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윤선박사

개혁자의 겸손

새벽지기1 2016. 7. 4. 14:11


“승리의 비전은 최대한의 겸손 갖추는 것”

 

최대한도의 정복의 비전을 가진 인격은 어떠한 인격일까요? 욕심쟁이입니까? 아닙니다. 최대한도의 겸손을 소유하기 위하여서 힘쓰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일 겸손한 사람이되겠는가?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 했는데, 내가 정말 겸손했나? 이 문제를 늘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검토해야 합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입니다. 최대한도의 겸손을 소유한 것이 약속의 땅을 정복할 만한 장군의 심리올시다. 약속의 땅을 쟁취하는 조건은 이렇게 쉽습니다. 만일 자기 것을 가지고 하라면 전장에 가지고 나설 만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 기막힌 일이죠?

 

하지만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해 싸워 취할 때에는 하나님의 약속의 힘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인데, 그 약속과 능력을 소유하는 비결은 약하게 사는 것입니다. 최대한도의 겸손을 소유한 자라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사람들을 상대한 씨름이 아닙니다.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세상을 망하게 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사단과 더불어 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용맹스러운 군인들이 누구로 더불어 싸웁니까? 마귀로 더불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영은 영으로 대결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심령으로 마귀를 쳐부술 수 있는 무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 심령으로 여러분은 새 땅으로 전진하셔야 합니다.

 

삼팔선이 가로막혀서 동족, 동포 형제들을 만나볼 수도 없는 이 시대에 우리가 어찌 잠을 자고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까? 아무 느낌도 없습니까? 어떻게 교역을 해서 식생활을 해결해 나간다고 하면서 십자가의 원수 노릇을 하겠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개혁자로서 나서십시오. 개혁자는 생각하는 차원이 다릅니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개혁자는 수난을 받고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오해도 받습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많다 하더라도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여러분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죽는 것이 그렇게 아깝습니까? 아무래도 죽습니다. 죽을 바에는 가치 있게 죽겠다, 여러분이 그런 생각을 다 하시는 줄 압니다.

 

죽기까지 하는데 안 될 이유가 있나요? 우리 모두가 최대한도로 겸손을 가지고 주님의 능력에만 매달릴 때, 죽기까지 겸손할 때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죽기까지 주를 믿는다,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죽음으로 대하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내세운다면 그것은 쓸 데 없는 일입니다.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와요. 우리가 남을 미워하고 남보다 낫다는 교만한 생각으로 걸음을 내딛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시 어두움으로 걸음걸이를 시작하는데 거기에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나가면서 새로움이 있어야지요.

 

여러분, 이제 가서 일할 자리가 있어야지 하는 식의 말을 결코 입 밖에 내지 마십시오. 나이 많은 사람으로 이제 일을 다 했으니까, 여러분처럼 어디 가서 부교역자 노릇 할 처지가 아니니까 큰소리친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그러나 이것이 진리 아닙니까?

 

여러분이 나의 말을 첫째의 교훈으로 받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은 성경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첫째요 또한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쁨으로 약한 생활을 하세요. 전진하세요. 용사가 되세요. 이 시대의 개혁자가 되세요. 왜 자기의 허물과 죄 속에서 죽으려 한단 말입니까?

 

출처 / “약함과 겸손함으로 무장하라”, 『부르심, 네 꼴 보고 은혜를 받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