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형익목사

다니엘 4장 '위에 계신 주권자를 바라보라' / 김형익목사

새벽지기1 2016. 4. 1. 07:45


4장 위에 계신 주권자를 바라보라.


1. 다니엘서의 첫 네 장은 사실상 한 시대를 호령했던 바벨론 제국의 대왕 느부갓네살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이야기다. 1장에서 그는 유다에서 온 신앙심 깊은 네 소년에게 깊은 인상을 받음으로써 하나님과의 접촉이 시작되었다. 2장에서는 다니엘이 꿈을 해몽함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언급을 직접 듣고 경험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다. 3장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제 4장에서는 직접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실제로 일어난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낮아지고 비참해짐으로써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게 되기까지는 결코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았다.


지금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복음을 거부하지는 않으면서도 여전히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이 4장 이전까지의 느부갓네살의 이야기였다. 복음의 메시지가 특별한 인상을 남기고 감동을 주지만, 여전히 복음의 진리가 사실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자기 고집을 부린다. 느부갓네살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2. 4장의 첫 세절은 느부갓네살이 제국 내에 발표한 조서의 내용인데 여기에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경외심과 신앙이 분명하게 드러나있다. 그는 진리를 깨달았고 하나님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더 이상 다른 신들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35절에서 그가 하나님께 하는 고백도 놀랍다. 4장은 이방 왕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으로 끝난다. 무슨 일이 그에게 일어났는가?


3. 느부갓네살은 만사가 평안했다(4). 이 평안을 깬 것은 또 다시 꿈이었다(5). 그는 이 꿈의 불길함을 예상했기에 다니엘 보다는 박수와 술객들을 먼저 불러서 어떻게라도 좋은 해몽을 얻을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6~7). 이번에는 꿈의 내용을 알려주고 해몽을 요구했는데, 어쩌면 느부갓네살은 박수와 술객들의 해몽을 먼저 들어보고 다니엘의 확정적 해몽을 듣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박수와 술객 중에는 꿈을 해몽할 자는 없었다. 이유는 지난 번과 같이 이 꿈이 하나님의 계시적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결국 느부갓네살은 자기의 꿈 이야기를 상세하게 다니엘에게 전한다(10~17). 보통 바벨론 문학에서 나무는 왕을 상징하는 것이었다(22). 느부갓네살은 나무가 자기를 상징하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무성하고 하늘까지 닿은 높은 나무 밑에 온 세상이 깃들인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천사를 의미한다)가 나무를 베라고 하면서 거기 깃들인 모든 생물들을 쫓으라고 명한다(13~14). 그리고 나무의 그루터기는 남겨두되 그 그루터기를 철과 놋줄로 묶어 짐승과 더불어 있게 하라고 명한다(15). 그 나무가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고 말한다(16).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느부갓네살은 안다(17).


4. 결국은 다니엘이 이 꿈을 해몽하게 되는데 이것은 왕에게 너무나도 불길한 예조였기에 다니엘은 놀라며 번민하였다(19). 이 꿈은 느부갓네살이 사람에게 쫓겨나 일곱 때를 짐승과 같이 낮아지는 비참한 경험을 할 것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계시였다(20~27). 그러나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이 꿈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도 말해주었다. 왕의 교만이 꺽이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깨닫고 인정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왕의 나라를 다시 세워주시리라는 약속이다(26). 다니엘은 그러므로 느부갓네살은 공의를 행하고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해주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느부갓네살에게 회개의 기회를 줌으로써 그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소망을 붙잡는 모습이다(27). 그러므로 느부갓네살은 하나님께서 왕에게 원하시는 정치를 해야 한다.


5. 다니엘이 말해준 대로 모든 일이 일어났다(28).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의 권면을 들을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12개월 후, 느부갓네살이 자기의 왕권과 나라에 취해있을 때(바벨론 왕궁의 지붕에서는 바벨론의 그 많은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들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고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그는 사람에게 쫓겨나 들짐승처럼 되어 일곱 때를 지내게 되었다. 일곱 때가 의미하는 것은 7년이거나 7개월을 의미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때가 완전히 차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때는 왕이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과 자신의 낮음(무가치함)을 깨닫게 되는 때이다(26).


6. 왕의 교만이 절정에 이르렀을 바로 그 때, 하나님은 그를 짐승처럼 낮추셨다. 고대 전승에 따르면, 느부갓네살은 큰 전쟁들을 치르고 바벨론으로 돌아온 후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가 사망하기 얼마 전에 나타났다고 전해지는데 아마 그가 사람에게서 쫓겨나 짐승처럼 지낸 시기를 가리킬 것이다. 그는 이 기간 동안에 일종의 정신병에 걸려 자기 자신이 짐승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기한이 차서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게 되자 그의 총명이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34). 그는 드디어 자신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동시에 총명이 돌아왔고 다시 왕위를 회복하였다(36).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선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느부갓네살의 갑작스러운 신앙 고백의 배경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설명이다.


7. 사람의 회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좌절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느부갓네살의 삶에서 보게 된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그는 결국 하나님께 돌아왔다. 우리가 기도와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또 하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얻는 교훈은 사람이 이렇게 낮추어질 때만이 비로소 하나님의 존재를 우러르게 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죄성은 너무나 중독적이고 질겨서 이런 낮춤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돌아오는 경향이 있다. 사람이 낮추어질 때만 하나님을 바라보게된다. 너무 편안해서 걱정할 것이 별로 없거나, 너무 높아서 내려다 볼 것이 너무 많은 상황은 언제나 영적으로 위험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은 언제나 큰 믿음을 요구한다. 기독교 신앙은 철저하게 세계와 역사와 현실과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니엘서는 일관되게 보여준다(17,25,32,35). 기억하라.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37b).


8. “하나님 아버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온 세상과 나라들을 다스리시며 그 기쁘신 뜻을 따라 세상의 주권자들을 세우시는 하나님이심을 저희로 언제나 알게 하시고 믿게 하셔서 모든 일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며 사는 믿음을 더해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하지 않게 하시고 교만히 행치 않게 하사 오직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