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여호와? 바알? (열왕기 상 18:20-24)

새벽지기1 2018. 2. 14. 07:14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18:21)

때는 주전 9세기올시다. 북편 이스라엘 나라, 가멜산상에서 된 일을 간단히 읽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왕은 악한 아합, 왕후는 이방 여인 이세벨로서 바알과 아스다롯 우상 숭배에 열중하던 여자였습니다. 따라서 여호와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많은 핍박 가운데서 신음하던 때였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엘리야 선지자는 혜성과 같이 나타나서 아합 왕에게 그의 모든 악행을 책망하면서 그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이 앞으로 3년6개월 간 하늘이 문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않겠다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 때가 다 차갈 무렵에 엘리야가 왕과 모든 백성을 가멜산에 모아 놓고 바알의 선지자도 450명이나 둘러선 그 자리에 홀로 선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는 그 때의 모든 백성들을 향하여 한 말이 이 말입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이 장면은 이스라엘 종교 역사상뿐만 아니고 국가 역사상 가장 중대한 잊을 수 없는 극적인 장면인 줄 생각합니다. 사실 이 때에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의 운명이 이 가멜산상에서 결정이 된 것입니다.
당시 가멜산상에 모인 사람들을 간단히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참 신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 둘째는 거짓 신 바알의 선지자 450명, 셋째는 수다한 민중들, 이 편이나 저 편이나 무슨 작정이 없는 머뭇머뭇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자대로 번역하자면 절룩거리는, 한 번은 이 다리로 서고, 다음에는 다른 다리로 서고, 뛰는 모양, 여기 섰다 저기 섰다 하는 그런 형편에 있는 것입니다.


이 때에 엘리야는 이렇게 작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대중을 향해서 너희가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 하려느냐? 확실히 옳은 편에서야 되지 않겠느냐? 얼마나 오래 그렇게 절룩거리겠느냐? 아마 이 사람들은 여호와도 섬기고 바알도 섬길 수 있는 줄 알던 모양입니다. 엘리야의 말씀은 그럴 수가 없다고 분명히 지적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한 바와 같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바알,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할 대에 기록한 바와 같이『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말씀한 것입니다.
스티븐슨의 유명한 소설의 인물처럼 낮에는 지킬 박사로서 선한 생활을 하고 밤에는 하이드맨으로서 깡패 노릇을 오래 계속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바알의 두 주인을 오래 같이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박쥐처럼 새 틈에 가게 되면 새 노릇을 하고, 짐승 틈에 가면 쥐 노릇을 오래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 발은 천국에 들여놓고 한 발은 지옥에 디디고 오래 계속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경고했습니다.『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라.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에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가고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 하느냐? 그 뜻은 너희가 얼마나 이런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마 그 때 그들 가운데는 상당히 오래 이런 생활을 계속한 이들이 있은 모양입니다. 어떤 이들은 3년, 어떤 이들은 5년, 어떤 이들은 10년, 어떤 이들은 청년 시대에도 그러했고, 중년 시대에도 그러했고, 백발이 성성해지는 노년 시대에까지도 작정하지 못한 이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인생의 봄이 다 가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닥쳐왔지마는 아직도 머뭇거리는 분이 있은 것 같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그와 같은 분이 안 계십니까? 교회에 가끔 출석은 합니다. 오랫동안 믿기는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 온전한 작정을 못 내리고 머뭇거리는 분이 계십니까? 오래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아직도 학습도 서지 못하고 세례도 못 받은 교우는 없습니까?
『너희가 얼마나 오래 머뭇거리겠느냐?』아마 그 뜻은 하나님의 징계와 경고가 너희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런 생활을 계속할 수 잇느냐? 그 뜻도 포함된 줄 믿습니다. 벌써 비가 그친 지가 三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징계요 하나님의 경고가 분명한데도 너희가 아직까지 그와 같은 머뭇거리는 생활을 계속할 수가 있겠느냐?
하나님께서 어떤 때에는 우리에게 완전한 회개를 재촉하시기 위해서 직접 간접으로 징계를 하시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경고도 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질병을 통해서, 어떤 때에는 환난을 통해서, 어떤 때에는 천재와 지변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경고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져서 열 여덟 사람이 갑자기 몰사한 사건을 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경고하는 말씀이『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멸망하리라.』하셨습니다.


이탈리아에 있는 중고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신 교회 월덴시안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를 처음 설립한 사람은 파티 왈도라 하는 분이올시다. 이 분이 젊었을 때에 어떤 큰 연회에 초청을 받아서 여러 젊은 사람과 같이 마음껏 호화롭게 놉니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그 친구 중 하나가 어떠한 병으로 그 자리에 쓰러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광경이 이 청년 왈도에게는 큰 경고가 되었습니다. 온전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경고를 주십니다. 이런 경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계속해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고 책망하십니다. 분명히 우리가 기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비록 오래 참으시지마는 최후에는 홍수의 심판을 내리신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크신 긍휼(矜恤)과 자비로써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들의 죄악을 오래 참으셨지마는 최종에는 불과 유황의 심판을 내리신 것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실 때에, 그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우리는 온전한 작정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지금이야말로 은혜주실 때요 오늘이 구원의 날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까지 구원 문제에 있어서 온전히 작정하지 못하고 머뭇머뭇 하는 이가 있으면 오늘 아침 이 시간 하나님께서 기회주실 때에 온전히 작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기회가 영원히 다시 안 올지 누가 압니까?
그리고 오늘 아침 특별히 나라를 생각하며 기도하는 주일인데, 깊이 생각해 보면 지금은 이렇게 영적 방면뿐만 아니고 사상적 방면에서도 우리가 여호와를 섬길 것이냐? 바알을 섬길 것이냐? 결단을 분명히 내려야 될 시기입니다.
우리 민족의 사상계를 살펴보거나 세계 인류의 사상계를 살펴보아도 대략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유와 민족주의를 확립한 이들입니다. 둘째는 노예와 공산주의에 완전히 사상적으로 노예화한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그 중간에서 머뭇머뭇 작정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유감이지마는 우리 남한에도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더러 있지 아니한가 생각됩니다. 거기에는 또한 이유가 없지 않을 줄 압니다. 과거 10년간에 부패된 이씨 정권이 너무 행정적으로 실패한데 원인이 없지 않아 있는 줄 생각합니다. 또한 4월 혁명 이후에 새로운 정권이 수립되기는 되었지마는 아직까지 질서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각 방면에 사회가 혼란하고 실직자는 거리에 범람하게 되는 이러한 현상을 당할 때에 여러 사람이 말하자면 환멸을 느끼는 현상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이러한 기회를 이용해서 북한의 공산당들은 갖은 기만적 선전 공세를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경제를 원조하겠다, 실직자에게 직업을 주겠다. 한국 특별히 남한에서 전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하니까 전기를 보내준다, 서신 왕래를 피차 하도록 하자. 문화 교류를 하도록 하자고 그네들은 말합니다. 이와 같은 이 기회를 노려서 기만적 선전에 귀가 솔깃한 그런 이들이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아무렇게 해서라도 우선 남북 통일을 해 놓고 볼일이야. 중립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특별히 6·25의 실제 경험이 없는 어린 청소년 학생들 사이에 이런 사상이 없지 않아 있는 것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세요. 그들이 그렇게 동포애에 불타서, 사실 남한 동포들을 사랑해서, 경제적으로 도와줄 마음이 있다고 하면 왜 애당초 1947년에 그렇게 필요한 전기를 끊어버렸습니까? 압록강에서 발전되는 전기는 한국뿐 아니고 만주 일대에 다 쓰고도 남습니다. 왜 끊어버렸습니까? 기억하세요. 그들은 계급은 압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압니다. 그러나 민족은 모릅니다. 그들에게 동포애니, 조국애라고 하는 말은 붙일 수도 없는 말입니다.
남북이 교류해서 실업자를 구제해 주겠다고 하는 말은 실업자가 많은 남한 사람에게 그럴 듯한 말입니다. 또 사실 북한에 가게 되면 직업이 없을 염려는 없습니다. 우리 지금 남한에 실직자가 많지마는 제일 실직자가 많은 것이 대학 졸업자라 합니다. 대학 졸업생들, 신학 졸업생들까지라도 북한에만 간다면 제일 먼저 사동 탄광과 안주 탄광에 모조리 집어넣을 겁니다. 거기서는 데모도 못합니다. 탄광에 들어가서라도 내가 노력으로 내 생활을 개척할 정신이 있다고 하면 그런 사람은 남한에서도 밥 굶지 않을 줄 생각합니다.
문화를 교류하고 서신을 서로 왕래하자고 하는 말이 가족이 분산된 사람과 오래 소식 모르는 가정에게 얼마나 달콤한 이야기입니까?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그렇게 인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면 왜 10년 전에 수천 명을 납치해 놓고 10년 동안이나 그렇게 소식을 알게 해 달라고 국제 적십자사를 통해서 암만 교섭했지마는 왜 지금까지 마이동풍의 태도를 가집니까? 속지 마십시다. 이것은 다 침투 작전, 침략, 적화 통일의 야망을 위한 기만선전 뿐입니다. 남한의 자유를 말살하려고 하는 흉계입니다.
특별히 4월 혁명 이후에 새 정부가 수립되어서 이 앞으로는 민주적 자립이 잘 건설될 희망이 보이니까 이런 흉계를 더욱 강하게 하는 겁니다. 6·25의 남한 무력 침략이 실패한 지 근 10十년이 되니 다시 침략의 독아(毒牙)를 내미는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그들은 무신론자들입니다. 우주의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릅니다. 그들은 유물론자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같이 물질로 된 동물인 줄 압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재래의 도덕을 일체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선이 무엇이냐? 그들의 선에 대한 정의는 공산당에 승리를 가져오게 하는 것은 다 선이요, 무엇이든지 공산당에게 해를 주는 것은 악이라고 그럽니다. 배신이니, 기만이니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도 공산당에 유리하면 그들에게는 선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꿈은 공산 독재를 통해서 남한을 정복할뿐더러 세계를 정복해 보자는 것이 그들의 꿈입니다. 그 사회에는 우리가 아는 자유라고 하는 것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신교의 자유는 말할 것 없고, 언론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나, 출판의 자유나, 거주의 자유나, 직업의 자유나, 아무 자유가 없습니다. 그들의 사회는 오직 공포 아래에서 노예와 강제 노동 아래에 구사되는 생활밖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물론 직업은 다 있습니다. 종의 직업은 다 있습니다.
그들이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를 침략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우선은 침투올시다. 오열을 침투시켜서 공산주의가 좋다고 선전합니다. 그래서 그 침투 작전을 통해서 그 나라 안에서 거기에 찬동하는 사람이 좀 있게 되면 그 다음에는 협상하자고 그럽니다. 협상하게 되면 그 다음에 사로 합작해서 서로 정부를 세우자고 합니다. 합작해서 어물어물 하다가 그 동안 무력을 양성해 가지고는 무력으로 온전히 정복하고 맙니다.
이 방법으로 그들이 중국 전토를 정복하였습니다. 협상하자, 국공 합작하자, 뒤로는 소련서 무기만 가져왔습니다. 어물어물 하는 동안에 무력으로 다 정복하였습니다. 그 방법으로 체코슬로바키아를 온전히 적화시켰습니다. 그 방법으로 지금 라오스를 침략하는 중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오열의 침투를 삼가야 됩니다. 이 오열은 각계 각층에 침투해 들어와 있는 줄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 통일을 원합니다. 특별히 북한에서 온 분이 우리 가운데는 대다수인데 북한에서 온 사람으로서 여러 친척이 거기에 있고 선친의 무덤이 다 거기에 있는데 거기서 온 사람으로서 누가 남북 통일을 원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보다도 남북 통일을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이 한 가지는 있습니다. 이것은 꼭 민주 통일이어야 합니다. 자유가 승리하는 통일이어야 됩니다. 이 민주 통일에 확실한 보장이 없는 통일론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소위 중립 통일론은 첫째로는 한국의 지리적 조건을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는 사람들, 둘째로는 우리 한국 국민의 정도가 어떻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셋째로는 공산주의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잠꼬대뿐입니다. 중립 통일을 해서 과연 남한의 자유가 유지될 것 같습니까?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그들이 10년 전에 무력으로 6·25를 통하여 남한을 정복하려고 해 보았습니다. 그 때의 한국 청년들과 우리 우방 자유 16개국의 백만의 청년들이 그 귀한 피의 값을 지불하고서 우리 남한의 자유가 겨우 보장되었습니다. 이제 이 남한의 자유 확보에 위험을 가져오는 어떠한 사상도 우리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은 사상에 대해서는 생명을 걸어서 싸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꼭 자유로 살아 갈 수 있는 노선을 확립해야 합니다. 여호와냐, 바알이냐? 자유냐 노예냐? 우리는 자유를 선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섭니다.


이 때에 힘쓸 것은 몇 가지가 있는 줄 압니다. 제일 먼저 정부와 국민이 일치 단결해서 데모는 그만하고, 이 자유 확보와 민주 건설에 매진해야 됩니다. 정신을 차리고 단결해서 적극적으로 민주 건설에 매진해야 될 것입니다. 둘째는 특별히 정부 당국자들은 과감한 경제 정책을 써서 실직자들에게 직업을 주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셋째는 과감한 사회 정책을 써서 극빈자의 생활을 확립하도록 대책을 수립해야 될 것입니다. 넷째로는 혁명의 뒤처리를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또 적은 범위 내에서 그치고 적극적으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사상의 노선을 분명히 해야 우리 민족의 백년, 아니 천년 대계에 그릇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잘하면 우리에게 해방을 주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민족에게 자유를 주시고 또한 통일을 주실 날이 확실히 올 줄 ale습니다.
언제든지 모사는 재인(謀事 在人)이나 성사는 재천(成事 在天)입니다. 순천자(順天者)라야 흥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마지막에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호와냐, 바알이냐? 자유냐, 노예냐? 우리는 든든히 바로 서서 우리 민족의 자유에 대하여 그릇됨이 없어야 되겠습니다. (1960년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