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하늘의 종교만이 아닌 것은 가정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자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기독교는 하늘의 종교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기독교만큼 땅의 종교인 것도 없다. 기독교는 한편으로는 땅의 부패에 대하여 뼈저리게 아픔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땅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아무 것도 아끼지 않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가운데서 가정에 대한 기독교의 관심은 다른 어떤 것과 견줄 수 없이 매우 무거운 중량을 가진다. 또 그 중에서도 부모에 대한 거의 절대적인 지지는 기독교가 얼마나 땅의 종교인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 기독교는 인간의 타락이란 하나님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부모에 대한 불효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땅의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성격을 충분히 알고도 남을만하다.
가정에 대한 관심 남달라
사도 바울은 이제 한동안 과부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한다. 사도 바울이 살았던 시대는 성인 남자들이 생명을 오래도록 부지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질병에는 남녀가 다같이 노출되어 있었으니 그것만 가지고는 남자의 수명이 여자의 수명보다 짧은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시대적으로 남자들이 빨리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 중에 하나는 사고 때문이었다. 남자들은 농사와 목축과 수렵에서 잦은 사고를 만났다. 혹시 공사에 참여하거나 무역을 위해서 여행을 하게 되면 항상 불의의 사고가 남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 나아가서 사고 다음으로 남자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데 위협적인 것은 전쟁이었다. 군인으로 종사하든 그렇지 않든 전쟁이란 것은 남자의 씨를 말리는 무서운 재앙이었다. 이렇게 사고가 많고 전쟁이 많던 시대의 결과는 과부의 다량생산이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서 과부에 대하여 많은 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사도 바울은 과부에 관한 단락을 열면서 효도의 정신을 고취시킨다. 자녀나 손자는 과부 된 어머니나 할머니를 잘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은 단락의 성격상 이 자리에 놓여있기는 하지만 엄격히 말해서 과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홀로된 어머니 잘 섬겨야
이것은 결국 효도를 향한 사도 바울의 규범적인 천명이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효도란 배워야 할 성격을 가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효도하는 마음을 소지한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겠으나 많은 경우에 효도는 교육을 받아 익혀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효도는 교육의 산물이다. 자녀에게 효도를 가르치지 않은 부모는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효도를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공경과 보답이다. “먼저 자기 집을 공경하라”, “(조)부모에게 보답하라”. 공경과 보답은 효도에 있어서 마음의 측면과 물질의 측면이다. 그래서 효도는 물심양면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자녀의 마음은 언제나 부모에게 가 있어야 한다. 자녀는 자신의 마음을 부모에게 이식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여기에서 사용된 단어가 일반적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단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조)부모를 섬기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를 증명한다. 부모는 진심으로 부모를 높여야 한다. 더 나아가서 자녀는 부모가 물질적으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필요에 따라서 자녀는 부모에게 물질을 제공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부모에게 마음을 준다고 하면서 물질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부모 쓸 것 제공해야
우리는 효도에 관한 사도 바울의 규범적인 말을 들으면서 아직 아멘을 말해서는 안 된다. 한 마디 말이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 사도 바울은 이 말을 덧붙임으로써 효도를 윤리에서 신앙으로 승화시킨다. 부모를 섬기는 것은 윤리가 아니라 믿음이다. 효도는 그 자체로 영적인 성격을 가진다. 사도 바울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부모를 섬기는 것이 구분되지 않는다. 보이는 부모에게 잘 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부모에게 잘 할 수 없기 때문이다(참조. 마 15:3-6). 그래서 비록 제한된 의미이긴 하지만 부모는 보이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이다. 이제 아멘을 말해
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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