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특강

생명의 영, 미래의 힘(2)

새벽지기1 2017. 5. 27. 08:02


2. 존재

인간이 과학적 업적을 통해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갖게되었는데도 왜 생명 자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변은 몇 가지 방향에서 주어질 수 있겠지만, 근원적으로는 물리적 사실의 불확실성에 있다. 프랑스의 생물학자이며 가톨릭 신학자였던 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어린 시절에 이런 경험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샤르뎅은 어머니가 한 움큼의 머리카락을 마당으로 들고 나와 불에 태우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머리카락이 채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약간의 재로 변해버린 걸 본 샤르뎅은 그 순간에 심각한 사유의 충격에 빠졌다. 도대체 1분전에 있었던 머리카락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무엇이 있음이며, 무엇이 없음인가? 어린 샤르뎅의 이런 궁금증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으며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다. 사물의 비밀은 캐면 캘수록 더 깊은 신비의 세계로 빠져들어 갈 뿐이기 때문에, 몇 가지 화학과 물리법칙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이 가능하긴 하지만 왜 그래야만 하는지, 그리고 물리적으로 무엇이 궁극적인 존재인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오늘의 미시 물리학에 의하면 물질은 이미 빈 공간과 에너지의 결합이라고 한다. 어떤 소립자는 그 안에 그 소립자에 비해서 너무나 작은 질량의 입자가 에너지와 결합해 있을 뿐이며, 그 작은 입자는 그 안에 또 하나의 너무나 작은 입자와 에너지가 결합되어 있을 뿐이다. 결국 물질은 빈 공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조금 더 실감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예를 들자면, 지구를 사과 한 개 정도의 크기로 축소시킬 수 있다는 가설을 상상해볼 수 있다. 지구의 중력이 소립자의 구조를 깨뜨릴 정도로 강력하게 작용하면 이게 가능하다. 이런 상태가 블랙홀이다. 즉 지구라는 물체는 스펀지처럼 빈 공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단지 에너지에 의해서 지구라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물리적 불확실성 가운데서는 우리가 생명 현상에 대한 정보를 아무리 많이 수집하더라도 근본에 대해서는 더욱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어떤 물리적 현상을 일단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내재해 있다. 이 현상 자체가 전적으로 시간에 의존해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과거에 있었던 사물은 지금 없을 수 있고, 지금 없는 사물이 내일 있을 수도 있다. 영원한 사물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지구도 그렇고, 태양도 역시 대충 50억년 이후면 사라진다는 것이 물리적 사실이다. 그런데 생명 현상의 본질을 모색하고 있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사물이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시간이 우리의 인식 범주를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하이덱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이 사물의 시간 의존성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존재 자체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면서 철학의 방향을 근원적으로 돌려놓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쨌든지 이런 사태 앞에서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생명 현상을 언급할 때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비록 존재하는 것들의 궁극적 토대를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생명 현상만으로도 몇 가지 단서를 제시할 수 있긴 하다. 그 중의 하나는 모든 생명현상이 고립, 고착되어 있는 게 아니라 상호적으로 발전, 변화, 진화해 나간다는 사실이다. 이미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는 생성과 유전(流轉)을 만물의 실상이라고 보았으며, 20세기의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도 역시 리얼리티를 과정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생물만이 아니라 어쩌면 모든 사물들도 역시 어떤 변화와 움직임 가운데서 자기의 자리를 찾아나간다고 보아야한다. 예컨대 우주 자체가 계속적으로 운동하고 있으며, 지구의 표면과 내면도 역시 매우 강력하게 운동한다. 지구가 이처럼 생명 현상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지구의 중력과 달의 중력이 상호 작용함으로써 지구의 지각이 운동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지구 안에 있는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 결합해서 운동 과정을 통해서 생명 현상을 발현시켜나가는 셈이다. 그렇지만 운동으로서의 생명 현상이 모두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생명 자체가 드러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우선 생명 현상을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원리와 개념인 진화라는 범주에 한정해서 생각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