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고경태목사

기독교강요 독서(6) 하나님을 아는 지식 Inst., I, 2, 1-2.|

새벽지기1 2016. 9. 9. 12:56

기독교강요 독서(6) 하나님을 아는 지식 Inst., I, 2, 1-2.

 

칼빈은 기독교강요 1권 2장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 지식의 목적에 대해서 제시한다.(cognitio Deicognitio sui의 상관성)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모든 선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은 결국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게 된다(Inst., I, 2, 2).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이중성을 제시한다(duplex cognitio). 칼빈은 인간이 먼저 저주받은 인간이 중보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속주 하나님을 알 수 있음을 제시했다. 그리고 또 성경의 전체 개괄적인 가르침에서는 먼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다음에 구속주 하나님을 제시하고 있다.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타락하고 저주받은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중보자의 선제성을 제시하지만, 다시 성경에서는 창조주에서부터 시작함을 제시한다. 이것은 믿음의 시작과 신학의 시작의 차이점에 대한 제시이다. 두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바른 지식을 구성하기 어렵다. 칼빈은 매우 적은 숫자(paucissimi reverentur, very few really reverence him)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했다(Inst., I, 2, 2).

 

칼빈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게 되면 창조주 하나님임을 확실히 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그 전능하심으로 세상을 유지하며 다스리신다. 이러한 지식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은 모든 선의 근원임을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다.

경건(pietas). 경건의 교사는 종교를 낳게 한다. 경건은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된 존경으로, 인간이 풍성한 부성애에 대한 돌봄을 알아 완전한 행복을 거기에서 찾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가(quid sit Deus)". 이런 질문은 쓸데없는 사변을 즐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의 유무에 대한 질문보다, 확실한 창조주 하나님의 본성 등에 대해서 알도록 해야 한다. 에피크루스 학파에서 신(神)을 게으르고 즐겁게 노는 존재로 생각했다. 이런 신관에 동의할 것인가? 17세기 유럽의 이신론(理神論, deism)에서는 신을 창조와 분리된 신으로 생각했다.

 

칼빈은 하나님을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며, 선의 근원으로 제시하며, 인간이 부패한 마음만 없다면 하나님을 신뢰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에서 실패했다. 오직 은혜가 아니면 인간은 범죄로 전락하게 된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pious man)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와 아버지를 믿는다. 영광과 심판에 대해서 명확히 인식하며, 경외와 바른 예배를 한다. 형설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