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성령론

성령세례(4) 기쁨, 사랑, 그리고 이해

새벽지기1 2016. 7. 3. 07:32


기쁨, 사랑, 그리고 이해 - 성령세례 체험의 기록들

 

성령세례는 사도들이나 특출한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전세기를 걸쳐 평범한 사람들이 체험한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오순절 날 사도 베드로는 말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에게라고. 그러나 지금은 20세기이므로 이런 종류의 일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하는 아주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바로 복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느 때나 어느 장소에서나 수여받을 수 있는 것으로 이에 대한 제한은 전혀 없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이 영광스럽고도 놀라운 체험의 또다른 국면들과 현시들을 고찰해 보자. “구주를 생각만 해도 좋거든이 찬송을 솔직하고 진실하게 노래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상태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기쁨과 감사의 요소. 사도행전 2,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로 오직 이러한 기쁨과 환희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들이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었는가?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로마서 5장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5:1-5).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식과 확신의 필연적인 결과는 우리가 이 큰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벧전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요한 일서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성령세례에는 예외적인 기쁨과 환희가 있다. 모든 부흥의 시대마다 주요한 특징으로서 언제나 기쁨과 찬양의 영이 있었다. 부흥의 첫 번째 결과는 항상 사람들을 낮추며 그들을 책하고 그들을 영혼의 고통 속에 집어 넣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과연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그때 갑자기 그 깊은 심연으로부터 높은 곳으로 들려 올려져 기쁨과 환희가 이전의 처참과 무가치와 비난의 감정에 부합하게 한다.

 

저는 세상이 기독교의 모든 조직화된 노력들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세상이 주의를 기울이게 될 오직 단 한 가지의 사실은 이 환희의 정신으로 가득찬 일단의 사람들에게서 이다. 바로 이 방법에 의해서 기독교가 고대세계를 정복했다. 설사 그들을 감옥에 넣거나 심지어 그들을 죽게 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이를 문제삼지 않고 계속 기뻐하며 환난 중에도 기뻐했다.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일상생활 속에서 이 가르침을 이해하고 이것을 체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올리버 크롬웰의 전속목사였던 존 호우 목사는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성경 여백에 이렇게 써있었다.

“16891226, 이후 나는 오랫 동안 신앙의 목표들에 대한 확고하고 의심없는 동의 이외에도 그것들에 대한 생생하고 향기로운 맛과 흥미가 필요하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 왔다. 그리고 더 강한 힘과 더욱 왕성한 활기가 내 심령의 가장 깊숙한 곳을 관통하며 거기에다 깊이 뿌리를 내리고 고정됨으로써 나의 생활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후에 나는 설교 도중에 고린도후서 1:12,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는 말씀이 크게 부딪쳐 왔다. 바로 오늘 아침에 나는 가장 매력적이며 상쾌한 꿈에서 깨었다.

하나님의 높은 보좌에서 흘러 나오는 놀랍고도 풍성한 천국의 광선이 나의 열려지고 넓혀진 가슴에 밀려오는 듯하였다. 같은 종류의 것을 17041022일에 하나님의 감탄할 만한 관대하심과 성령의 가장 기뻐하시는 위로의 감화를 통해서 민감하게 느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심령 가운데 풍부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신 기쁨으로 인하여 내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두드러지게 그의 복된 성령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모든 시대에 있어서 위대한 천재들 중의 한 사람인 블레스 파스칼(17세기 사람)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종이쪽지에 그가 무엇인가 써 놓은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의 셔츠 안쪽에 꿰매여 붙여놓은 것이었는데, 그가 했던 주목할 만한 체험을 묘사해 놓은 호신패였다.

 

1654년 은혜의 날: 밤 약 1030분부터 자정이 지난 약 30분까지, “”.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러나 철학자들이나 현인의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안전, 안전, 감동, 기쁨,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당신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는 오직 복음 안에서 가르쳐주신 길에서만 발견되어집니다. 인간 영혼의 위대함. , 의로우신 아버지시여 세상이 당신을 알지 못하였나이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아옵나이다. 기쁨, 기쁨, 기쁨, 환희의 눈물. 내가 당신으로부터 떠나서 있었나이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나를 용서하셨나이까? 내가 당신에게서 영원히 떠나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그들이 당신께서 홀로 참 하나님이 되시며 당신께서 보내신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나는 스스로 그 분에게서 떠나 있었습니다. 나는 도망치고 부인했으며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결코 내가 그 분에게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그 분께서 나를 주장하십니다. 오직 복음에서 가르치신 길 대로만. 유쾌한 전적 포기.

 

그때부터 그는 세상과 그의 모든 수학적 추구를 버리고 뽀로로얄에 있는 당시 쟌센파라고 하는 종교단체에 가입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서한집><명상록>을 썼다. 그는 위대한 철학자요 과학자였으나 그가 참으로 지식과 이해에 도달한 것은 바로 이 한 체험에서였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사랑이 자라나고 있는 것과 그 분에 대해서 더욱 알고 싶어하는 소망과 심지어 그와더불어 함께 있고 싶어하는 소망을 깨닫고 있는가? 이것이 성경에서 증명되고 전세기를 걸쳐 성인들이 증거하는 일이다. 저는 이것을 여러분에게 과제로 남겨 놓겠다. 여러분은 기독교의 진리를 알며 또 기독교의 교리를 알고 계시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운 목적을 확실히 알며 이해하고 계시는가? 이것의 정도(正道)가 바로 성령세례이다. 그것은 어떤 다른 것보다 더 큰 빛과 지식과 교훈을 주며 우리가 증인이 되도록 그렇게 하신다.

 

존 플라벨은 우물가에 앉아서 놀라운 체험을 하였다. 수년 후 그는 그가 읽은 모든 책과 그것에 대해 즐겨 이야기 했던 것 보다도 그것에 의해서 더욱 더 하늘나라의 생활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죽기 조금 전에 그가 더 이상 쓰지 못한 하나님에 대한 압도적이며 직접적인 체험을 했다. 그가 그의 위대한 <신학대전>을 완성하라는 그의 친구의 독촉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더 이상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들이 내게 나타나 내가 썼던 그 모든 것이 밀짚처럼 보여서 지금 나는 나의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다.”

 

그 분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시며 절대적인 확실성과 빛과 지식과 진리 그 자체이시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은 빛과 지식과 이해이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