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추가 파병동의안과 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동의안 비준은 국민의 관심사였다. 이 중 파병동의안이 국회에서 겨우 통과됐다. 이 안의 비준 무산이 국민들에게 준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좌절과 절망을 지나 터질 것같은 분노와 구역질 나는 혐오의 수준이다.
이라크 추가파병과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가 있고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적인 국익 차원과 국가신인도 면에서 두 안이 처리되어야 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경제의 73%를 무역에 의존하고 북핵의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국제적인 협력과 동맹관계는 무척 중요하다. 이런 마당에 파이낸셜 타임스 2월9일자와 10일자 1면에 각기 실린,일장기를 단 장갑차를 앞세우고 늠름하게 이라크에 진입하는 일본 자위대의 모습과 동의안 처리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한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경찰과 충돌하는 살벌한 모습은 우리의 억장을 무너뜨렸다.
이들 안건 비준이 무산됐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4월 총선을 앞둔 각 당의 당리당략과 표심 자극 및 지도력 부재가 중요한 이유로 꼽히는 것같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 ‘나와 우리는 당장 총선에서 이겨야 산다’는 절박한 의식이 식물국회의 무기력한 모습을 불러온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패러독스이다. 하나님 나라의 대의를 위해 죽고자 하면 살고 자신의 이권을 위해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살고자 하면 죽고 나라를 위해 죽고자 하면 산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직책을 걸고 대의를 지키면 살고 직책을 잡고 소신을 팔면 죽는다.
우리 국민은 나라를 위해 죽고자 하는 소신파 지도자에 목말라 하고 있다. 혼란과 요란,요동의 현실에서 진정 나라의 장기적인 번영과 발전을 위해 죽고자 하는 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다. 목전의 이익과 집단의 이권을 탐하는 ‘떠드는 소수’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꾼이 아니라 장기적인 국리민복을 바라는 ‘조용한 다수’의 속뜻을 헤아리는 정치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죽어야 산다는 진리를 깨우친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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