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조병수교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자 (딤전 5:17)

새벽지기1 2017. 2. 4. 22:13


목회란 무엇인가? 목회 개념은 시대마다 그리고 관점마다 바뀔 수 있는 것일까? 솔직히 말해서 목회는 어느 시대에 전개되며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고 또 다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오늘날 어느 목사가 갓 쓰고 집신 신고 목회를 하겠다고 고집한다면 또 성도들이 목사에게 그렇게 목회하기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시대착오적인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시대착오 발상 목회 없어야

최첨단 장비를 갖춘 도시목회에 익숙한 목사가 농촌교회를 섬기면서 겨우 한글을 깨우친 노인들에게 매일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자기의 설교를 다시 들으며 공부하라고 강요한다면 이것은 이만저만한 어불성설이 아니다. 목회는 시대에도 맞아야 하고 대상에도 맞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분명히 “오늘의 목회”와 “여기의 목회”란 것은 있다. 하지만, 하지만
목회의 이런 현장성에도 불구하고 동서고금을 논할 것 없이 모든 목회에 항상 바탕이 되는 것을 한 가지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다.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이 꼭 설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목회에서 설교의 귀중성은 백 번 강조해도 틀림이 없다. 그러나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중에도, 심지어는 길을 지나가다가 인사를 나누는 때도 목사에 의해서 말씀이 가르쳐져야 한다. 목회란 시대가 변하고 공간이 달라져도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목회의 뿌리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잘 다스리는 장로가 갑절로 존경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이 점을 주지시키고 있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은 더욱 그러하다(갑절로 존경을 받아야 한다)”.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는 다스리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가 구분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가르치는 장로란 오늘날로 하자면 목사를 일컫는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과 가르침을 왜 나누어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두 단어는 구태여 구별해야 할 필요가 없는 비슷한 말이라는 점을 생각
할 때 혹시 사도 바울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사도 바울은 유사한 단어를 두 번 사용하여 가르치는 장로의 근본적인 사명이 무엇인지를 밝혀주고 있다는 것이다.


목사(가르치는 장로)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목사가 교사보다는 연출자의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목사 자신도 그 길을 욕심내고 성도들도 목사에게 그런 길을 가기를 요청한다. 가르치는 사명을 내팽개치고 무대 위에서 공연하듯이 목회하는 목사들도 문제지만 교사보다는 매니저처럼 행동을 하는 목사를 선호하는 성도들도 잘못이다. 그러다 보니 목회는 어느덧 무대공연이나 사업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목사는 연출과 경영을 배우는 데 혈안이 되고 신자들은 좋은 게 좋은 거니 생각하면서 아무런 비판정신이 없이 텔레비전의 쇼나 연속극을 보듯이 그냥 무심하게 교회생활을 해나간다. 교훈이 없는 목회는 상품이 빠진 상자와 같다.


목회가 이렇게 근본 개념에서 벗어나게 된 원인을 시대와 관점의 변화 때문이라고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공간이 달라져도 목회에서 빠뜨릴 수 없는 뿌리이기 때문이다. 목회의 현장성은 언제나 이 근거에서만 이야기될 수 있다. 오히려 목사가 목회의 근본개념에서 이탈한 까닭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자신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표현이다. 목사가 더 이상 말씀연구에 전념하지 않을 때 역시 말씀을 가르치는 것에도 열심을 내지 않게 된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이라는 사도 바울의 진술에는 교육 뿐 아니라 연구에서 나타나는 수고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연구하는 목사만이 가르치는 목사가 된다.

연구하지 않는 목사 없어야

오늘날 목사와 교회가 존경받지 못하는 것은 연출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진리 교육이 결핍되었기 때문이다. 말씀을 공부하지 않는 목사와 교회가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꿈에라도 불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