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생명윤리의 파괴의 원인에 대한 쉐퍼의 분석:
가. 인본주의적 합의의 문제점;
인본주의적 인생관과 세계관은 사람을 기계라고 선언하며, 인간의 가치를 무시한다. 이같이, 우리의 사회와 법정이 생명과 인격성을 버린다면, 즉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을 부정한다면, 그들 사회의 유익을 위하여 기형아와 노인들을 제거하려고 할 것이다. 소위 법의 이름으로 도덕이 사라진다면, 우리 인류는 경제효용과 조작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나치 시대의 유태인 학살의 경우에서도, 전문의학계가 낙태와 안락사를 입안하는 데 지도적 역할을 하였다. 적지 않은 의사들이 테러와 인종학살과 멸종계획과 나치 치하에 있던 불행한 소수 인종에 대한 적극적이고 야만적인 실험에 가담하였다(공리주의적이고 헤겔적인 관점을 채택함). 나치 치하에서의 독일은 1931년에 정신과 의사모임에서 만성 정신질환자들의 단종과 안락사 문제를 토의하였고, 그리고 살인센터에서 27만 5천명을 죽였는데, 이곳에서 모든 유태인과 폴란드인을 학살하고 그리고 3천만 명의 러시아인을 죽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 당시 독일의 의사들은 사회의 돈을 절약하기 위하여 생사를 다투는 계획에 가입하였다. 독일 학교의 교육의 이런 예를 들면, 불구자와 정신병자를 치료하는데 드는 비용으로 신혼부부들에게 얼마나 많은 결혼수당의 혜택을 줄 수 있고, 그리고 새 주택단지를 지을 수 있느냐는 것이 고등학교 수학문제로 나왔었다. 1939년, 히틀러는 안락사에 대한 최초의 직적명령을 하달하였는데, 그것은 5년 이상 된 환자나 노동 불능자에 대하여 보고할 것을 명령하였으며, 그리고 그 환자들이 죽음을 당할 것인지의 결정은 대부분의 정신과 교수로 이루어진 위원들에 의하여 내려졌는데, 이 자문위원들은 심지어 그 환자들을 본 적도 없었다.
이런 비인간적인 의학적인 태도의 초기변화는 “살 가치가 없는 그런 생명도 있다는 잘못된 태도”를 받아들임으로 출발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 운동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그러한 태도이다. 이와 같은 나치 치하의 입장에 우리가 있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의 설문에 대해 미국의 하버드 대학생들은 “게슈타포의 위협 속에서는 누구든지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즉, 오늘날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책을 모든 사람에게 분담시켜서 개인의 책임을 약화시키려고 한다. 이를 볼 때, 명백히 우리 시대는 무책임, 즉 죄책감 면제사회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1947년, 세계인구조절대회에서 낙태를 "다산통제의 회상적 방법(a retrospective method of fertility control)"으로 지칭했을 때, 우리는 영아 살해나 안락사를 그럴 듯하게 미화시키는 말과 방법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그들은 낙태를 ‘태아조직의 제거, 임신상태의 중단내지 종결’이라고 말을 함).
*사람을 제일로 생각하라는 쉐퍼의 주장 /쉐퍼는 이러한 이 비인격적인 시대에 인격체가 되라는 도전을 한다. 그 사람이 온전하든, 흠이 있는 사람이든 당신의 삶에서 사람을 제일로 생각하라고 말한다. 당신과 주위에 있는 자들은 모든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신 인격적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다. 오늘날, 무차별한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도 역시 “개인적인 평안과 풍요를 위하여”행하고 있다. 즉, 유물론적인 세계관과 관행으로 섬기는 신들과 만물의 이기적인 중심이요, 척도인 ‘자아’라는 신에게 희생 제사를 드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락사를 반대한다면, 치명적인 병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외롭고 기력이 없는 노인들도 돌보는 책임을 지기 위하여 우리 자신들의 풍요와 평안을 희생해야만 할 것이다.
나. 유물론적 세계관의 문제점;
낙태, 영아살해 그리고 안락사와 같은 상황은 진공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들이 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전체적인 방식인 그러한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 쉐퍼의 주장이다. 서구사회는 모든 실재는 물질으로만 이루어졌다는 세계관을 택하고 있는데, 이 관점은 자주 철학적 유물론이라고 하는 것으로 오직 물질만이 존재한다고 하여 자연주의(naturalism)라고 한다. 오직 인간에게서 출발하고,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삼는 인본주의도 그 철학이 유물론적이다. 이런 사고에 의하면, 우주는 어떤 형태로든지 영원히 있어 왔고, 지금의 형태는 단지 과거 어느 때에 일어난 우연적인 사건의 결과로 생겨난 것에 불과하다.
거의 서구사회와 미국은 “하나님이 계시고, 성경이 진리”라는 기초에 근거를 두었으나, 지금 그들의 사회는 유물론적이고 자연주의적, 인본주의적 세계관이 언제나 기독교에 대하여 우월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기독교가 비과학적이고 증명할 수 없고, 신-개념은 역사의 산물이고 그저 그런 것들은 다 “신앙”의 영역에 속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본주의적의 가정에 근거를 두면, 삶은 무에 이르고 만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그리고 어디로 가고, 그리고 우리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알 수 없다.
인본주의적 관점에서는 영원한 것은 어떤 물질이나 에너지 형태이며, 지금 우리 세계의 모든 것이 그러한 다소 복잡한 물질이나 에너지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돌이나 선인장이나 낙타가 일부인 것과 같다. 이런 견해에서는 사람은 우연히 생긴 좀더 복잡한 존재일 뿐이지, 독특한 존재는 아니다.
이런 세계관안에서는 인간이 동물이나 생명이 없는 물질의 가치보다 최종적이고 명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믿을 여지가 없다. 두 세기 전에 계몽주의 인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모든 해답을 발견하리라고 생각을 하였으나,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이 낙관적인 희망은 거짓임이 입증되었다. 계몽주의의 후손들은 그들의 유물론적인 세계관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최종적인 해답이 없음’을 점점 크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세계관을 따라 오늘과 같은 인간 생명을 평가 절하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기술과 인구과밀도 물론 부분적으로 역할을 하였지만, 인간 생명을 평가절하하게 한 주범은 사실 이런 세계관이다. 비인간성을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유물론적인 세계관이다.
다. 비인격적인 세계관들의 문제점들;
낙태와 영아 살해와 안락사와 유전학 지식의 남용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불편해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인간 생명을 이처럼 평가 절하하는 일에 대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뒷받침하여주는 기초를 주는 세계관을 택하여서 살아가야 한다. 인간의 창조성, 그리고 사람들이 참되고 선하게 살려는 그 열망, 말을 한다는 점, 그리고 내면의 생활이 있다는 인간의 독특한 점들을 수용하는 세계관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우주의 존재와 인간의 이런 독특함에 대하여 설명을 할 수 있는 세계관으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미 준 것이다. 그러나, 많은 현대인들은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하는 유물론적 인본주의의 답을 좋아하여 여전히 “하나님”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해답을 반사적으로 거절한다. 인본주의 철학은 상대적 지식과 상대적 도덕의 문제, 다르게 표현하면 유한성 혹은 제한성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근대의 인식론에 있어서의 문제도 인본주의적인 것으로 그들은 이전의 중세시대의 인간의 권위를 거부하여 자연과학의 진보를 이룬 것은 잘 한 일이나, 그들은 곧 사람을 너무 지나치게 중앙에 놓고 하나님의 권위도 거부하여 버렸다. 이것은 흄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는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회의를 넘어서 보이는 세계(인과율도 의심함)에 대한 회의론까지 나가고 말았다. 그는 지각을 관습으로 보았는데, 그러나, 이것은 이성을 지지하는 근거가 없는 데에도 그와 동시에 이성의 실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그런 점에서 긴장을 일으킨다. 그리고 현대에 인본주의자들은 도덕체계는 ‘사회계약’이라는 기초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동한 것으로 보고, 51%의 도덕관을 주장하였다. 과반수가 판단하여 악이 선이 되고 선이 악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인류에게 남아있는 것은 상대적인 진리이고, 상대적 도덕이다. 공산주의 도덕도 역시 도덕을 상대적으로 보는데, 하지만 이런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사는 삶을 보면, 이들도 사랑을 하고, 희망을 가지고 그리고 옳고 그름의 근거위에서 행동을 하는 것을 본다(일관성이 없음).
서양에서는 이런 인식론적인 모순된 태도와 긴장을 완화하기 위하여 진화론을 통한 논증을 도입하여 실제로 목적이 없는데도, 전체 실재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기에 이른다. 진화는 사람을 우월하고 가장 높은 존재라고 느끼게 하지만, 유물론의 얼개 안에서는 고등의 개념은 아무것도 아님을 뜻한다. 비인격+시간+우연이 어떻게 인격을 줄 수 있는지 그 방법이 그럴 듯하다 증명할 사람이 없다. 즉, 어떤 사람이 우연에 의하여 비인격적인 것으로부터 튀어서 나왔다면, 그를 인격으로 만드는 것, 즉 목적과 의미에 대한 희망, 사랑, 도덕과 합리성과 미에 대한 인식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따라서 의미가 없다.
동양에서는 인격적인 신을 통하여 이 긴장을 덜어보려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동양에서의 인격은 그 뒤에 비인격이 있다. 즉, 이들은 육체나 감각 그리고 사랑과 선에 제한당하지 않는 의식상태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이들에게 인격성은 비인격적인 우주 안에서는 비정상적이게 된다.
이성의 소실: 인본주의자들은 하나님의 계시 앞에서 패배를 인정하기보다는 혁명을 더 확장시켜서 현재의 비합리주의가 탄생하게 만들었다. 상대적 지식과 상대적 도덕의 문제에 문제가 생기자 이들은 이성을 반박하고 경험을 중시하기 시작하였다. 즉, 지성의 방법으로 해답을 얻을 수 없지만, 우리가 느끼는 체험의 감정으로 오직 눈가리개식의 비합리적인 믿음의 도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실존주의는 탈계몽주의 사상의 비 인격주의와 과학주의에 저항한 것은 옳았으나, 지성을 거부한 것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이들은 해답은 없으나, 좌우간 이 길을 택하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4. 결론: 사회와 정부의 시책 대한 그리스도인의 행동(시민 불복종)
가. 그리스도인의 성경적 해답;
우리는 창세기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과 인격으로 지음을 받은 사실과 시공간 안에서 일어난 타락에 대해서도 말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에 존엄성이 있고 큰 가치를 갖는다. 우주의 창조 이전에 이미 무한하고 인격적인 하나님이 계시고 이 하나님께서 무로부터 의도적으로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것과 인간이 인격으로서 독특한 가치를 가지기에 다른 것들과 얼마나 다른지를 배운다. 그러므로 성경의 규범 안에서만 우리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성경만이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기초임을 우리는 알고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신문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 학교교육/ 성인주일학교/교회에서의 생명존중 특별주일 프로그램/세미나, 포럼 디스커션 등)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내는 가치와 법률을 바꾸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시민불복종이라는 “최저의 선”을 사용할 때는 사용하여서(「기독교 선언」.658) 정부의 자율성에 저항하여 기독교적 공감대를 다시 세우기 위하여 초대교회의 성도와 같이 목숨을 걸고라도 저항을 하여야 한다 쉐퍼는 이런 실천이 없는 플라톤적 의미의 영성에 대하여 반대를 하고 있다(「기독교선언」 749)
(오늘날 항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세금이 낙태를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으며, 그리고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불복종이나 무장반란이 있었기 때문이다/724).
나.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행동(시민 불복종);
지난 80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와 정부에 대하여 가지고 있었던 기본적 문제는 사물을 부분적으로만 보아왔다는 것이다. 즉, 성 개방에서부터 포르노 그라피, 공립학교, 가정의 붕괴, 궁극적으로 낙태문제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문제는 사실 사람들의 세계관의 변화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 변화는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실재란 사실 비인격적 우연에 의하여 생긴 물질과 에너지라는 그런 세계관이다(A Christian Manifesto, 생명의 말씀사 역, 653쪽). 이런 사고를 가진 이들은, 인간을 아주 우연하게도 복잡한 구조를 갖게 된 소립자의 복합적인 배열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인간을 본래의 유한성보다 훨씬 더 격하시켰다. 이들은 인간은 심지어 죄를 범하는 일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면서, 인간은 그 핵심에 있어서 경쟁적인 동물로서(개인으로나 사회 집단적으로도), 보다 강한 자가 지배하는 자연적 선택 이외에는 다른 근본적인 행동원칙을 갖고 있지 않은 존재로 이해를 한다.
오늘날, 이렇게 서구는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잃어버리고서 이와 같은 유물론적이고 우연적인 세계관이 법과 정부를 집어삼키고 있게 되었다. 즉, 그들이 가지고 있는 법은 논리보다는 경험으로서 인간의 제한되고 유한한 경험을 제외하고는 법의 기초가 되는 것은 없다고 한다(662).
법은 그 나라의 다른 모든 이들을 지배할 수 있는 다수표라는 사회학적 의미만을 가질 뿐이기에, 이렇게 되면 정부 그 위의 “어떤 보다 상위의 법질서”가 존재하지 않게 되고(국가주의의 등장), 실용주의적인 대중정책에 기반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676). 그래서, How shoud we then live(「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쉐퍼의 책에서도, 미국사회의 문제점을 가장 명백하게 예시하는 사례로 낙태소송을 들고 있다. 이런 것들은 궁극적이고 기본적인 실재를 물질-에너지로 보는 인본주의적 개념의 자연적이고도 불가피한 결과들이다.
어쨌든, 많은 이들은 유물론적 철학뿐만 아니라 유물론적 과학을 믿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칼 세이건(Sagan)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세속적 과학자는 공영 방송에서 “우주는 여태껏 존재해왔으며, 지금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항상 존재할 뿐이다”고 대담하게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그러한 방식으로 사물을 보겠다는 일종의 신앙적 결정인 것이다. 인본주의 선언을 보면, “인간적인 것(자신들의 주장을 가리킴) 가운데 종교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면서 인본주의를 하나의 종교와 신앙을 스스로 선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가르치고 이에 입각하여 행동을 해야 했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의 어떤 음모에 의하여 오늘날 많은 잘못된 일이 일어 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교회가 문화의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의무를 저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독재주의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면, 기독교회는 “개혁적인 의미에서 총체적인 혁명”이라고 부를 일에 다시금 헌신하여야 할 것이다(689). 그런 의미에서 쉐퍼는 시민불복종이라는 형태로 국가의 정책이 잘못된 것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이 연대하여 어떤 정치적인 항의와 의사전달을 꾸준하게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환경문제와 생명윤리(낙태 등)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의 목소리로 연대하여서 이 사회에 대하여 교회공동체가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미 너무나 많이 벗어나 있는 사회의 잘못된 세계관에 도전하고 그리고 정책에 대하여 항거를 해야 한다.
쉐퍼도 실제적으로 그의 생애의 마지막에 암이 걸린 아픈 몸을 이끌고서 이와 같은 일에 앞장을 섰다. 1979년 9월, 필라델피아 “인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강연회를 시작한 이래, 그는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을 하면서, 그 일을 하였다. 파커스트, L.G., 프란시스 쉐퍼, 성기문 역(두란노, 1995), 106.
나중에는 ‘생명에 관심을 가진 미네소타 시민 모임’과 기타 다른 단체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쉐퍼가 영화로 만든 것을 구입하여, 전국적으로 낙태반대를 위하여 상영을 하였다. 그래서 1981년 1월, 미네소타 주지사는 자기의 주지사 관저로 쉐퍼를 저녁식사에 초청하여 낙태반대에 관한 사역을 칭송하였다. 그는 병중에도 20회나 낙태반대를 위한 강연회를 하였으나, 나중에는 국회와 백악관에서 강연을 하여 그들에게 도덕적인 힘을 실어 주었다.
오늘날, 우리들도 그의 정신을 되살리어서 적극적인 사회-윤리적 활동을 하여서 환경윤리와 생명윤리의 실천에 교회가 앞서가고 있음을 그리고 그런 움직임이 한국의 사회의 문제들을 치유하고 있음을 세상이 알도록, 연대적으로 정치적으로 일치되게 운동을 하여야 할 때이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들은 위와 같은 쉐퍼의 앞선 사회윤리의 내용에 더욱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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