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리니 (이사야 29:13~20)

새벽지기1 2017. 6. 11. 22:22


잘 해보려고 애쓰는 자녀의 모습을 볼 때 부모들은 오히려 자녀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설사 잘못을 저질렀어도 용서해줍니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냉혹한 법도
뉘우치고 잘 해보려고 애를 쓰는 범죄인들을 사면해 줍니다.

하물며 사랑의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잘 해보려는 갸륵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왜 돕지 않으시겠습니까?

캐롤린 마틴은 뇌성마비로 태어났습니다.
침을 흘리고 팔과 머리가 계속 흔들거리며 발음도 정확하지 않아서
그녀의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은 그녀를 정신 지체 장애자라고 오해하였습니다.
그녀는 뇌성마비자체보다는 사람들의 오해가 더 슬펐습니다.
누구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정신 지체 장애 병원에서 15년을 지낼 수밖에 없었던 캐롤린은
의미있는 삶을 찾아 독립을 하였습니다.
뜨거운 차를 잔에 붓는 것을 배우는 데만 3개월이나 걸렸습니다.
일상의 삶 자체가 너무도 어려웠지만 차근차근 견디고 이겨냈습니다.
고등학교에 등록해서 졸업했고 이어서 야간 대학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2년의 학위 과정을 7년 걸려 마치고 난 후,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잘 알고 싶어 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신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한번은 설교를 해야 하는데, 그날이 왔습니다.
캐롤린은 온 힘을 다해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마침내 예배 시간이 되었고, 캐롤린은 한 친구에게 설교문을 읽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캐롤린은 단상 왼쪽에 앉아있었습니다.
가끔씩 머리와 팔은 제멋대로 움직였고 침이 흘러 블라우스에 떨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 친구가 설교문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과연 어떤 설교를 할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호기심은 집중으로, 집중은 충격으로,
마침내 너무나 큰 감동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 말씀에서 캐롤린의 통제 불능의 육체 한 가운데
생생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재를 보았습니다.
캐롤린은 누구보다 정상적인 정신과 누구보다 고귀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많은 친구들이 생겼고, 필립 얀시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필립 얀시는 캐롤린을
“아주 머리가 좋고 재주도 많으며 무엇보다도 유머 감각이 풍부한 친구”라고 소개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사 29:14)

하나님께서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 곧 ‘기적 중 기적’을 행하시는데,
그것은 지혜자의 지혜와 명철자의 총명을 없애버리시는 것입니다.
너무나 이상한 말씀입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전체적으로 읽어보면
엘리야와 엘리사 이후에 기적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지금까지 이사야서를 열심히 살펴보고 있는데 기적에 관한 내용이 없습니다.
많은 이적과 기사로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셨던 하나님께서 점점 기적을 거둬 가셨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숨어버리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기적을 점점 거둬 가시는 것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기적을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이집트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전갈과 뱀이 우글거리는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기적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오합지졸 노예 무리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승장구하였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나빠졌습니다.

기적은 사람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급기야 “기적 중의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 중의 기적이란, 지혜자의 지혜를 거두고 명철자의 총명을 가리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오스카 와일드의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비극 밖에는 없다.
한 가지 비극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것이오,
또 다른 한 가지는 원하는 것을 다 얻은 것이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알까요?
그 뜻을 알지 못하는 풍요는 인생을 망치는 독입니다.
인생의 목표는 풍요나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올바른 목표를 차근차근 실현해 가는 과정 자체가 행복입니다.

하루에 1,000만 달러(120억) 이상을 버는 워렌 버핏은
여전히 방 세 개짜리 주택에서 10년 된 자동차를 굴리며 삽니다.
그의 인생의 목적는 풍요가 아니라 기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2,000만 달러를 버는 빌 게이츠도 워렌 버핏을 멘토로 존경합니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모를 때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하더라도 그 삶은 권태요 비극입니다.
또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삶은 비극입니다.
사람들이 쌓아놓은 지혜와 총명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다.

대부분이 뭔가를 얻기 위한 지혜입니다.
전부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모두 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총명입니다.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한 지혜와 총명은 슬프게도 사람들의 귀를 울리지 못합니다.
신앙마저도 원하는 바를 하나님을 통하여 얻겠다는 몸부림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제사는 히브리어로 ‘코르반’인데, 그 뜻은 “가까이 가다” “친밀해지다”입니다.
한 마디로 레위기에 기록된 제사의 목적은 하나님과 가까워지자, 친밀해지자는 것입니다.
속죄제사로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죄를 씻고,
하나님 앞으로 나와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삶을 다짐하고,
화목제를 통하여 삶의 감사와 기쁨을 누구와도 아닌 하나님과 나누고 누리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친히 가르쳐 주신 이 제사법은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그 제사법을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는 비결로 바꾸고,
최고의 지혜이며 총명이라고 가르치고 행했습니다.

그 잘못된 가르침, 그런 류의 지혜와 총명을 없애는 것이 기적 중의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기적 중의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이사야 29:13)

이스라엘 백성은 각종 제사와 절기로 하나님을 열심히 섬깁니다.
우리들은 말씀 공부와 기도에 열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나 잘 되고 내 가족 안녕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 잘못된 생각을 내 머리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왜요? 하나님을 진심으로 공경하고 가까이 가는 것이 기적 중의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이사야 29:15)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양, 믿음이 있는 양 하며
자신의 이득만 챙기려는 그 속된 마음을 없애버리는 것이 가장 기이하고 기이한입니다.

보상을 바라지 말라고 늘 강조하였습니다.
여기에 기적을 바라지 말자는 말을 덧붙입니다.

바라지 마십시다.
기대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의 보상과 기적이 없다는 뜻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누구보다 많은 보상을 하시고
언제나 기적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오직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치고 섭섭해 하고, 실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인 인생이 기쁨이 없는 비극이 됩니다.

내 소원이 이루어달라고 붙잡고 매달리는 것을 오늘 본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사 29:16)

쉽게 말해서,
“아니 이 정도도 이루어지지 않는데,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거야?”라는 말입니다.

도스도예프스키의 명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이반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기적으로 사람들을 노예로 삼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진심으로 당신을 믿는 것입니다.”
이 말에서 당신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기적이 없더라도, 여전히 고난 가운데 살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동행하기를,
“진짜 사랑”을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원하십니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기적도 기대하지 않고 그저 맡은 일을 좀 더 잘 해보려고 애쓰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기적이 있습니다.

올해 마흔 네 살의 신순희 씨는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았는데,
그러나 남들보다 걷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리고 계단을 뛰어 오르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당당한 그녀는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까지 하고,
두 아이의 엄마로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컴퓨터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처럼 채팅을 하고 고스톱을 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 그래픽 분야에서 재능을 발견한 신순희 씨는
열심히 노력하여 94년 컴퓨터 그래픽 대전에서 은상을 수상하게 되고,
대전에 있는 시스템 공학 연구소 연구원으로 발탁되었습니다.
그녀는 일생 일대의 결심을 하게 됩니다.
초등학생 두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혼자 대전으로 내려가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모두 박사들인 동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지 않기 위하여
하루 4 시간 씩 자면서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리고는 3년 후에 대구에서 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직원도 없는 1인 회사였지만 거래처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 후, 그녀는 42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매년 4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벤처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한번 울고 잊어버립니다.
오래 붙들고 있어봐야 나아지는 점이 없어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열정이 인생을 바꿉니다.
어려움을 탓하고 비관하고 원망하는 것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열심히 도전하면 길이 열립니다.”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한 것은 신앙심과 성실성과 노력입니다.
노력 없이 얻은 행운과 기적은 결코 참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추수감사절입니다.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나와 동행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보혜사로 내 곁에 계신 성령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누리며 베풀며 살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 대부분은 캐롤린 마틴처럼 가족이 없거나 뇌성마비도 아닙니다.
신순희 씨처럼 가난한 집안 태생이거나 소아마비도 아닙니다.
그들은 열심히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장애와 난관을 극복하며 열심히 사는 것 자체가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히 5:9)

모든 것을 다 가진 예수님도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이 무엇이든 감사하며 열심히 살기로 합시다.
마침내 온전케 될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동행.
그 자체가 최고의 행복입니다.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것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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