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연속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이든지 시작으로만 끝나는 것은 최소한의 가치를 가질 뿐이다. 그것은 단회적인 발생으로서 그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시간에 아무런 연속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건은 메마른 땅에 떨어지는 한 두 방울 비와 같은 것이라 기억되기도 어렵고 또 기억해야 할 이유도 없다. 시작은 미래적인 연속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만일에 어떤 일이 시작되어 아주 먼 미래까지 힘있게 계속된다면 그것은 대단한 가치를 가진다. 그런 시작은 한참이나 흘러도 물살이 약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물을 펑펑 쏟아내는 샘물과 같은 것이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
을 것이다. 시작은 종말론적인 연속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가진다. 무엇인가가 시작된 이후로 주님의 날까지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연속되는 사건이 있다면 그런 것을 가리켜 생수의 강 물 같은 것이라고 부르며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해도 잘못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의 시간 저편에서 하나님께 기억될만한 위대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주님의 긍휼을 입은 것은 사실상 기독교의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그 이전이나 그와 동시대에 주님으로부터 긍휼을 입은 사람은 한 두 명이 아니다. 하지만 주님의 긍휼이 사도 바울에게 임한 사건은 지나가는 구름에서 어쩌다가 한 두 방울 떨어져 메마른 땅의 가장 작은 부분도 적시지 못하고 만 빗방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사도 바울이 긍휼을 입은 것은 이렇게 무의미한 단회적인 사건으로 오해될 소지가 없지 않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째인 나에게 (NASB: in me as the foremost; Luther: an mir als erstem) 전적인 인내를 보이셨다"는 사도 바울 자신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그렇다. 문맥으로 볼 때 "첫째"라는 말은 바로 앞 절에 나온 "죄인 중에 첫째" (개역성경에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말에 연관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죄인들 가운데 가장 극악한 사도 바울에게도 주님께서 전적인 인내를 보이셨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 말을 그냥 바로 이 구절에서만 해석하면 장래에 주님을 믿을 사람들에 대하여 첫째 사람이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바로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주님의 긍휼을 입은 사건은 무의미한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긍휼히 여기신 이유는 "장차 주님을 믿을 사람들의 본본기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주님의 긍휼이 사도 바울에게 임한 사건은 미래적인 연속성을 넘어 틀림없이 (!) 종말론적인 연속성을 가진다. 그 이전 그와 동시대에도 주님의 긍휼을 입은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장차 주님을 믿을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는 첫째 인물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로서 죄인 중에 괴수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적인 인내를 보이시는 일에서 자신을 시작점으로 삼으셨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바울을 시작점으로 하여 장차 주님을 믿어 영생을 얻을 사람들에게 전적인 인내를 보이신다. 주님의 은혜는 아무리 흘러도 물살이 약해지지 않는 강일 뿐 아니라 흐르면 흐를수록 넓어지고 깊어지고 많아지는 생수의 강이다. 주님의 은혜는 사도 바울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지만 그 이후로 걷잡을 수 없이 전진하여 온 땅에 충만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사도 바울에게 연결되어 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의 긍휼을 입은 첫 번째 사람이라면 오늘 우리는 억만 번째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시작은 우리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뒤에 또 다른 연속이 있을 것을 믿는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억만 번째 연속이지만 동시에 우리 뒤에는 우리의 억만 번째 연속이 있을 것이다. 주님의 날이 올 때까지 이 연속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오면 역사의 저편에서 이 모든 연속은 위대한 사건으로 하나님께 기억될 것이다. 주님의 시작은 반드시 연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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