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영선목사

기독교 세계관 강의 5강-복음주의에 대한 설명 : 계3:7~13

새벽지기1 2016. 1. 12. 06:58

5-복음주의에 대한 설명 : 3:7~13

 

한국교회의 신학(신앙내용)과 신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보수주의 교회는 복음주의 색채를 띠고 있다.

그러나 복음주의에 대해 우리는 오해하고 있다.

빈곤한 신학과 열정적인 신앙이 복음주의의 특징이다.

복음주의는 어떤 신학적 신념들에 기초한 영적 갱신과 부흥운동이다.

복음을 선포하려는 역동적 운동이다. 복음주의는 뿌리를 가진 운동이다.

 

오늘날 복음주의는 18세기 대각성운동에서 일어난 신앙운동에 기초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근본주의와의 차별을 드러내며 보수주의를 지키려는 운동이다.

이 운동이 신복음주의 운동인데 우리는 신복음주의 운동을 그냥 복음주의라고 한다.

헤롤드 오켕가, 칼 헨리, 빌리 그래함이 주도적인 지도자들이다. 일어난 이유는 경직된 근본주의와의 차별로 일어났다.

근본주의는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난 운동이다.

 

복음주의의 특징은,

첫째, 회심주의, 즉 개인적 회심을 체험적으로 확인하려는 주의이다.

둘째, 성서주의, 성서를 궁극적인 권위로 받아들인다.

셋째, 활동주의, 복음전도에 우선권을 주고 선교를 강조

넷째, 십자가 중심주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강조하며 중심을 둔다.

 

복음주의는 신학적 사상보다 운동 쪽에 훨씬 강하다. 성서에 근거하면서 경건하고 헌신적인 운동이며 풍토이다.

종교개혁, 청교도 운동, 경건주의 운동, 부흥운동 등에 뿌리를 둔 운동이다.

복음주의의 중심적인 축은? 첫째, 종교개혁과의 관계이다. 종교개혁의 중심주제가 복음주의의 축이 된다. --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종교개혁의 중심 내용들이 복음주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복음주의는 먼저 회심과 복음전도에 강조를 둔 운동이다.

둘째, 청교도운동(17세기)과의 관계이다. 종교개혁의 지적 성향과 크리스챤 삶의 경험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 청교도운동이다.

칼빈주의의 선택교리에 의해 일어난 불안에 대응해서 새로운 종류의 경건을 일으켰다.

구원에 대하여 구원이 하나님의 선택에 좌우되는 것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체험적 확인이 강조되었다. 중생의 체험을 강조. 형식적 신앙 반대.

 

셋째, 경건주의와의 관계이다. 경건주의는 교리화된 기독교 경직과 형식에 대해 생동감을 강조하며 기독교는 삶과 실천에 존재함을 내세웠다. 넷째, 부흥운동(18~19세기 영국과 미국)과의 관계이다. 종교개혁적 신앙을 강화하는 영적 각성물결이다. 회심과 회심에 대한 체험, 경건한 성결한 삶, 도덕강조(인권강조, 사회개혁) 선교강조 등이다. 신앙과 시대적 사회 앞에서의 실천운동이다. 미국 복음주의의 특징은 대각성운동을 전통으로 하며 정치와 종교분리를 이루어 내었다. (원래 재정은 정부가 내고 실천(병원, 학교, 자선단체 등)은 기독교가 담당했지만, 이단들도 정부에 대해 동일한 재정지원을 요구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하였다. 국가는 종교의 자유를 주었지만 차별할 수 없어 종교와의 분리가 되었다. 정부의 지원이 끊어지자 그래서 교회에서 재정적 어려움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헌금을 강조하였고 목사들이 대중성이 띠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게 하려는 타협이 일어난 것이다.)

 

교인이 많으면 활력이 생기지만 실용성에 대한 관심이 켜져 원리에 대한 관심을 압도하게 되었다. 부흥운동은 개인적 종교경험과 지성의 엄격성과의 신학적 갈등을 일으켰다. 각자가 자기가 체험한 바에 따라 자신 신학을 만들어 내었다. 분파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복음주의운동은 신학적으로 종교개혁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신학적 운동이 중요하다.

 

계몽주의 이래로 일어난 인본주의 사상으로 말미암아 자유주의가 일어난다. 이러한

보수주의인 프린스턴신학, 세대주의 신학은 연합하여 자유주의를 대항하였다.

이러한 좋은 면에도 불구하고(정통교리 수호) 근본주의는 기독교 세계관을 제시 못하고 반지성적으로 흘렀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초월적, 체험적, 신비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설명하지만 이성적, 신학적, 넓은 문화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1940년대 근본주의의 대안으로 신복음주의는 탄생하였다. 개신교의 정통교리를 유지하며 학문적 연구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회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가진 온건한 근본주의자들이었다. 근본주의는 대화를 거부하고 폐쇄적인 것에 대해 신복음주의는 이를 반대하고 적극적인 면을 강조. 세상을 긍정, 문화를 포용하는 비전을 가졌다.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와의 중간쯤 있는 것이 ()복음주의이다. 한국의 복음주의는 신복음주의가 아니라 청교도운동, 경건주의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신복음주의적인 경향은 없는 편이다. 세계관 제시나, 학문적 연구, 문화적인 면이 없기 때문이다.

 

복음을 현대에 맞게 변질시킨 것(철학으로 바꾸어 버림)이 자유주의의 최대 결점이었다. 한국교회 복음주의의 문제점은 지성적 빈곤이다.

급진적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폐쇄성으로부터 자유한 것이 ()복음주의의 업적이다. 원래의 복음주의의 문제점은 지성적 빈곤이다.

복음주의는 지성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무식하고 열심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특징이다.

 

한국교회는 비판적 분석이나 진지한 성찰보다는 문제를 단순화하였다. 회개하라, 기도하라 등등... 

삶과 신앙이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오지의 미개인들은 숫자가 하나, , , 많다...)

문제의 해결책을 영감과 은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은 생각하게 하시고 연습(훈련)하게 하시고 고민하게 하신다.

 

오순절주의는 복음주의의 생존전략이다.(자기(복음주의)의 생존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분파주의로 간다.)

복음주의는 기독교의 신앙의 본질적 요소를 보존하였으나 반지성적 경향으로 대중적 차원에서는 큰 성과를 얻었으나 지성계, 문화계, 지식층에서는 큰 힘을 가지게 되지 못하였다. 우리는 어떻게 복음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문제점을 극복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복음주의는 그 영향력은 확대되나 위기에 처해 있다. (영적 가난) 업적으로 자랑한다는 것은 속이 비어 있다는 반증이다.

열정과 헌신은 있으나 충만하고 만족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적다는 이야기이다.

구원과 회심에 감격할 뿐, 더 깊은 부분에서는 영혼의 빈곤에 처해있다.

우리는 일만 해서 안 되는 존재이다.

영혼과 인격을 채우는 기독교 신앙의 총체적, 실존과 인생과 세계와 역사를 담아내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복음주의 위기는,

1. 정체성의 위기이다. 부흥운동은 정체성이 흐려진다. 부흥운동은 개인적 감격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전체를 설명하는 신학이 부재하게 된다. 한국교회는 균형이 없다. , 종합으로써 신학이 없다. 자기가 선 곳이 원점이고 기준이 되었다.

체험과 정서에 강조함으로 신학과 신앙의 핵심이 흐려졌다. (신학교에서 특강하는 큰 교회 담임목사(소위 성공한 목사)는 신학이 필요 없다고 신학생들에게 공공연하게 말한다-문제의 핵심을 보여주는 말이다.)

 

종교개혁의 형식적 원리는 오직 성경이며, 내용적 원리는 오직 신앙이지만 현대의 복음주의는 이 둘에서 멀어져 주관주의로 떨어졌다.

이제는 내 경험, 내 확인, 내 감동, 내 정서만 남았다. 복음주의는 종교개혁, 청교도운동, 부흥운동, 경건운동 등에 뿌리를 두면서 복음주의는 신앙을 제대로 실천하려는 영적 갱신운동이며 교회를 개혁하려는 운동이다.

갱신은 도덕성에 근거한 갱신이 아니라 신학을 말하는 것이며 기독교의 정체성을 가르치고 실천하고 누리는 것이다.  

 

오늘날 복음주의 운동은 대중성과 실용성에 의해 복음주의는 큰 위기에 처해있다. 군중이 원하는 대로 하기 시작했다.

수적 부흥과 더 많은 헌금 때문에.. 복음의 진정한 진리와 타협하게 되었다.

 

2. 반지성주의이다. 경견주의(기독교 신앙이 논리가 아니라 실천을 재발견), 부흥운동의 영향이다. 체험에 주관점을 둠으로써 문제가 발생(체험은 말씀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경건을 지성에 대한 관심을 포함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내적 상태로 정의하였다. (위치만 리 쪽의 문제점을 설명할 수 있다. 모이면 내적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강조한다.) 영적 체험은 귀하고 중요한 것이지만(격려, 확인, 위로하심),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이에게 그렇게 하시지 않음을 기독교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부흥운동에서도 이러한 부작용이 일어났다. 행동적, 즉각적, 개인적인 특징을 가졌다.

감동이 있는 설교자에 의한 즉각적인 반응과 결과라는 주된 방법과 통로로 생각했다. 간접적 지식이나 기독교 사상을 활용하지 않았다.

지성의 생명력을 손상시켰다. 지성의 발전에 저해하였다. 책을 보아도 간증서가 대부분이다.

결국 그 내용은 '나는 이렇게 주님을 만났고 이제 행복합니다' 라는 이야기이다. 동화책 수준임을 알아야 한다.

 

비판적 분석과 진지한 성찰이 없다. 지적 도구를 포기했다. 사람은 지성적인 동물이다. 물론 감정도 있지만..... (방언은 통역할 수 없으면 하지 말라..)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는 것이 신앙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해야 한다. 자연과 초월의 영역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임을 알아야 한다. 복음주의는 체험을 강조하여 교리와 신학에 무관심하게 되었다.

 

오늘날 복음주의의 부작용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교파간의 차이가 없어졌다는 데에 있다. 정체성이 없어져서 울타리가 없어졌다. 대부분 순복음 교회이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복음주의의 특징과 본질과의 혼돈이다. 복음주의 특징인 행동주의, 회심을 기독교의 본질적 요소로 여기기 시작하였다.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가 아닌 '예수님을 믿습니까?'이다. 더 이상 묻는 것은 월권이다. 복음주의는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기독교의 신앙의 본질을 가르치고 보존하고 누리는 곳으로써의 교회이다. 어떤 일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가장 큰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그리스도와 연합된 하나님의 자녀라는 본질이다.

구원과 영원한 승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을 공동체에서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깊은 감사와 헌신이 중요하다.

 

3. 분파주의이다. 다극화, 인종적, 계층적 경향을 강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운동이 되었다.

자신의 특정 관심사를 증진시키는 교회내 파당의 기능을 한다. 특징이 본질을 대신하기 때문에 이러한 운동을 하지 않으면 간첩이 된다.

열심적인 운동.. 예를 들면 '선교와 북한돕기'이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다라고 한다.

교회의 표지는 말씀선포, 성찬시행, 권징의 시행이다. 특징으로 '다양성'이 아닌 본질로써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현 교회의 모습들을 비관적으로 제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까지 왔음을 알아야 함을 말한다.

우리는 온전함을 향해 더 가야 함을 말한다. 남은 것은 청,장년의 숙제이다. 나는(영선목사) 여기까지 하고 죽으면 된다.