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의 아이콘 내시 에벳멜렉!
(렘38:1-13/렘39:16-18)
◆본문
1.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는 말을 들은즉 이르기를
2.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자는 살리니 그는 노략물을 얻음같이 자기의 목숨을 건지리라
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의 왕의 군대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가 차지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4.이에 그 고관들이 왕께 아뢰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 청하건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5.시드기야 왕이 이르되 보라 그가 너희 손 안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를 수 없느니라 하는지라
6.그들이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렸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
7.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이 그들이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음을 들으니라 그 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
8.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왕께 아뢰어 이르되
9.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 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에서 굶어 죽으리이다 하니
10.왕이 구스 사람 에벳멜렉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는 여기서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
11.에벳멜렉이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 곳간 밑 방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헝겊과 낡은 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밧줄로 내리며
12.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당신의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에 대시오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13.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렘39:16-18: 에벳멜렉 축복)
16.너는 가서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이성에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한 나의 말이 그날에 네눈 앞에 이루리라
17.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18.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서론
오늘도 유명하지 않으나 위대한 영웅 시리즈를 이어갑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시드기야 왕의 내시 에벳멜렉입니다.
우선 오늘 전할 말씀의 내용과 관련한 시대적 배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때는 남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왕 때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과 남유다의 멸망직전의 일입니다.
시드기야 는 요시야의 네째 아들로서 그의 형제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으로, 그는 비참한 환경을 물려받았습니다. 한 형제는 애굽으로 잡혀갔고, 다른 형제는 바벨론에 의해 끌려가 처형되었고, 그의 전왕인 조카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입니다. 시드기야 왕은 당시 선지자 예레미야의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선포했으나 듣지 않았습니다.
“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이...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렘37:2)
이는 시드기야 재위 동안의 유다의 패역함과 불순종을 요약해 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시드기야 왕은 애굽의 바로인 호브라(렘44:30)와 동맹관계를 맺고(왕하24:20), 바벨론에 대항하기 위해 진격했으나(겔17:11-21), 바벨론의 강력한 군사력에 밀려 애굽이 동맹을 파기하고 돌아간 상태였습니다. 한 마디로 유다는 풍전등화의 위기였습니다.
이 후 예레미야의 권고를 무시하고 바벨론에 항거했다가 바벨론 군대이 침공을 받아 예루살렘이 포위됨으로써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한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중보 기도를 요청합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시드이갸의 기도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장차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것이므로, 왕과 백성은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거듭 선포하자 예레미야가 체포되어 죽음의 위기를 맞습니다.
이때 예레미야 선지자를 구한 것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에벳멜렉입니다.
에벳멜렉은 남유다 시드기야의 왕의 내시로 이름의 뜻은 ‘왕의 종’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무척 사모했던 이방(구스) 출신 내시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출한 작은 영웅입니다.
◆본론
내시 에벳멜렉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 믿음의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7-8절)
오늘 본문 1-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는 말을 들은즉 이르기를
2.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자는 살리니 그는 노략물을 얻음같이 자기의 목숨을 건지리라
여기서 갈대아인은 바베론의 다른 표현입니다.
예레미야는 왕과 백성이 사는길은 오직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유다의 고관들이 분개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의 왕의 군대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가 차지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3절)
이에 고관들은 왕에게 매국노인 예레미야를 즉각 처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이에 그 고관들이 왕께 아뢰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 청하건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4절)
왕은 고관들의 이 요구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시드기야 왕이 이르되 보라 그가 너희 손 안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를 수 없느니라 하는지라”(5절)
이에 고관들은 군사를 시켜 즉각 예레미야를 체포해서 땅굴을 파고 깊은 지하 감옥에 선지자를 수감합니다.
“그들이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렸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4절)
그래서 지금 예레미야는 지하 감옥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상태입니다.
이때 오늘의 주인공 시드기야 왕의 내시 에벳멜렉이 이 소식을 듣고, 즉시 왕에게 달려갑니다.
7.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이 그들이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음을 들으니라 그 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
8.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왕께 아뢰어 이르되
9.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이 당시 분위기는 예레미야는 매국노로 이 사람을 더 이상 살려 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때였습니다.
다시 4절을 읽겠습니다.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일개 내시가 예레미야를 살리려고 발 벗고 나선 것입니다.
저는 에벳 멜렉의 이 말이 얼마나 도전이 되었는지 모릅니다.(9절)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이 말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나 내시의 신분을 볼 때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믿음의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에벳 멜렉의 ‘신앙의 용기’에 도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고로 에벳멜렉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렘39:18)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렇습니다. 에벳멜렉은 믿음의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위인들이 ‘용기’에 대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다.
용감한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는 사람이다. -넬슨 만델라->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괴테->
<용기란 자신이 두려워 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즉 두려움이 없으면 용기도 없다.-에디 리켄배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에 맞서고 저항하는 것이다.-마크 트웨인->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용기를 원하고 계실까요?
제 개인적으로 성경을 통해 은혜 받은 말씀 몇 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참고로 성경에는 ‘용기’라는 단어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 ‘담대하라’는 말씀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30:6)”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시31:24)”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1:9)“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저는 성경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 한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다윗을 꼽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소년 다윗은 거인 골리앗 앞에서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17:26)”
골리앗 앞에서 다윗의 용기!
오늘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덕목입니다.
'Say, no!'
이 말은 마약 퇴지 운동에서 쓰던 슬로건 중 하나입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마약을 권하면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하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유혹을 거절하라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no!'라고 했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의 유혹에는 'no!'라고 하지 못했고
솔로몬은 많은 아내들의 요구에 'no!'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가룟유다는 대제사장의 제의에 'no!'라고 하지 못했고
빌라도는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군중의 소리에 'no!'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 유혹에 'no!'라고 했습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바벨론제왕의 우상강요에 단호히 'no!' 했습니다.
그래서 불 못에도 들어가고 사자 굴에도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셨습니다.
‘no!’라고 말해야 할 때 단호히 ‘no!’라고 말하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No!‘
이렇게 말해야 할 때 단호히 말 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용기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육신적 용기는 훌륭한 것이고
도덕적 용기는 더 훌륭한 것이며,
무엇보다도 영적 용기는 위대한 것이다.
언젠가 했던 말입니다.
예레미야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하려는 에벳멜렉의 행위가 바로 믿음의 용기입니다.
우리도 이런 용기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시 에벳멜렉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둘째, 긍휼히 여기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니다.(9절)
본문 9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 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에서 굶어 죽으리이다”
여기서 ‘성중에 떡이 떨어 졌거늘’이란 말은 성에 양식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누가 예레미야에게 먹을 것을 줄지 않을 것이므로, 저 깊은 구덩이에서 굶어 죽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속히 꺼내야 한다는 간청입니다.
이것이 제가 에벳 멜렉을 ‘긍휼의 아이콘’이라고 한 이유입니다.
사전적으로 ‘긍휼(矜恤)’이라는 단어는 ‘矜-불쌍히 여길 긍’자와 ‘恤-도와줄 휼’자를 씁니다.
이는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서 도와줌’이란 뜻입니다.
에벳멜렉에게 이런 긍휼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왕과 백성들 대부분이 예레미야를 죽여야 한다는 압도적 분위기 속에서 에벳 멜렉은 그를 살려야 한다는 강력한 내적 욕구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긍휼’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초적인 영적 욕구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여기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긍휼’로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원래 개역성경은 히4:15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여기서 체휼(體恤)이 바로 ‘긍휼(矜恤)’과 같은 뜻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개역성경의 ‘체휼’이라는 번역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2:4-5)“ 아멘!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산상 수훈에서 천국백성의 가치관을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
그렇습니다. 긍휼이 여길 줄 아는 사람이 긍휼이 여김을 받습니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사랑 받습니다.
줄줄 아는 사람이 받는 법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큰 찔림을 주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눅10장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입니다.
3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긍휼)
34.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이 말씀을 이렇게 변형할 수 있습니다.
“또 이와 같이 한 목사(장로, 집사, 권사, 크리스찬, DCF맨도)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오늘날 우리 민족교회 상황을 보면, 그리고 내 자신을 보면 꼭 내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참고>선한 사마리아 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외국의 많은 나라에서는 이미 적용되고 있는 ‘선한사마리아 법’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채택되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점차 인간성을 상실하고 비윤리적이 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이 법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 근거한 법
‘선한사마리아 법’이란 자신에게 아무런 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도와주지 않아서 그 사람이 피해를 봤을 경우, 돕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법을 말한다.
이것은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 근거한 법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주변사람들이 적극적인 구호활동을 하도록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또한 이 법에는 선한 의도로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돕다가 본의 아니게 과실을 낸 경우, 그 과실들의 민ㆍ형사상 책임을 면해주는 내용도 담고 있다.
‘선한사마리아 법’은 점차로 냉혹하고 흉폭해져 가는 현대사회에서 윤리성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유1:2)”
긍휼과 사랑이 풍성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시 에벳멜렉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셋째, 성실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11-13절)
우리는 종종 ‘참 성실(誠實)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면 과연 어떤 사람이 성실한 사람일까요?
이 말은 ‘정성스럽고 참되다’는 의미입니다. ‘성실’에 가장 가까운 단어가 ‘충성’입니다.
하나님을 포함하여 윗사람에게 성실하게 대하는 것이 ‘충성’이며, 동료나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성실’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1-2)“
<1. So then, men ought to regard us as servants of Christ and as those entrusted with the secret things of God.
2.Now it is required that those who have been given a trust must prove faithful.>
여기서 ‘충성’이 바로 ‘성실’입니다.
에벳멜렉의 충성은 마치 ‘하나님께 충성’한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소한 일에 충성한 것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일 경우가 참 많습니다.
마2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소외된 자를 돕는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디. 주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실한 삶의 자세를 가진 제자의 태도입니다.
그러면 에벳메렉은 어떤 성실함이 있었을까요?
“왕이 구스 사람 에벳멜렉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는 여기서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10절)
예레미야를 구출해도 좋다는 왕의 허락을 받은 에벳멜렉은 구출에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먼저 왕궁 창고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예레미야를 웅덩이에서 건저 올릴 만한 줄을 찾았지만 없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주변에 있는 헝겊을 엮어서 줄을 만들어 예레미야가 갇혀있는 깊은 웅덩이로 달려갔습니다.
“에벳멜렉이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 곳간 밑 방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헝겊과 낡은 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밧줄로 내리며”(11절)
에벳멜렉은 예레미야에게 줄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에벳멜렉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구출됩니다.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당신의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에 대시오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12-13절)
예레미야는 이렇게 성실한 한 에벳멜렉을 통해 구출됩니다.
그러면 이 충성된 종 에벳 멜렉을 지켜보신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대우 하셨을까요? 그에 대한 내용이 바로 렘39:16-18말씀입니다.
16.너는 가서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이성에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한 나의 말이 그날에 네눈 앞에 이루리라
17.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18.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는 에벳멜렉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를 바벨론의 압제에서 구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댓가 받기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저와 여러분도 에벳멜렉 처럼 작은 일에도 성실하고 충성된 제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은밀한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본문을 통해 다시 한번 ‘감찰하시는 하나님’ ‘주목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벳멜렉의 이 모든 행동을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에벳멜렉을 주목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주목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첫째, 믿음의 용기를 가지라(7-8절)
▶둘째, 긍휼히 여기는 믿음을 가지라(9절)
▶셋째, 성실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라(11-13절)
이 명령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좋은 말씀 > 리민수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1 과 부르심에 순종하라! (렘1:1-10) (0) | 2018.12.21 |
---|---|
역사적 부록-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후의 사건들! (0) | 2018.12.20 |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이시니 반드시 보응하시리로다!(렘51:54-64) (0) | 2018.12.17 |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속히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렘51:45-53) (0) | 2018.12.15 |
너는 나의 철퇴 곧 무기라!(렘51:20-44: 열방을 도구로 바벨론 심판 하실 것을 예언) (0) | 2018.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