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영선목사

기독교 세계관 강의 제3강 현대화와 세속화에 대한 설명 : 딤후3:1~5 / 박영선 목사

새벽지기1 2016. 1. 10. 07:28

제3강  현대화와 세속화에 대한 설명 : 딤후3:1~5 

 

서구역사가 인본주의, 합리주의로 흘렀다. 과학적 업적을 근거로 나아갔으나 실패하였다.

현대화란 사회가 제조, 상업을 목적으로 도시주변에 사회가 재편성되는 과정이다.

과학의 발전강을 인해 산업혁명이 일어난다. 기계문명의 발전을 도시화가 시작된다.

제조, 생산이 대량으로 되고 경제 규모가 대규모로 되었다.

도시화의 과정이 현대화이다.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생기는 특성이 현대성이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전통과 권위가 있는 세계에서 이런 것 없이(전통,권위 등)

모이는 도시생활을 하게 되었다. 삶의 방식과 삶의 배경도 변화되었다.

집안과 집안이 알고 있는 사회에서 서로간 아무도 모르는 삶으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도시집중현상-현대화가 가져온 주요한 특징으로 인간의 삶에 있어 두 가지 구별을 낳게 되었다. 삶에 있어서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로 나누었다.

공통적 목적을 위해(상업성) 합친 영역-회사를 말한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모인, 기능적인 묶음이다. 개인적인 주장은 불필요한 곳이다. 공적 세계의 특징은 개인의 중요성은 됨됨이, 가치, 신념, 신앙이 아니라 그 개인이 행하는 일에 있다. 그 사람이 집단의 필요에 충족한가 이다. 상업성과 효율성에 필요한 기능만 남게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사회의 특징이 다원주의이다. 도시는 다양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공적인 영역은 공통된 경제적 이익을 위해 묶여있다. 개인의 가치관을 축소시켜

최소의 공통분모만 갖게 하였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쓸모 있는 기능만 남게 되었다.

도시윤리는 대중윤리와 공존할 수 있는 우호성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문제로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종교, 정치문제, 도덕적 판단 등....

 

모든 영역에 절대적인 것은 사회적인 에티켓에 의해서 유보내지 제거되어야 한다.

--누가 대통령되었으면 안돼!-이런 말은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이런 기술시대에는 필요한 효율성만 남게 되었다.

(그 사람은 누구냐? 벤츠 타...이러면 금방 알아 먹는다. 인격과 됨됨이는 의미가 없다)

현대성의 공적 영역은 절대적인 이야기를 꺼낼 수 없다.-신념,신앙,절대적인 주장 등

이런 것들은 개인적인 영역에만 이야기해야 한다.

정직, 진실, 겸손 등은 공적인 영역에서 사용할 수 없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것처럼 되었다. 이전의 할리우드 영화에 권선징악, 사필귀정이란 절대적인 기준이 있었는데

이제는 악당의 실패하는 끝장면에서→ 악당이 잡히는 장면없이 끝나고 → 드디어 악당이 악당짓을 통해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끝난다. :경찰서를 털어라..

 

, 정의가 모호해진다. 각각 다른 기준으로 적용하는 상대주의가 되었다.

이러한 공적, 사적 영역의 구분함으로 가장 중요한 부작용은 현대성이 사람들을 시간과 공간의 연결고리(전통사회,주거환경 등)에서 거대한 비인격적 현대 문화 속에 끌어드렸다. 모두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 안에 있다. 나의 신념이나 신앙이 공적인 동의나 확인을 받을 수 없는가-이것이 우리들의 의문점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더욱 초월로 나아가 자연과 초월이 더욱 분리될 수 있다. 

 

셋째 현대성이란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의미이다. 문화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을 조종한다. 정치, 경제, 교육, 매스미디어 등이 우리의 생각을 조정한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다수를 따라 갈 수 밖에 없다. 유행을 따라야 한다.

학교는 인본주의적 합리주의로 기초된 학문내용을,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교육과 과학을 부인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본주의적으로 가르치면 하나님에 대해

가르칠 수가 없다. 저들에게 우리들이 주장하는 차이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체계들은 비인격적이고 익명성을 중심으로 한다. 유행 같은 것으로 하나의 풍조로

존재한다. 우리들이 모여서 개인적인 인격이 동원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스포츠와 드라마 이야기 밖에 할 것이 없다. 우리가 휘둘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특징을 막나하여 세속성이라 한다. 여기에는 절대라는 것이 없다. 일회성, 상대성만 있다. 회사에 신우회를 만들 수 있으나 교회로 만들 수 없다. 이런 현대성을 가진 우리를 현대인이라 한다. (이전은 전 근대인이다) 중세의 실패는 신앙으로 사람을 강요한 것이다. 강요와 억압으로 신자로 만들었다.

 

다양함과 풍요함의 유혹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절대 우위를 설명해야 한다. 우리는 이 문제를 외면하고 우리는 원색적인 초월성으로 간다. 현대성의 특징들은 현대사회안에서 생겨난 특성이다. 현대성, 세속성은 더 이상 어떤 초월적인 질서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는 전망과 가치를 말한다. 초월과 절대를 외면한다는 의미에서 세속성이라 한다. 오늘날 세계는 도시화되어 간다. 도시로 인해 편리해 지나 더욱 세속화 되어간다.

 

세속주의는 개인의 삶에서 신성의 영역을 빼앗아 갔다. 영원한 신앙체계를 개인적인 영역으로 축소시켜 호주머니나 금고에 넣게끔 하였다. 이랜드가 하나님의 기업인가? - 기독교의 기업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 있는 곳이다. 이윤을 진실하고 정직하게 내는 것은 가능하나 기독교기업 이름을 붙이는 것은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을 기업보다 앞세워 공통적인 분모나 특성으로 할 수 없다.

세속주의는 신앙을 개인적인 소유로 만들었다. 기독교내에서 기독교를 세속화한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면 복이라는 말을 성경이 정의하는 것과 현대사회가 정의하는 것과 다르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은 돈으로 하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에 경고의 말씀이다. 개인적인 이기주의에 빠질 수 있다. 신앙은 갖고 있으나 신앙의 진정한 능력들 즉, 영원성, 감동, 인격의 변화 등은 없다.

 

오늘날 교회는 신앙의 증거나 승리를 세상이 추구하는 동일한 내용으로 설명한다.

예수를 믿었더니 병이 낫고 부자가 되었다.- 하나님이 한 영혼을 항복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나 그러나 영구한 목적은 아니다. 인생 전체를 담아내는 신앙을 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의 힘은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에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서 하나님의 뜻을 주신 약속들에게 있다. 세상의 삶의 정황 속에서 믿지 않는 자와 함께 하여 그들과 다른 하나님의 통치를 받은 자로서 세상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차이를 보여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드러나는 기적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