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설교자와 설교 산업의 유쾌한 유혹

새벽지기1 2016. 9. 9. 12:22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 나는 생애 최고의 신학 강의를 듣는 행운을 누렸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김세윤 박사의 ‘칭의와 성화’ 강의는 학문적 치밀함과 열정이 어우러진 참 멋진 강의였다. 실로 오랜 만에 듣는 신학 수업이기도 했거니와, 책으로만 접했을 뿐 직접 강의를 듣지 못했기에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참석했는데, 첫 시간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었다.


김세윤 박사님은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이틀 동안 쉬지 않고 강의를 했다. 신학적 논리는 매우 정밀했고, 단어 하나도 허투루 남발하지 않는 학문적인 엄격함이 있었으며, 신구약을 넘나들며 자유자재로 말씀을 인용하는 능력 또한 탁월했다. 복음에 대한 열정도 뜨거웠고,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오는 자유로움도 강하게 전달되었다. 특히 바울 신학에 대한 새 관점 주의자들의 주장과 한국교회의 전통적 칭의론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칭의와 성화의 문제를 법정적 의미와 관계적 의미를 통합하여 제시한 것은 매우 유익했다. 이틀 동안 최선을 다해 강의하는 노 박사님의 모습에 나는 감동했고, 복음의 진리로 채워진 가슴은 충만한 기쁨으로 출렁였다. 종강 후 박사님께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면 수강자가 예상보다 적었다는 점이다. 강의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전화로 신청하면서 참여 인원을 300명으로 제한한다는 기사를 보았기에, 속으로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다. 전화를 하면서도 인원이 다 찼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자리가 남아 있었다. 현장에서 보니 대략 200여명 정도 참석한 것 같았다. 그것도 목회자가 아닌 신자들이 포함된 수였다. 정말 예상 밖이었다.

아니, 김세윤 박사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석학 아닌가? 거기다가 구원론의 왜곡이 심한 한국교회 현실에서 ‘칭의’의 문제를 깊이 이해할 필요가 절실하지 않은가? 또한 ‘칭의’의 문제가 작금 세계적인 신학적 이슈로 토론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당연히 많은 목회자들이 몰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많은 목회자들이 참여하지 않았다. 교회성장 세미나에 수 천 명씩 모이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너무 적은 수였다.

 

하지만 이내 곧 이해가 됐다. 내 생애 최고의 신학 강의 현장에 동료 목회자들이 적은 것은 많은 목회자들이 신학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교회성장과 목회 방법론에는 관심이 있지만 순수 신학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실이다. 한국교회 목회자들 중에 비저너리(visionary)와 비지너리(businary)는 많으나 이드거니 공부하는 사람(學人)은 드물다. 설교 자료와 교회성장 정보를 수집하는데 재빠른 자들은 많으나 삶의 신비와 성경 말씀의 오묘함에 붙잡혀 고민하고 씨름하는 설교자는 많지 않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 오늘 이 시대는 설교자가 설교를 준비하지 않아도 목회가 가능하다. 설교자들에게 설교 자료를 제공하는 산업(매월 정기적으로 설교를 제공하는 업체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음)과 각종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상품화하는 산업이 성행하고 있어서 설교자가 직접 설교 준비를 하지 않아도 설교할 수 있고, 목회자가 직접 성경공부를 준비하지 않아도 성경공부를 진행할 수 있다.


사실이다. 다른 산업이 그러하듯 목회에 필요한 모든 것도 상품화되어 교회 시장에 넘쳐난다. 그런 면에서 지금 이 시대는 더 이상 목양의 시대가 아니다. 목양의 모든 필요를 구매할 수 있는 기독교산업 시대다. 목회에 필요한 모든 상품이 교회 시장에 넘쳐나는 시대다. 그러니 골치 아픈 신학 강의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뭐 있겠는가? 이미 맞춤형 상품이 나와 있는데. 그 상품만 구입하면 얼마든지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설교할 수 있는데. 

 

정말 그렇다. 공부하지 않는 목회자들의 존재는 기독교 산업을 유혹하고 있고, 날로 발전하는 기독교 산업은 목회자들이 공부하지 않도록 유혹하고 있다. 이 둘은 지금 유쾌한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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