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다재다능하지 못한 목사의 희망

새벽지기1 2016. 9. 11. 22:10


목사의 역할은 경계가 분명치 않다. 목사는 원하든 원치 않던 때를 따라 요청되는 다양한 역할에 효과적으로 응해야 한다. 교회공동체에서 수행하는 모든 일과 벌어지는 모든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성도 개인의 삶과 내적인 문제, 가정의 여러 문제(부부문제, 자녀문제, 경제문제, 친인척 문제, 뜻하지 않은 고난 등)에도 간여해야 할 때가 많다. 또 멀게는 교회가 속한 지역의 일, 한 걸음 더 나아가 크고 작은 사회 문제에 이르기까지 목사가 직간접적으로 간여해야 할 일은 무수히 많다. 목사의 삶은 정말 어떤 직업인, 어떤 전문인의 삶보다 더 복잡하고 복합적이다. 역할의 경계가 없다고 할 만큼 넓고 다양하다. 그리고 이처럼 역할의 폭이 넓고 다양한 만큼 목사는 다재다능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다재다능하지 못하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 체력도 여러 가지 일을 감당할 만큼 활력이 있지 않다. 거기다가 목사가 여러 가지 일로 바쁜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 나의 평소 지론이다. 하여, 나는 앞으로(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꼭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세 가지 역할에 집중하려 한다. 성도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는 경청인, 성도들과 세상의 연약함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중보인,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고 깊이 있게 선포하는 설교인의 역할에 충실하려 한다. 말씀 · 기도 · 들음을 통해 하나님 · 성도 ·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목사의 고유한 역할 - 그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고유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으로 내 역할을 제한할 수는 없다. 필요한 때에 적절히 응대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이 세 가지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헐떡인다.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다행히 듣는 일은 세월과 함께 조금 성숙해진 것 같다. 죽음의 동굴과 고난의 터널을 지나면서 사람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폭이 깊어진 덕에 누구의 이야기라도 마음 기울여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설교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은 항상 터덕거린다. 가도 가도 목표 지점은 언제나 저만치에 있다. 앞으로도 쉽게 정복할 것 같지 않다.

 

그렇다. 나는 다재다능하지 못한 목사다. 체력, 지력, 영력 모두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참으로 부실한 목사다. 그래서 교우들에게 손을 내민다. 담임목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들을 교우들이 채워달라고, 각각 받은 소명과 은사에 따라 전도하는 일 · 구제하는 일 · 사랑으로 교제하는 일 · 봉사하는 일 · 피차 배우고 가르치는 일들을 감당해달라고, 억지로가 아니라 말씀을 좇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때 자발적으로 참여해달라고, 다재다능하지 못한 목사를 허물하지 말고 부족한 부분을 덮어주고 채워달라고 부끄러운 손길을 내민다. 그렇게만 된다면 목사의 다재다능하지 못함이 교회됨을 이루어 가는데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물론 목사의 다재다능이 요구되는 시대에 다재다능하지 못한 목사의 길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목사의 다재다능하지 못함이 교회를 세우는 일에 유익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적인 희망을 품는다. 약함이 오히려 강함이라는 바울의 고백을 기억하면서, 교우들의 도움과 주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겸허하게 다재다능하지 못한 목사의 길을 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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