고, 만족을 시켜줘야 합니다. 모든 관계와 갈등과 잘못을 값으로 치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속건제입니다.
다섯 번째 제사는 속건제(the guilt offering)입니다. 속죄제가 행위 이전에 근본적인 원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속건제는 행위로 인해 서로 주고받은 상처, 피해, 손해 등 관계와 갈등의 문제에 초점을 둡니다. 만일 이웃의 것을 취했다면 그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하고, 만족을 시켜줘야 합니다. 모든 관계와 갈등과 잘못을 값으로 치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속건제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졌다
예수님은 번제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셨기 때문에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자신에게 속한 것은 그 어느 것도 주장하지 않고,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온전히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번제물로 세상에 오셨기에 예수님은 세상에 헌신하신 것입니다. 대속제물이 되기 위하여 헌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소제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소제물로 오셨습니다.
헌신한 그분이 사람이 되심으로 제자들을 섬기고, 이 땅의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십자가에 낮아지기까지 섬김으로 자신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소제물로 드리며 끝까지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화목제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화목제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찬을 제정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예언된 화목제물이십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이 화목하게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먹고 마심으로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셔서 구약의 제사에서 하나님과 제사장, 사람들이 함께 먹음으로 교제했던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이 일어나게 됐습니다.
예수님은 속죄제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속죄제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속죄제물이 되셨기에 진 밖에서 제물이 불태워진 것처럼 우리의 원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땅에 오실 때도 예수님은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는 영문 밖에서 태어나셨고, 죽으실 때도 영문 밖에서 죽으셨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우리의 속건제물이 되심으로 원죄를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해 주고받은 관계 속의 갈등, 상처, 문제를 회복시키고, 보상하시고, 만족시키시는 속건제물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헌신하셨고, 이 땅에 오셔서 섬기셨고, 교제를 일으키셨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나아가 모든 갈등까지 회복시키시는 일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이루셨습니다. 레위기에 나타나는 다섯 가지 제도가 가리키고 있는 의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존 스토트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우리의 속건제물이 되심으로 원죄를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해 주고받은 관계 속의 갈등, 상처, 문제를 회복시키고, 보상하시고, 만족시키시는 속건제물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헌신하셨고, 이 땅에 오셔서 섬기셨고, 교제를 일으키셨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나아가 모든 갈등까지 회복시키시는 일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이루셨습니다. 레위기에 나타나는 다섯 가지 제도가 가리키고 있는 의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존 스토트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죄의 본질은 자기 자신으로 하나님을 대신하는 인간에게 있으며, 구원의 본질은 인간을 위해 인간을 대신하신 하나님께 있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항하여 자기를 주장하면서 오직 하나님께만 해당되는 자리에 자기를 올려놓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키시고, 오직 인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신을 두신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특권을 주장하나 하나님은 오직 인간에게만 속한 형벌을 받으시는 것이다.”
“피가 생명을 대속한다”는 말씀은 인간의 모든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흘려야 할 피를 흘리시고, 인간이 받아야 할 형벌을 받으시고, 인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신을 두심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장차 오실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사건입니다.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때 어떻게 만납니까? 다섯 가지 제물로서 예수님을 어떻게 경험하게 될까요? 가장 먼저 속건제물 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께 나왔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죄악 된 행위, 문제, 갈등, 죄가 만들어내는 빚 된 의식, 죄책감, 인생의 문제들을 통해서 속건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부터 “나는 죄악 중에 잉태되었어”라며 자신이 원죄를 가진 존재라고 인식하기보다 “내 삶에 허물이 있구나, 나로 인해 일어난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우리가 죄인 됨을 깨닫습니다. 가장 먼저 속건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관계가 회복되고, 갈등이 치유되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내가 얼마나 절망스러운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의 원죄를 비로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원죄에 대한 용서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속죄제물 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원죄에 대한 완전한 용서를 체험하면서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과 내가 교제할 수 있는 은혜가 주어졌다는 것과 원죄에 대한 용서를 경험한 사람만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화목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닮아가는 사람은 ‘나도 예수님처럼 섬기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소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섬김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던 예수님처럼 삶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번제물로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헌신으로부터 우리에게 오셨지만 우리는 정반대로 밟아 올라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변화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피가 계속적으로 우리를 정결하게 변화시키는 일을 성령님을 통해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부터 “나는 죄악 중에 잉태되었어”라며 자신이 원죄를 가진 존재라고 인식하기보다 “내 삶에 허물이 있구나, 나로 인해 일어난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우리가 죄인 됨을 깨닫습니다. 가장 먼저 속건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관계가 회복되고, 갈등이 치유되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내가 얼마나 절망스러운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의 원죄를 비로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원죄에 대한 용서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속죄제물 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원죄에 대한 완전한 용서를 체험하면서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과 내가 교제할 수 있는 은혜가 주어졌다는 것과 원죄에 대한 용서를 경험한 사람만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화목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닮아가는 사람은 ‘나도 예수님처럼 섬기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소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섬김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던 예수님처럼 삶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번제물로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헌신으로부터 우리에게 오셨지만 우리는 정반대로 밟아 올라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변화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피가 계속적으로 우리를 정결하게 변화시키는 일을 성령님을 통해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보혈의 능력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의 피가 더욱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히 9:14).
예수님의 성육신은 단 한번으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몸으로 지금도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림은 단 한 번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그분의 피가 지금도 성령을 통해서 계속 역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단 한번으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몸으로 지금도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림은 단 한 번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그분의 피가 지금도 성령을 통해서 계속 역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죄를 지을 때마다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분의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야 우리가 용서받고, 회복되고, 주님을 섬길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성령님을 통해 계속해서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변화시킴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는 삶으로 변화시켜갑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소제물이 되고, 번제물이 되고, 섬김과 헌신의 삶으로 나아가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갈등, 문제, 죄로 인한 상처 등 모든 것을 치유하시는 역사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생명을 구속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행하시는 일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에게 뿌려지고, 그 피의 능력이 우리의 생명을 살리고, 그 피의 능력이 우리의 더러워진 양심으로부터 정결하게 함으로 참된 하나님께 드려진 삶으로 변화시켜 갑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을 날마다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생명의 구속자가 되기 위함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 구약에 예언된 피를 통한 생명의 구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에게 용서가 주어지고, 치유가 주어지고, 회복이 주어지고,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계획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쓰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사모하고, 체험하고, 승리하며, 사랑하는 모든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성탄은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체험하는 복된 성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시키심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가 작은 예수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과 완전한 죄 사함과 보혈의 능력을 체험하고,
승리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피 흘려 우리의 생명을 구속하러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고 기뻐하며 임재를 체험하는 성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시키심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가 작은 예수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과 완전한 죄 사함과 보혈의 능력을 체험하고,
승리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피 흘려 우리의 생명을 구속하러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고 기뻐하며 임재를 체험하는 성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좋은 말씀 > 이재훈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게 소망이 있습니다.(예레미야애가 3:17~23) (0) | 2019.01.08 |
---|---|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누가복음 2장 8~20절) (0) | 2019.01.03 |
유월절 어린양 그리스도 (출 12:1~14) (0) | 2018.12.19 |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창3:15) (0) | 2018.12.10 |
복음 증거를 위해 기도하라 (엡 6:10~20) (0) | 2018.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