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이끌리는 설교 / 박영돈 교수
한국교회에 강해설교의 붐이 일어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강해설교에 대한 관심만큼 성령에 사로잡힌 설교에 대한 관심은 아직 미흡하다. 이 둘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성령에 이끌리는 설교를 하기 위해 설교자는 성령을 도구화하려 해선 안 되고 오히려 자신이 성령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강단은 신앙의 선진들이 가졌던 깊은 영성도, 신학적 혜택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자질도 부족하다. 강단에서 전파되는 메시지에 복음의 골자는 빠지고 신자의 헌신과 열심을 고취시키는 윤리적 지침과 권면으로 가득하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마음에 비추는 성령의 조명과, 그 빛 가운데서 성경 속에 펼쳐지는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현실을 총괄적으로 파악하는 신학적 통찰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에 이르게 된다.
성령 충만이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 속에 사는 것을 뜻하며, 설교자는 삶의 모든 정황에서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선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 체질화되어야 한다. 강단 아래서 성령을 따라 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설교 시에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는 것은 회중을 향한 하나님의 큰 긍휼인 동시에 설교자에게는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 성도들은 복음이 설교자의 심령과 인격과 삶에 구체적으로 체화되어 전인격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를 듣기 원한다. 주일설교 준비는 설교를 작성하기 위한 노력만이 아니라 일주일 동안 성령을 온전히 따르는 삶으로 해야 한다. 실제 설교를 준비하는 데 있어 가장 우선되는 일은 자신을 성찰하는 기도와 회개다.
설교자가 성령을 의존한다고 해서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스펄전은 “공부에 더 이상 씨를 뿌리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설교자는 우선 본문에 충실해야 한다. 말씀의 저자가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교행위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성령께 집중하지 못해서도 안 된다. 성령에 사로잡힌 설교자는 게으름과 과잉열심 사이에서의 중용의 묘를 터득해가야 한다.
설교는 인간의 탁월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설교 그 자체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의 행위다. 설교의 능력은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설교라는 비천한 방법을 통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 설교의 위기는 인정욕구나 성취지향적 욕망에 사로잡히는 데서 온다. 설교자는 청중의 눈치를 보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까 두려워해야 한다.
설교자는 성령이 주시는 자유함 가운데 차분하고 온유하게 설교해야 한다. 전하는 메시지만큼 전하는 자의 자세와 호흡, 인상과 음성이 중요하다. 부드러운 음성에 성령의 은혜와 힘이 실릴 때 듣는 이들을 감화하여 강퍅함을 꺾는 역사가 일어난다. 설교는 이렇게 전인격적으로 나타난다.
아무리 좋은 원고를 작성해도 원고 자체에 사로잡혀서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선 곤란하다. 설교의 막중한 사명 앞에 자신의 무능을 절감한 사람만이 성령에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설교자는 기도로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기도가 성령으로 충만하는 방편인 동시에 성령 충만의 증거이기도 하다.
능력 있는 말씀의 선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설교자 자신뿐 아니라 모든 교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이런 의미에서 설교는 목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온 교회가 동참해야 할 사역이다. 목사의 은사와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교인의 기도의 지원 없이 설교에 큰 권능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마지막으로, 설교사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다. 복음사역자들은 비록 복음의 열매가 빨리 나타나지 않고 교인들의 변화와 교회 성장이 지체될지라도 말씀과 성령의 원칙을 따라 주의 일을 해야 한다. 은혜를 한없이 탕진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탕자들을 설복하듯이, 자신의 청춘을 낭비하는 것 같은 설교자의 사역이 마침내 죄인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이키게 할 것이다.
출처: 코람데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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