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 (로마서 16:1~16)

새벽지기1 2018. 2. 7. 07:11


사도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치면서,
스물여섯 명의 사람들을 로마 교인들에게 천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조사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부친께서 목회하셨던 교회뿐만 아니라 제가 목회를 했던 여러 교회들을
가장 깊은 곳에서 경험하였습니다.
제가 모셨던 분들과 함께 일했던 부교역자들과 간사들, 그리고 수많은 교인들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 과연 천거할 사람들이 누구이며, 또 몇 사람이나 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회마다 봉사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주방 일은 힘듭니다.
교회마다 주방을 관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참 많은 수고를 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을 기쁜 마음으로 천거하기가 망설여집니다.
그 이유는, 제가 보기에는, 주님이나 교우들을 위한 봉사라기보다는 주방 주도권 유지가
목적으로 비춰졌기 때문입니다.
저한테 잘한 분들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 선뜻 천거하기에 주저하는 사람들도 또한 많습니다.
순수하게 주님과 교회를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나 정치가나 기업가들이 자신의 야망을 이루고자 한다면,
자신에게 잘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야망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들을 천거한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자신에게 얼마나 충성했는가가 아니라,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얼마나 순수한 충성을 바쳤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평신도들입니다.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주님과 교회에 열정과 충성을 바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 자체가 우리들에게 큰 은혜가 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겐그리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롬16:1)

겐그레아는 오늘날의 그리스 남부에 위치한 고린도의 항구도시로서,
사도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장소입니다.
당장 로마로 갈 수 없었던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가려는 뵈뵈에게 편지 전달을 부탁하였습니다.

뵈뵈는 교회의 일군이라 하였습니다.
‘일군’은 헬라어 ‘디아코논’으로 집사를 의미합니다.
당시는 남성 중심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등장하면서 여성들도 교회의 중심으로 떠오릅니다.
당시 여자 집사들은  심방,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

그리고 병든 자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등,

남자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일들을 독립적으로 담당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뵈뵈에 대해서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라고 말합니다.
보호자는 ‘프로스타티스’로 공동체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며,
어려울 때나 위급할 때 도와주는 후원자로서 부자들이었습니다.
뵈뵈는, 많은 재산으로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동시에 사도 바울의 사명을 깊이 이해하고
그를 풍성하게 후원하였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 목이라도 내어놓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롬16:3-4)

초대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평신도 부부가 바로 브리스가와 아굴라입니다.
이들이 사도 바울을 처음 만난 것은 고린도입니다.
그들의 직업은 사도 바울과 같은 천막 제조업입니다.
로마에 살던 이들은 기독교 박해를 피해 고린도에 왔다가 사도 바울을 만났고
그 후로 그와 동행하며 선교 사역을 열심히 도왔습니다.
당시는 교회 건물이 따로 없었고 모두 가정 교회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시작은 바로 브리스가와 아굴로 가정이었습니다.
자신의 집을 가정 교회로 내어 놓은 이들은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않았고,

에베소에서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사도 바울을 죽이려할 때 목숨을 걸고 사도 바울을 구했습니다.
또한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한다.”는 사도 바울의 말을 통해 선교와 구제와 봉사에
열심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부에게 사도 바울은 최고의 경의와 존경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라고 사도 바울이
소개한 사람은 고린도에서 처음 복음을 받아들이고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함께 열심히
사도 바울의 사역을 도왔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란, 초신자로서 머문 것이 아니라, 성도로서 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참여한
중요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새신자 교육을 하다보면 성서학당을 보고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온 사람들을 만납니다.
가장 감사하고 고마운 분들입니다.
저에게 목사가 된 보람을 확인시켜주는 가장 감사하고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은 ‘나는 초신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리더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마리아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라고 소개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인들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당시 로마에서 일어난 박해를 피해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도시로 왔고 그 중에는 마리아도 있었습니다.
그녀를 통해 로마 교회의 설립 과정과 상황을 상세히 들었고,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마리아가 얼마나 다른 성도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수고하였는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그 사람을 소개하는 간결하지만 핵심적인 형용구를 붙여 줍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
나에게는 어떤 형용구가 붙여질까?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친척’은 사도 바울의 가족 중 하나라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을 말합니다.
언제 사도 바울과 감옥에 갇혔는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수시로 감옥에 갇혔는데 그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보다 먼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아마도 예루살렘에서였을 것입니다.
그때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맡은 일들을 열심히 하여 사도들과 성도들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보기 드물게 훌륭한 사람입니다.
당시 사도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기독교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바울을 ‘사도’라고 부르지만, 바울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는 사도가 아니었고,
오히려 대적자였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사도권은 의심을 받았고 도전을 받았고, 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바울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정통 기독교인으로 그 명성과 위상이 높았습니다.

목사가 교회에 청빙되면 가장 어려운 것이 장로와의 관계입니다.
장로가 설립자라면 그 어려움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사장과 고용 사장과의 관계로 보면 가장 정확합니다.
목사를 목사로 인정하고 진심으로 돕는 장로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목사가 존경하는 장로라면 정말 훌륭한 분입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그런 사람입니다.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
암블리아는 ‘크다’는 뜻으로 특히 황제 가문에서 많이 사용된 이름입니다.
스다구도 황제 가문에서 사용한 이름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를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반면 “우르바노”는 일반적으로 로마 노예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를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라고 부릅니다.
사도 바울이 기꺼이 동역자로 부를 때 그가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진짜 교회는 참 좋은 곳입니다.
그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황제 측근이나 가족들이 그들이 부리던 노예와 함께 지내며 때로는 노예들이 더 중요한
직책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를 진짜 좋은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공은 어린이들과 청소년, 그리고 초신자들입니다.
그들을 잘 양육하여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생명의 리더로 살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을 받은 아벨레”
아벨레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극심한 시련을 통해 신앙의 연단을 받았고,

그 고난을 불굴의 신앙으로 극복하고 교회의 신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는 “주 안에서 수고한”이라는 형용구를 붙여줍니다.

교회 안에는 수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고의 목적이 각각 다릅니다.
18절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자기의 배만 채운다는 것은 자신의 이득이나 명성이나 명예를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이해하지 못할 것은 교회에서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입니다.
이득이 없으면 지위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사람들”로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당부합니다.

주 안에서 수고하기로 합시다.
주 안에서 수고할 때,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를 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기뻐하시고 사람들은 존경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더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무한 복을 허락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