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유월절 어린양 그리스도 (출 12:1~14)

새벽지기1 2018. 12. 19. 07:17

 
성탄의 신비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 예언을 통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관념이나 상상속의 예언이 아니라 시간과 장소가 구체적으로 명시된 역사 속에서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시기 위해서 택하신 민족이며, 그 민족의 역사들은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시고, 왜 오셨는지를 보여줍니다.  

출애굽 사건과 유월절 사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중요한 사건인 출애굽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적 혁명운동의 상징(모델)처럼 여겨졌습니다. 17세기 영국 왕실이 왕권신수설을 이용해서 절대 권력을 행사할 때 이에 대항한 올리버 크롬웰이라는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출애굽 사건을 상징화해서 정치운동을 일으켰습니다. 1960~70년대 북미와 남미에서 정치적인 운동을 일으킨 사람들도 성경에 나타난 출애굽 사건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사건이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면 정치적 운동의 근거로 살펴볼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출애굽 사건을 유월절 사건을 생각하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민족으로부터 벗어난 사건으로만 해석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사건에 나타난 핵심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기적적인 역사입니다. 출애굽 사건은 사람들이 의지를 모아서 어떤 이념적인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세상의 정치적인 변화를 목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유월절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통한 출애굽을 통해서 이 세상의 악에 대해 심판하시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따라 순종하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당시 애굽 왕 바로에게 준 경고가 배경입니다.  
 
 
마지막 재앙에 대한 경고 
 
“모세는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밤중에 내가 온 이집트에 다닐 것이다. 그러면 이집트의 처음 난 모든 것들, 곧 왕좌에 앉은 바로의 맏아들로부터 맷돌 앞에 있는 여종의 맏아들까지 그리고 가축의 처음 난 모든 것들이 다 죽게 될 것이다. 이집트 온 땅에 큰 부르짖음이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있지 않을 것이다’”(출 11:4~6). 
하나님께서 악이 가득한 이집트에 처음 난 모든 것을 죽게 하시는 재앙을 예고하셨습니다. 이미 아홉 차례 재앙들을 하나님께서 내리셨지만 바로는 회개하지도 굴복하지도 않았습니다. 여전히 애굽의 많은 신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마지막 재앙에 대한 경고가 내려졌습니다. 그것은 애굽에 가득한 악에 대한 심판이요, 애굽이 섬기고 있는 헛된 신들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재앙이 내려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한 집에 한 마리, 일 년 된 숫양이나 숫염소를 잡아서 그 피를 집의 양쪽 문틀과 위쪽에 바르도록 했습니다. 그 이유가 출애굽기 12장 12~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땅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
“그날 밤에 내가 이집트를 지나가며 사람이든 가축이든 처음 난 모든 것들을 치고 이집트의 모든 신들을 심판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호와다.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 너희 사는 집에 피를 발랐으면 그것이 표시가 돼 내가 그 피를 볼 때 너희를 그냥 지나칠 것이다. 그러므로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너희를 멸망시키는 일이 없을 것이다”(12~13절).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모든 신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 땅에 임하실 때 하나님께서 정하신 양과 염소의 피를 바른 집은 그 피를 보고 그냥 지나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유월(踰越)’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냥 지나친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passover’입니다. 재앙이 그 집에 임하지 않고 지나가게 하시는 것이 유월입니다. 이것은 바로를 굴복시킬 뿐만 아니라, 애굽에 있는 모든 신들을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 애굽에 있는 모든 죄와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죄와 악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처럼 모든 진노가 소멸될 때까지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애굽에 내려지는 마지막 재앙은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 장자와 처음 난 짐승을 하나님께서 치시는 것입니다. 11장 5절을 보면 ”이집트의 처음 난 모든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이집트라는 나라, 이집트 백성 가운데 처음 난 것이 아니라 이집트 지역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심판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표적을 둔 것이 아니라 이집트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동물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만을 핀셋으로 집어서 건져내신 것이 출애굽이 아니라 그 땅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이든, 아프리카 사람이든, 남미 사람이든 간에 당시 이집트 지역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진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지역성이 중요합니다. 그 땅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 구원의 길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은 일 년 된 숫양과 숫염소 둘 중 하나의 피를 문 옆과 위에 바르면 그 피를 보고 그냥 지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다민족 구원사건 
 
하나님이 구원하시겠다고 계획하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닙니다.
“내가 이스라엘 민족만 구원하려고 하니까 너희들은 잘 듣고 절대 다른 이집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너희 민족만을 살리려고 하니 다른 민족에게 네가 아는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 사람이든 이집트 땅에 살고 있는 사람 가운데, 심지어 바로도 이 약속을 믿고 따랐다면 구원의 길이 열렸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이집트의 관료든, 군인이든, 정치적 지도자든 상관없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주어진 구원의 약속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은 모두 구원 받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때 다른 종족들도 많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나갔습니다. 양 떼와 소 떼도 아주 많았습니다”(출 12:38).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 민족만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알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 땅에 살면서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을 알았을까요? 가까운 친구와 이웃에게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를 개역개정에서는 번역을 ‘잡족’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다른 종족들도 많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민족의 혈통적인 사건이 아니라 많은 민족이 함께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다민족 구원사건입니다. 혈통을 통한 구별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피를 통한 구원사건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 너희 사는 집에 피를 발랐으면 그것이 표시가 돼 내가 그 피를 볼 때 너희를 그냥 지나칠 것이다. 그러므로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너희를 멸망시키는 일이 없을 것이다”(13절). 
피를 바른 집은 어떤 민족이든 상관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구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약속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차별과 구별 없이, 민족에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피를 바르도록 했을까요? 심판이 이미 그 집에 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동물의 피를 바르려면 한 생명이 죽어야 합니다. 그 한 생명이 죽었다는 것은 재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17장 11절을 보면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를 위해 제단에서 속죄를 하는 용도로 주었던 것이 바로 피다. 이는 피가 생명을 대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상징인 피를 통해서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방식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피가 발라진 집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지 않고 지나가신 것이 아니라 그 집에 이미 심판이 임했다고 간주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죽으신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고 간주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피 뿌림을 받은 사람들은 마치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뿌려진 집을 유월하듯이 하나님의 심판이 유월되는 것입니다.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봐주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한 죄로 집행된 사건은 다시 집행하지 않듯이,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하기에 그 피를 보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5장 7절에서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심으로”라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증언하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라고 말씀하신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어린양 대속사건을 이루는 양 
 
하나님께서 출애굽 사건을 통해 유월절을 제정하시면서 유월절 양을 표시하는 관사를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유월절에 희생된 수많은 양들을  말씀하실 때 계속 단수를 사용하셨습니다. 한 번도 복수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12장 3절을 보면 “어린 양 한 마리”라고 했습니다. 4절에서는 “바로 그 어린 양”이라고 했고, 5절에서는 “너희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실 때 한 마리 양과 같습니다. 한 분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통해 그분의 죽음이 온 세상을 향하여 어떤 역사가 나타나는 지를 보여줄 때는 ‘어린양 대속사건을 이루는 양’이 되십니다.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들의 양이 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도 유월절 사건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한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놀랍게도 그 명령에 순종해서 이삭을 드리기 위해 모리아산으로 갔습니다. 이삭이 아버지에게 질문했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여기 있는데 번제로 드릴 양은 어딨습니까?”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번제로 쓸 양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예언적인 대답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묶고 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덤불에 숫양 한 마리가 걸려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양을 잡아 자기 아들 대신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의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어린 양이 이삭을 대신하여 드려졌다는 것입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쳐질 뻔 하다가 중단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순종에 감동해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할 때 장면이 중단됩니다. 그러나 그 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양이 이삭을 대신하여 드려졌습니다. 하나님은 양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이삭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양이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려진 것이고, 우리가 심판된 것이고, 우리가 다시 살아난 것으로 간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 
 
출애굽 당시 이집트로 돌아가서 두 집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피를 발랐습니다. 한 집은 피를 발라놓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믿음이 강한 가정이었기 때문에 평안가운데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또 한 집은 옆집보다 피를 더 많이 발라놓고도 불안해서 잠을 못 잤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양쪽 다 살았습니다. 잠만 못 잔 것입니다. 이게 믿음의 삶과 불신의 삶입니다. 구원의 약속은 우리 믿음의 강도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란 내가 강하게 믿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변치 않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바라볼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지 나의 믿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나의 믿음의 강도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확실히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어린 양의 피를 발라야 합니다. 심판의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의 피를 보고 넘어가시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에게는 끝난 절기이지만 영적 유월절로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피가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셔서 우리 모두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케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땅의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며, 맞이하며, 기뻐하며, 그분의 축복을 나누는 
성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