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영선목사

기독교 세계관 강의 / 제1강의 다원주의가 형성된 사상적 과정 : 벧후3:3~7

새벽지기1 2016. 1. 9. 03:45

1강의  다원주의가 형성된 사상적 과정 : 벧후3:3~7

8권의 필독서, 특히 '완전한 진리'( 800) 추천

 

오늘날을 현대사회, 다원주의사회라 한다. 다원주의-사상, 지성사의 흐름에서 파악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세상이다.

16세기  ~ 20세기 초 : 근대사회(모던)

전 근대 - 근대 근대 후기으로 분류

근대시대의 시대정신을 이해해야 한다.

 

신학의 시대, 권위의 시대 - 전 근대시대(중세시대)

16세기 이전 : 전 근대사회-중세시대라 한다.

이성의 시대 - 근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다원주의), 통일과 종합을 포기한다는 말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우리의 가치관, 믿음을 설명할 수 없다. 신앙을 보편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중세 때는 기독교가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였다.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세상,,인생에 대한 성찰-- 종합된 체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절대 좌표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은 각자의 기준, 척도를 가진 세상이다.

 

중세에는 세계를 신학적으로 설명-대표적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초월(은총) : 상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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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 하층부

 

보이는 자연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이 은총과 자연의 이분법을 만들었다. 자연보다 은총이 더 우월함을 강조하기 위해 나눔. 그런데 이런 의도와 달리 자연과 은총이 분리되었다.

 

믿음, 신학 --- 은총

이 세상의 사물에 대한 지식 --- 자연

자연은 이성으로 연구하는 대상, 경험으로 확인하는 영역이 되었다.

자연이 초월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다. 별개의 범주로 나눔.

신앙과 이성은 분리됨 → 계시와 신앙이 필요 없다고까지 나감,

 

종교개혁의 범주 3가지로 이루어짐 - 일반적 종교개혁, 카톨릭내 정화운동 등

일반인에게는 기독교를 초월로 밀고 자연을 독립시키는 자연신론적 종교개혁이 르네상스이다. 성경으로 경전으로 삼지 말고 옛날에 사람들이 생각했던 철학이나 자연에 대한 이해, 과학으로 이해하자.

 

여기서 합리주의가 태동된다. 이성이 신적 계시와 상관없이 독립. 계몽주의 때 크게 대두되었다. 근대의 시대정신이 계몽사상이다. 계몽주의란 이성이 삶의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체계화한 것이다. 신앙적 독단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함.

 

계몽주의의 신조 : 이성의 자율성→ 이성으로 자연을 이해하자. 계시가 필요 없다. 외적인 권위를 부정, 거부함. 이성에 의한 합리성으로 모든 진리를 파악했다.

전근대시대에 절대좌표는 기독교였다.(하나님, 성경..) 근대 이후에는 자기 나름대로 절대좌표를 만들었다.

→ 데카르트 등장 (절대좌표를 제공함: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인식론적인 자아가 절대좌표의 원점이다. 인식하는 '', 개인이 절대좌표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생각하는 모든 인간으로 절대좌표로 바뀜. 생각하는 자아가 정신적인 존재임을 입증하려고 했다. 자연이 전부가 아니다. 초월의 영역에 우리가 있음을 강조하려 했으나 그의 말은 오용되었다. 물질의 세계와 정신의 세계로 나뉘게 되었다. 정신세계는 검증, 설명할 수 없는 정신적 영역으로 되어 배제되었다. 과학에게 지식의 독점권을 부여하였다. 인간의 삶은 과학으로 설명, 검증되었다. 다른 나머지는(초월의 영역) 사적인 신념이나 문화적 유산이나 전통으로 취급 당함.

 

칸트를 거치면서 하층부는 검증가능한 사실의 영역이 되었고 상층부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가치의 영역으로 되었다.(도덕, 윤리 등) 사실과 가치로 이분법으로 되었다.

 

당신은 예수믿어, 난 아니야 → 기독교가 사실, 보편성이 아니다는 뜻이다.

계몽주의는 사실의 영역이 가치의 영역으로 점점 잠식함. 이유:과학적 성취가 자신감을 불어일으킴. 예를 들면 중세 때는 벼락,홍수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했으나 과학적으로 설명함으로 예전에 초월로 인식된 것이 과학적 영역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로서 점점 기독교는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부부싸움에서 감정이 나오면 짐승 취급한다. 그들은 논리적으로,합리적,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 자연주의적 이해, 설명이다.

 

상층부는 개인적, 비인지적인 경험으로 되어 버렸다. 보편성도 없고 사실도 아니다는 것이다. 인류는 계몽주의로 시작된 인간 이성, 과학이 만들어 내는 유토피아로 진군하였으나

두번의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사상이 무너지고 다원화로 가게 되었다.

과학적 발전은 인정되나 전쟁을 통해 지성,정신에 대한 회의가 시작했다. 이성과 합리가 새로운 기준과 질서, 통일을 만들어 주리라는 것이 이로써 폐기되기 시작했다.

절대좌표가 이로써 부재한 상태가 되었다. → 각자 자기의 소견의 옳은대로 행하게 되었다.

 

지성사,사상사로 살펴보면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기독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기독교는 믿어야 보편적인 진리가 되기 때문에,

그들은 믿지 않는다. 지금은 절망에 몸부림치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들은(다원주의자)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상한 낙관론이 이 시대를 속이고 있다.

기독교내에서 이 형태가 '적극적 사고'이다. 무엇에 대한 적극적인가?

잘 될 것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근거는 없다. 잘 될 것이라고 믿으면 잘된다는 순환논리이다. 사람이 무엇에 근거하여 자기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근거는 없다.

 

기독교를 설명함에 있어서, 변증에 있어서 기독교 세계관이 중요하다.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 → 창조, 구원, 심판이다.

세상은 심판, 창조 등을 거부한다. 즉 하나님을 거부한다. 지금까지 변한 것이 없다고 기롱한다. 세상은 기독교 신앙을 의지적으로 반대한다. 이것이 죄성이다. 다원주의가 가지는 현실속에서 적극적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통하여 절망에 와 있는 상태를 속이고 있다. (미국이 앞장선 것 같다.) 서구사회는 돈이나 과학이나 인간의 이성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인정하였지만 인류 정신이 파탄됨을 시인하였으나,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신앙으로 가지 않는다.

 

이 사이(근대정신 붕괴-기독교로 복귀)에 물질주의가 끼어 들었다.(미국이 앞장) 열심히 살자고 한다. 결국 인생은 늙고 병들고 불행해 짐을 속이고 있다. 상업적, 이기적으로 만들었다. 나만 잘살자는 속물이 되었으나 오늘날 우리들은 기독교 방법으로 성취하려고 하고 있다.  이 세계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해석해야 한다. 기독교내에서 신앙을 이성과 합리로 설명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 이것이 교의이다. 믿고 순종하는 진리이다. 도그마이다. 인간의 행복이나 진리를 발견하지는 못하였지만(정신과 사상은 폐기처분되었으나) 비판정신을 그들은 꼭 쥐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다. 다원주의사회는 기존의 명제, 권위 등에 대해 거부한다. (하나님, 절대권위, 성경 등을 말한다.) 교회사에서 교의는 권위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했다. 현대 사회는 이러한 교의를 비판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지적인 능력이나 특징으로 간주한다. 순종을 맹신과 무식이라 한다.

 

우리는 계시가 지식의 원천이라 여기며 세상은 이성이 지식의 원천이라 한다.

정보의 출처는 계시이다. 이성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관찰한 기록이며, 사물을 이해하는 수단이다. (하나님이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이성이 진리를 만들거나 알아낼 수 없다.

자연의 영역에서 세상, 인간을 이해하려고 했다.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