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신앙이 늘 흔들리고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불신에서 구원받은 세계로 넘어올 때는 ‘내가 믿어서’ 왔다고 생각하고, 정작 믿음(trust)이 필요한 구원 이후의 세계에서는 은혜만을 구하기 때문이다. 이 반대가 옳다는 것이 성경의 초지일관한 가르침이다.
Q 시각교정을 위한 화두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원을 얻게 하는 방법인 믿음의 성격을 성경적으로 규명해봅시다. 뜻밖에도 성경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구원을 얻었습니까? 사실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어느 날 보니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는 사실뿐입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은 구원 얻은 후에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회개해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보고 나서야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영이 눈뜰 때
‘내가 벌거벗었구나’, ‘내가 고아구나’, ‘내가 흙투성이구나’ 하는 것을 알고 나서 생기는 결과가 회개입니다. 눈이 있어야 자신이 고아인지 아닌지, 더러운지 깨끗한지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고아인 것을 아는 것, 혹은 ‘내가 고아니까 하나님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구원이란 영의 감각이 생긴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 부수적이고 당연한 결과로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필요성을 알게 되고, 저주를 받는다는 것의 무서움을 알게 됩니다. 첫째로 회개가 생기고, 다음으로 하나님을 믿기로 하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식의 순서는 인식의 순서이지 사실의 순서가 아닙니다. “주여! 영접합니다.”라고 말할 때는 이미 주님이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여러분의 마음속에 정리가 잘되기를 바랍니다.
구원을 어떤 ‘정점’이라고 가정한다면, 자연인은 결코 거기에 가 닿지 못하는 ‘불연속선’을 그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흔히 “십자가를 통해서 넘어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우리가 이제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기에 “예수께서 내 죄를 대속해서 자연세계에서 영의 세계로 넘어올 수 있었구나.”라고 할 수 있는 ‘법적인’ 차원에서의 대차대조표이지, “내가 어떻게 전자에서 후자로 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은 아닙니다. 한 개인이 ‘믿지 않는 자리’에서 ‘믿는 자의 자리’로 들어오는 방법에 대해서 성경은 언제나 신비롭다고 말합니다.
믿음의 두 가지 의미
그런데 신비주의자들은 그 방법이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것입니다. 즉, 믿는다는 것이 구원을 얻는 방법이 된다는 말입니다. ‘믿으면 구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방법적인 면에서 ‘못 얻는다.’고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그 믿음은 구원을 얻게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라는 단어가 나오게 된 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율법이란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조건들은 지키고 이행해서 드디어 합격선에 도달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구원에 이르게 하는 조건들을 도저히 사람이 지킬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아니고 행위가 아니다.”라는 말은 바로 “행위가 아닌 것으로 너희가 구원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너희가 이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로 받은 것이다.”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즉, 구원을 얻는 방법이 ‘행위’가 아님을 분명히 하기 위해 ‘율법이 아닌 것’에 해당하는 단어를 하나 말들어야 했기 때문에 성경은 그 단어를 ‘믿음’이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이라는 단어는 ‘trust'와는 다른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전하는 “예수를 믿으십시요.”라는 말은 “이제 우리가 믿자.”는 말과는 다른 것입니다.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해서 “나는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얻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으라고 해도 안 믿겠다고 한다. 나는 예수를 믿었는데 그 사람은 안 믿었으니까 그는 지옥에 가도 마땅하다.”고 단정했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에 무엇이 이 두 사람을 구별짓는 것입니까?
우선 자신이 얻은 구원이라는 결과에 대해 ‘그 조건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믿음이라는 조건을 가진 사람이고 다른 삶은 이 믿음이라는 조건만 내 놓으면 구원이라는 결과를 얻을 테지만 단지 믿음이라는 조건을 내 놓기를 거부하고 있는 사람으로 구별짓는 것입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믿음은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랑할 것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그 자신이 갖고 있는 율법입니다. 자신이 가진 결과에 대해 자신에게 원인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믿으시오.”라고 하는 말은 “율법과 상관없다.”는 의미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얻었습니다.”라는 선언은 내게 구원을 얻을 어떤 조건이 있었거나 구원받을 만한 무슨 가치가 있어서 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방법으로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보통 “믿음으로 받았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구원 이후의 믿음
자연세계에서 영원세계로 넘어오는 데는 방법이 있을 수 없으며 성경은 그 사실은 ‘믿음’이라는 용어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세계로 들어간 후에는 보통 말하는 그 믿음(trust)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의 문제에서 신자가 해야 하는, 또 할 수 있는 행위는 무엇일까요? 구원을 얻는 과정에서 행위가 존재할 수 없지만, 구원을 얻은 후에는 구원을 얻은 자가 마땅히 행해야 할 행위가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제는 눈을 뜨고 율법을 보는 자이기 때문에 가야 할 자신의 길을 가야하며,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 등의 행위들이 생기게 됩니다. 이 부분은 구원을 얻는 것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구원을 얻은 자의 ‘성장’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구원으로 넘어올 때 자기가 믿어서 넘어온 것으로 생각하고, 넘어와서는 하나님께 은혜만을 구하는 혼동 속에 빠져 있습니다. 성경과 반대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늘 흔들립니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자연세계에서 영원세계로 넘어오는 데는 “이렇게 하면 된다.”는 방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눈을 뜨게 되는 과정에서는 내가 눈에 힘을 주어야 된다든지, 어떻게 고개를 돌려야 된다든지 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그리고 구원을 얻은 결과로써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 믿음의 앞에서 언급한, 율법이 아닌 것을 말하는 믿음과는 다른 믿음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율법이 아닌 것을 말하는 믿음을 ‘믿음A’라고 하고, 후에 결과로써 갖게 되는 믿음을 ‘믿음B'라고 합시다. 믿음A가 구원을 얻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으로서의 믿음이라면, 믿음B는 눈을 떴기 때문에 모아야 하고 신뢰해야 하고 맡겨야 하는 믿음으로서, 보통 우리가 말하는 믿음입니다.
믿음B는 믿음A의 결과입니다. 믿음A를 얻은 자만이 자신의 발로 출발하고 성장의 길로 걷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무서운 징계를 받기도 하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이 영역에서 그가 어느 만큼 하나님을 신뢰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나갈 것인가는 곧 그의 성장에 비례합니다. 또 성장하게 되면 하나님을 더욱 잘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에 비례하여 그의 성장이 진전됩니다.
믿음의 새 출발
성경은 로마서 1장에서 이 문제를 분명히 합니다. 17절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말씀에는 ‘믿음’이란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에 나오는 단어가 지금 우리가 설명하고 있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나오는 믿음은, 우리가 흔히 즐겨 사용하는 ‘trust'라는 의미의 믿음입니다. 이 두 번째의 믿음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우리는 이 차원에 대해 눈을 뜨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거기에서부터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갖는 신앙상의 감각과 인식과 경험은 앞에서 언급한 믿음A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결과이지 내가 구원을 얻고, 구원을 얻기 위해 살아야하는 일의 출발이나 원인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결과는 또 하나의 출발은 낳는 것도 사실입니다. 즉, 새 인생의 출발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새 출발을 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신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죽었던 자리에서 살아난 자리로 넘어온 이후, 즉 출생 이후의 성장영역에 있는 것입니다. 이 영역에서 신자는 죽은 자를 살리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출발해야 합니다.
여기서의 이 ‘믿음’은 구원의 결과로서 생긴 믿음이기 때문에 ‘내가 구원을 어떻게 얻었느냐?’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러한 분이시구나.’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셔서 이런 것을 좋아하시는구나.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구나.’하는 인식을 갖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음으로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된 믿음은 성장을 향한 출발지점이지, 구원을 얻은 원인이나 근거에 관한 문제는 아닙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믿음A가 아니라 한 걸음 더 전진된 믿음B를 갖게 된 성장영역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성경 속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더 많이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시된 율법을 따라야 하고 요구되는 행위들을 해야 합니다. 나의 신앙의 성숙은 말씀에 얼마만큼 순종하느냐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단 후자의 영역으로 들어온 사람이 전자의 영역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일은 없습니다. 또한 후자의 영역으로 들어온 뒤 주저앉아 있으면서 한없이 어린아이로만 있을 수도 없습니다. 자기가 배우지 않고 뿌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신자들의 최대의 싸움이 있다면 바로 이 두 가지 상황에 대한 혼동입니다. 자신이 갖고 있을 필요가 없는, 구원을 얻는 믿음A는 갖고 있고, 실제로 갖고 있어야 할 믿음B는 안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저를 구원하실 것을 믿습니다!”라고만 하면서 마땅히 성장해야 될 일은 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성숙하려는 자세를 갖추어야 옳습니다.
본문 되짚어보기
1. 성경이 구원과 관련지어 사용하는 ‘믿음’이란 단어는 무엇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입니까?
2. 어린이 교육을 담당하는 한 연구소에서 태교를 담당하는 연구원과 유아교육을 담당하는 연구원, 그리고 아기를 가진 산모가 서로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두 전문가의 대화 중에서 상식에 어긋나 보이는 부분을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산모의 말 중에서 믿음A와 믿음B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아 표시해 보십시오
태교 담당자 | 이번에 태어나는 아기만큼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 분위기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있도록 아기의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유아 교육자 | 문제가 되는 것은 출생이 아니라 태어난 후 자라는 과정이지요. 부모에게 아이들이 너무 매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 아이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진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부모의 간섭과 지도를 될 수 있는 한 배제하고 부모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의 권리를 확보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
산 모 | 무슨 소리예요? 아이가 태어난 것은 전적으로 엄마의 출산에 달린 것이지 아이가 어떻게 자신의 탄생을 결정하겠어요. 자라나는 것도 그래요. 나는 내 아이가 부모들이 자신을 향해 갖는 정성, 계획, 소망 등을 기억하면서 자라나기를 원해요. 이런 마음은 모든 부모들의 일반적인 바람이 아니겠어요? |
깨달음에 깊이 더하기
믿음이 좋다고 하면서 일반생활은 본이 되지 못하는 경우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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